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의 '수원 詩, 수원 詩人'(30)] 조영실 '통나무의자'
통나무의자
조 영 실
정암수목공원 통나무의자
숲을 그리는 사람들이 머물다 가는 곳
스치는 문장을 읽느라
북쪽으로 촘촘해진 동심원의 경계가 선명하다
밤낮없이 생을 접촉하느라
몸통이 잘렸어도 혼은 떠나지 못하는가
여전히 피톤치드를 풍기며 자신의 냄새를 날린다
무엇이든지 품는 둥지
별빛이 소곤거리며
산새들이 지저귀며 날아가고
실직한 중년 가장의 한숨 소리도 들린다
부서져 내려도 좋다
제 슬픔은 깊숙이 밀어 넣고
몸의 수액을 말리는 등신불
형형한 눈빛으로 세상을 꿰뚫는다
겸손한 고요로 서 있는
생전의 푸른 결기 휘감은 소나무 한 도막
수원의 주산(主山) 광교산은 수원과 용인 그리고 의왕에까지 그 산줄기를 흘린다. 정암수목공원은 그중에서 용인의 상현동 쪽으로 뻗은 산자락 끝에 자리 잡은 곳이다. 시인은 어느 날 그곳을 찾았다.
‘정암수목공원 통나무의자/숲을 그리는 사람들이 머물다 가는 곳/스치는 문장을 읽느라/북쪽으로 촘촘해진 동심원의 경계가 선명하다’라고 했다. 나무의 나이테의 간격은 당연히 햇살을 적게 받은 북쪽의 경계가 촘촘할 수밖에 없다. 시인은 그 선명함이 이미 잘려 의자가 된 나무가 숲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문장을 읽느라 그리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어 사람들의 문장을 읽는 데서 더 나아가 ‘몸통이 잘렸어도 혼은 떠나지 못’하고 통나무의자는 ‘여전히 피톤치드를 풍기며 자신의 냄새를 날린다’고 한다. 그야말로 ‘무엇이든지 품는 둥지’이다. 일찍이 이양하 선생은 그의 수필 「나무」에서 나무는 ‘달은 달대로, 새는 새대로, 바람은 바람대로 다 같이 친구로 대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시인도 통나무의자에서 ‘별빛이 소곤거리며/산새들이 지저귀며 날아’갔음을 안다. 그리고 그 의자가 받아들인 ‘실직한 중년 가장의 한숨 소리도’까지도 듣는다.
본래는 ‘푸른 결기 휘감은 소나무’였기에 ‘형형한 눈빛으로 세상을 꿰뚫’으며 ‘제 슬픔은 깊숙이 밀어 넣고/몸의 수액을 말리는’ 그 의자가 ‘등신불’임을 마침내 본다. 그가 ‘부서져 내려도 좋다’고 외치기에 조영실 시인이었기에 직관할 수 있었던 통나무의자가 아니었을까 싶다. 등단을 하고 10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개인 시집을 내지 않았다. 조영실 시인은 늘 겸손하다. 수줍게 웃으시기를 잘한다. 그러나 고요한 어투 속에는 다른 사람이 지니지 못한 특유의 강단이 있다. 시인의 시를 대할 때마다 그래서 좋다.
조영실 시인
2016년《한국시학》으로 등단
중봉조헌문학상, DMZ문학상, 해동공자 최충문학상, 대한민국 독도대전 특별상, 문경새재문학상 대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