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로 인하여 상처받은 박 군이 측은하여 내가 일러 주었습니다.
"박 군, 두레마을에 오기를 잘했네. 이곳에서 서로 허물없이 지나며 마음에 쌓인 쓴 뿌리가 씻어지기를 바라네. 그리고 아버지를 이해하게나. 아버지도 아마 자랄 때 상처받고 자라서 그런 것이 아니겠나."그랬더니 그가 말했습니다.
"이해하여야지 하는 건 내 머리구요. 가슴으로는 이해가 되어지지를 않습니다. 나는 두레마을의 서로 허물없이 지나는 밝은 분위기가 좋습니다. 여기서 몇 년 살면 사람 구실하게 될 것 같군요"
그는 두레마을에서 차츰 밝아지더니 유머도 하고 마을 안의 노래자랑에 나가 인기상도 타고 하면서 어두운 마음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좋은 아가씨를 만나 결혼하더니 신학교에 입학하고 졸업 후에 좋은 목사가 되어 충청도에서 목사다운 목사로 목회하고 있습니다.
박 군과 진지한 대화를 나누던 날 나는 나의 두 아들에 대하여 생각했습니다.
아버지가 바쁘답시고 아들들과 너무나 대화가 없었구나, 모처럼 두 아들들과 허물없이 대화를 나누며 나의 아들들은 그런 상처가 없는지 살펴보아야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두 아들에게 오늘 저녁은 다른 일 모두 제쳐두고 아버지와 대화하는 시간을 가지자고 제안하였습니다.
그랬더니 큰 아들이 말하기를 "내일 시험이 있어요" 하기에 "아냐, 시험이 문제가 아니야. 우리 부자 사이에 대화가 너무 적으니 오늘 모처럼 아버지가 시간 날 때 셋이서 대화하는 시간을 가지자"고 이르고는 아내에게 셋이 마실 차를 준비해 달라 청하였습니다.
모처럼 3 부자가 차를 나누며 대화하는 분위기를 만들었습니다만 안 하던 대화가 갑자기 될 턱이 없었습니다.
아들 둘이 가만히 앉아만 있기에 내가 "아버지께 하고 싶은 말이 없니?" 하였더니 둘이서 한꺼번에 "없어요" 하기에 나는 갑갑하여 "가서 공부해라"고 보내버렸습니다.
부부 간에든, 부자 간에든 평소에 생활 속에서 대화가 습관이 되어야지 갑자기 분위기 만든다고 대화가 될 리 없습니다.
신앙생활에도 하나님과의 대화가 생활화 되고 습관화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대화를 신앙 용어로 '기도'라 합니다.
기도가 다름 아니라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이사야서 1장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대화를 요청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이사야 1장 18절)
위의 말씀에서 변론하자는 말이 대화하자는 말입니다.
그리고 대화하면 기적이 일어난다 하였습니다. 하나님과의 대화가 이루지면 주홍 같이 붉은 죄가 씻은 듯이 사라지게 되고 진홍 같이 무거운 죄도 양털 같이 희게 되는 기적이 일어난다 하였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과 대화하는 기도를 통하여 우리는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하나님과 대화하는 기도가 응답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고 요한복음 14장에서 일러 줍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요한복음 14장 13절)
성경은 분명히 일러 줍니다.
우리들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하여 집을 팔아 바치라는 것도 아니요, 직장을 그만두고 신학교로 가서 목회자나 선교사가 되라는 것도 아닙니다.
기도하여 응답 받는 열매가 쌓이고 쌓이면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길이라 일러 줍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