[김우영 광교칼럼] ‘수원문화의 숨은 공신’ 전흥섭 전 수원문화원 사무국장

김우영 논설실장 / 시인

올해 4월 24일 우화관과 별주 복원 개관식 때 내가 느낀 소회를 지난 5월 7일자 본란에 쓴 적이 있다.(김우영 광교칼럼- ‘화성행궁 완전 복원된 날 내 이름 김우영이 자랑스러웠다’)

그 글에서 내 스스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한 적이 몇 번이나 있었을까?”라고 반문했다. 그리고 “취중이긴 했지만 내 입에서 ‘내가 자랑스럽다’는 말이 나왔다”고 썼다.

일제강점기 때 훼손됐던 수원 화성행궁, 복원운동이 시작된 지 35년 만에 원래모습을 되찾았던 날 깊은 감동을 느꼈다.

35년 전 나는 ‘화성행궁 복원추진위원회’ 위원으로서 홍보부장을 맡아 이 일에 뛰어들었다.

지금은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 심재덕 수원시장, 김동휘 추진위원장, 안익승 선생, 이종학 서지학자, 이승언 향토사학자 등과 함께였다.

이날 우화관·별주 복원 개관식에는 생존한 추진위원 가운데 이홍구 추진본부장, 임병호·송철호·김우영 추진위원이 참석해 감회를 나눴다.

그리고 절대 빼놓아서는 안 되는 사람, 전흥섭 전 수원문화원 사무국장(후에 부원장 역임)도 그 자리에 있었다.

지난 4월 24일 우화관과 별주 복원 개관식에 참석한 전흥섭 사무국장. (사진=김우영)
지난 4월 24일 우화관과 별주 복원 개관식에 참석한 전흥섭 사무국장. (사진=김우영)

전흥섭 전 사무국장은 심재덕 시장의 수원문화원장 재임 시절 그림자처럼 늘 함께 했던 사람이다. 비록 화성행궁 복원 추진위원 명단에는 들어있지 않았지만 음지에서 모든 일을 추진했다.

화성행궁 복원 추진위원회 뿐 아니라 수원문화원이 발행하는 ‘월간 수원사랑’ 뒷바라지, 수원문화원이 펼쳤던 여름음악축제, 수원화성성곽순례, 대보름 민속놀이 한마당 등 수많은 행사와 사업 중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은 없었다.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사람, 그가 전흥섭 형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는 ‘수원문화의 숨은 공신’이다.

그때 그는 얼마 되지 않는 월급도 온전히 집에 갖고 들어가지 못했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못했던 수원사랑 편집위원과 화성행궁 복원 추진위원들의 잦았던 술자리의 계산을 주로 그가 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모임 도중 그가 웃으며 말했다. “말도 마. 한두 번도 아니고 매달 빈 봉투만 보여주니 그 착한 집사람이 생활비라도 내놓으라고 하소연 하더라”

나를 많이 아꼈던 그 착한 형수는 몇 년 전 세상을 떠났다.

세월이 흐르면서 전흥섭 형과는 드문드문해졌다. 서로의 세월이 다르기도 했고 먹고 사는 문제로 주변을 돌아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지난번 우화관·별주 복원 개관식을 계기로 자주 만나고 있다.

내가 화성연구회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을 알고는 회원 가입을 원해서 수시로 회동해 석양주를 나누곤 한다.

나하고는 10년 넘게 나이 차이가 있지만 형님 아우하며 흉허물 없이 지낸다.

흥섭 형은 지난 2017년 11월 수원화성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20주년을 맞아 수원시가 주최하고 수원문화원이 주관한 2017 수원문화포럼에서 이렇게 말했다.

“화성행궁도가 발견되고 화성행궁 복원추진위원회의 헌신과 경기도지사의 결단과 심재덕 수원문화원장이 수원시장에 당선되었기 때문에 화성행궁이 복원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하늘이 도운 것 같다”고.

그러하다. 내 생각에도 하늘의 도우심이 없었으면 화성행궁 복원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고 했다. 사람이 노력하지 않는데 어찌 하늘이 도와줄 것인가. 심재덕 시장, 전흥섭 형, 그리고 추진위원들의 간절한 소망과 노력이 하늘에 닿아 그 기적적인 일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흥섭 형, 앞으로도 건강하셔서 후배들에게 그때의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도록 합시다. 요즘 나이 80은 그리 오래 산 것도 아니잖습니까.

우화관과 별주 복원 개관식이 끝나고 추억을 나누었다. (사진=김우영)
우화관과 별주 복원 개관식이 끝나고 추억을 나누었다. (사진=김우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