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종의 문학잡설(97)]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김승종 / 시인 · 전 연성대 교수

 

 지난 주 토요일 고교 동기들과 산을 오르다가, 산이 숲이고 숲이 산인 것을 알았다. 산과 숲을 구별하던 시선도 질기고 억센지도 몰랐던 고정관념의 하나였던가. 소나기처럼 우거지고 고인 단풍과 낙엽 또한 종국 직전의 처염한 기염으로 보였고, 겪고 겪은 우여곡절 오미(五味)의 세파를 마침내 승화시켜 채색한 성황으로도 보였다. 동기회 회장은 우이령 등반이 본격화될 무렵, 내 어깨를 두드리고 앞서가는 동기 법운(法雲)과 단풍을 눈짓하며, “오늘 주제는 법운 채색이다”고 하였다. 

 북한산 우이령 그 길에서 오봉(五峯)을 바라보며 올라 석굴암 경내로 들어서자 우리 고교 동기들을 맞이하던 불이문(不二門), 분별과 차별을 넘어서라는 그 문을 지나며 더 그런 생각을 하였다. 다시 산길을 올라 오르막이 다했다고 느끼지 못한 순간, 믿을 수 없도록 은행나무 한 그루가 눈앞에서 홀연 솟아올랐다. 부드럽게 쏘는 듯한 황금빛 자비의 그 깊은 광채. 역시 그 순간, 그 형상이 부처처럼 보였다. 무슨 영향이 있었겠지만 모를 일이다. 미물이 어쩌다 부처께 알현하여 감사 감사하였다. 그 나무 아래에 번갈아 서서 산인(山人)인 동기 야천(野泉)과 서로 사진을 찍어주었다.

 산행을 마치고 대열을 이끈 희세의 주유가(周遊家)인 동기 지일(只一)과, 죽었다가 또 죽음을 앞둔 화자의 각오가 진술된 시를 산행 도중에 보여준 안기부 전력 동기와 점심식사를 하며 막걸리를 마셨고, 일행은 구파발역에서 헤어졌다. 친구들의 상처 위로를 몰래 배려하는 자영업 종사 동기와 역전에서 서성이는데, 올해 인촌상 과학기술 부문상을 받은 동기의 업적을 기리며 자신의 수상 이상으로 기뻐하고 축하하던 동기가 막걸리 한잔 더 하자고 하고, 글쎄 법운이 옆에서 우이령 단풍으로 채색된 미소를 짓고 있어, 불감청(不敢請) 고소원(固所願) 심정으로 따라갔다.

 그날도 한 밤에 부스스 일어나 비몽사몽 어느 카톡을 열었다가, 레미 드 구르몽(1858-1915)의 「낙엽」 파일을 발견하였다.(이브 몽땅 노래) 지난 날 읽고 들었으나 제대로 감상하지 못했던 옛 시 옛 노래. ‘낙엽 빛깔은 정답고 모양은 쓸쓸하다’는 한글 자막이 그 프랑스어와 함께 크게 다가오면서 잠에서 깼다.   

 

시몬, 나무 잎새 져버린 숲으로 가자.

낙엽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낙엽 빛깔은 정답고 모양은 쓸쓸하다.

낙엽은 버림받고 땅 위에 흩어져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해질 무렵 낙엽 모양은 쓸쓸하다.

바람에 흩어지며 낙엽은 상냥히 외친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발로 밟으면 낙엽은 영혼처럼 운다.

낙엽은 날갯소리와 여자의 옷자락 소리를 낸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가까이 오라, 우리도 언젠가는 낙엽이리니

가까이 오라, 밤이 오고 바람이 분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만추에 진 단풍 낙엽을 그것도 ‘해질 무렵’에 화자는 바라보거나 등지거나 하면서, ‘시몬’에게 아니 우리 독자들에게, 가슴의 입으로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 ‘빛깔은 정답고 모양은 쓸쓸하다’, ‘낙엽은 날갯소리와 여자의 옷자락 소리를 낸다’며 우리의 가을 정서를 자극한다. ‘버림받고 땅 위에 흩어져 있다’ ‘발로 밟으면 낙엽은 영혼처럼 운다’에는 감상(感傷)이 좀 지나친 듯해 공감이 주저되지만, 이어지는 ‘가까이 오라, 우리도 언젠가는 낙엽이리니’에 이르러, 그 촉진이 다시 진행된다. 이런 자신을 우리는 곧 의식하며 고개 들어 그 정서를 희석하려 하다가 우울하고 감미로운 목소리의 그 향도를 그만 방임하기 쉽다. 때는 바야흐로 만추, 만추가 아닌가. 우리는 그 기운이 가득한 천하를 지나가거나 지나가야 하는 나그네 신세라는 자각. ‘가까이 오라, 밤이 오고 바람이 분다’에도 우리는 그런 자신을 견제하지 못하고, 황혼과 밤 사이사이로 차갑게 부는 바람을 과감히 맞으며 화자에게 더 ‘가까이’ 가려할지 모른다. 

 그리하여 우리는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가 왜 후렴처럼 반복되고 있는지, 그 정조로 오랜만에 사색하게 된다. 그래서 ‘발로 밟으면 낙엽은 영혼처럼 운다’를 다시 읽는다.  모든 낙엽은 우리의 고인이고, 우리가 낙엽을 밟으면 나는 하필이면 울음 같다는 그 소리로 우리는 고인의 영혼을 감지하고 서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마땅히, 그 물음에 회피하지 말아야 하리.  

 이 시는 우리가 떠나도 만추가 되면 후인들에게 다시 읽힐 것이다. 단풍 낙엽을 밟으며 인간의 생사와 고인의 영혼, 그리고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한번 사색한다면 그 심정이 감상에 가까워진다고 해도 그리 나쁘지 않으리. 이왕이면 알게 모르게 지은 죄와 참회도 빠트리지 말고. 그리고 자타 자비도 빠트리지 말고. 

 신파를 무릅쓴 이 사설(辭說)을 구파발역으로 가는 버스 손잡이에 같이 단풍처럼 매달렸던 독실한 우바새 동기가 제대로 교정하길 바라며, 우이령 그 등반길에서 아직도 까까머리로 불이문을 지나던 일행은 그날 같이하지 못했던 전국의 모든 동기들을 일제히 그 길로 불러들여 ‘법운 채색’ 그 시공을 같이하였으면 한다. 피아여일(彼我如一) 사생여일(死生如一), 좌우도 여일. ‘발로 밟으면 낙엽은 영혼처럼 운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