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달산의 기억
최 영 선
부서지거나 서있거나
도망가거나 남아있는
그런 성이 수원성이었던 어린 날
산길이 유독 멀던 날은 매산학교 담장 넘어
반쯤 허물어진 성곽 타고 지름길로 가던 남문
낙락장송 발판 삼아 붉게 변한 성벽 넘으면 서남암문
길 양옆 성벽은 늘 아늑한 어머니 품안 같았다
몰래 풀 덫 놓으며 장난치던
유난히도 정겹던 화양루 가는 길
전망 좋은 꼭대기 빈터에 겨울이 오면
서장대 잔디 불장난에 혼쭐나던 그 기억들
서울 타향살이 한참 만에 연어처럼 희귀한 팔달산
모든 것이 말끔하고 온전해진 수원화성 성곽 길
이제는 돌고 돌수록
역사의 향기 그윽해지는 산길이 되었다.
동문은 도망가고/서문은 서 있고/남문은 남아있고/북문은 부서지고
수원화성이 복원되기 이전에 수원에서 유년기를 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두 번은 불러보았음 직한 노래이다. 그 시절 팔달산과 부서진 성곽은 더할 나위 없는 놀이터였다. 시인은 젊은 시절 한때 생업을 위해 잠시 고향을 떠났었다. 그러다가 ‘서울 타향살이 한참 만에 연어처럼 희귀’하였다고 한다. 어린 시절의 팔달산과 성곽이 아니다. 그 시절의 회상에 잠겨 본다.
‘아늑한 어머니 품 안 같’은 성벽. 고향이다. 추억이 묻어 있는 공간이다. ‘산길이 유독 멀던 날은 매산학교 담장 넘어/반쯤 허물어진 성곽 타고 지름길로 가던 남문’으로 나갔다. 그리고 팔달산으로 올라 ‘낙락장송 발판 삼아 붉게 변한 성벽 넘으면 서남암문’으로 간다. 멀지 않은 곳에 ‘몰래 풀 덫 놓으며 장난치던/유난히도 정겹던 화양루 가는 길’이 보인다.
수원화성의 성곽을 따라 걷다가 길이 가장 다양한 표정을 짓는 곳을 꼽으라고 하면 어디일까. 나는 서남암문으로 들어서서 화양루를 돌아 나오는 길은 반드시 걸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모르긴 몰라도 이백여 년 전 수원화성에 새로 정착했던 시인묵객이 가장 사랑했던 길이 이 길이지 싶다.
‘모든 것이 말끔하고 온전해진 수원화성 성곽 길/이제는 돌고 돌수록/역사의 향기 그윽해지는 산길이 되었다.’ 시인이 바라본 성곽의 모습은 말끔하게 바뀌었다. 그래도 역사의 향기는 여전히 그윽하다.
그런데 왠지 아쉽다. 얼마 전에 ‘수원화성문화제’ 올해도 어김없이 열렸다가 막을 내렸다. 그리고 아직도 화서문 일원에서는 미디어 아트가 펼쳐지고 있다. 첨단 광학장비를 사용하는 시각예술의 극치를 보여준다. 그런데 ‘전망 좋은 꼭대기 빈터에 겨울이 오면/서장대 잔디 불장난에 혼쭐나던 그 기억들’이 훨씬 더 푸근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이야 그야말로 심각한 장난이 되겠지만 고향에 살면서도 왠지 고향이 그리운 이유는 왜일까를 묻고 싶다.
최영선 시인
1977년 『무풍지대』 동인으로 작품활동 시작
수원시인상 등 시상
수원시인협회 회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