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영 광교칼럼] ‘화성검무(華城劍舞)’ 수원유산으로 복원·보존하면 좋겠다

김우영 논설실장 / 시인
‘정조, 화성에서 검무를 펼치다-화성검무 복원을 위한 학술회의’. (사진=김우영)
‘정조, 화성에서 검무를 펼치다-화성검무 복원을 위한 학술회의’. (사진=김우영)

지난 7일 오후 수원시 인계동 경기문화재단 3층 다산홀에서 ‘정조, 화성에서 검무를 펼치다-화성검무 복원을 위한 학술회의’가 열렸다. 검무(劍舞)의 역사와 현황을 알 수 있는 유익한 자리였다.

정조인문재단이 주최하고 (사)화성연구회 등이 후원한 이 행사는 1부 학술회의에 이어 2부에서는 검무 공연이 펼쳐졌다.

우리들이 ‘사회의 명인’이라고 부르는 정수자 시인이 진행한 학술회의에서는 △문화유산 진주검무와 평양검무의 예술사적 가치(임영순 평양검무예능보유자) △검무를 어떻게 출 것인가-검무의 전개구조와 주요 개념(김영희 김영희춤연구소장) △검무를 꽃피운 시대와 사람들-대장 유혁연과 무사 김체건.김광택, 춤꾼 운심을 중심으로(김영호 한국병학연구소장)가 발표됐다. 토론자로는 허용호(한국민속학회 회장), 조경아 (한예종 연구교수), 정해은(한국학중앙연구원 책임연구원) 씨가 나섰다.

2부에서는 정혜정·김미정 평양검무 이수자의 평양검무, 김영수 평양검무 이수자의 쌍검독무, 김재성 무예춤연구자의 쌍검독무, 정혜정·김미정 평양검무 이수자의 쌍검대무 공연이 펼쳐졌다.

김영수 평양검무 이수자의 쌍검독무. (사진=김우영)
김영수 평양검무 이수자의 쌍검독무. (사진=김우영)

사실, 나는 검무엔 큰 관심이 없었다. 장난감 같은 칼 모양의 작고 가벼운 쇠붙이를 들고 추는 춤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 검무, 즉 칼춤은 적어도 무예24기에 나오는 ‘쌍검’(雙劍)이나 ‘본국검’, ‘제독검’ 정도는 돼야 한다는 선입견이 있었다.

그래서 이 학술회의 소식을 들으면서도 별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런데 주제발표 내용 가운데 수원 화성행궁 봉수당에서 열렸던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의 회갑잔치의 검무(劍舞)가 언급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선뜻 마음이 끌렸다.

봉수당 진찬연은 한양의 궁궐에서나 볼 수 있었던 화려하고도 기품 있는 성대한 궁중 연회였다.

이 잔치에서 검무가 펼쳐진 것이다.

조선시대 임금 앞에서는 칼을 뽑을 수 없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효종이 무사를 불러 검법을 펼쳐보라고 명했지만 사간원 정언이 신라 황창랑의 이야기를 하며 반대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영조 때도 어전 검법 시연을 반대하던 승지들이 파직된 일도 있었다.

그런데 1795년 윤2월 13일 정조대왕과 어머니 혜경궁이 참석한 가운데 화성행궁 봉수당에서 열린 진찬연에서 검무가 공연된 것이다.

궁중행사에서 검무를 춘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고 한다.

김영희춤연구소 김영희 소장은 주제 발표를 통해 “왕 앞에서 추는 검무는 자칫 위험한 상황에 놓일 수 있으므로 궁중에서 추어지지 않는 춤이었다. 하지만 조선 후기 무예에 대한 높은 사회적 관심과 정조의 부국강병 정책 기조가 이를 가능하게 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1796년 10월 16일 화성성역 완공을 축하하는 연회인 낙성연에서도 검무가 펼쳐졌다. 이후 검무는 1829년 기축진찬부터 1902년 고종 임인진연 때까지 빠지지 않는 궁중 정재였다.

조선 고종 연간에 궁중 정재의 절차를 기록한 예술서 ‘정재 무도홀기’에 검무의 무보가 수록돼 있다. 진주검무는 1967년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됐다.

정재의 뜻은 원래 ‘재주를 보인다’는 의미였다고 한다. 다른 뜻은 헌기(獻技), 즉 ‘재예(才藝)를 드린다’는 것이었는데, 차츰 궁중무의 대명사로 사용했다고 한다.

혜원 신윤복의 ‘쌍검 대무’와 단원 김홍도의 평안 감사를 맞이하는 잔치를 그린 ‘부벽루연회도’에서도 검무를 추는 장면이 들어있다.

다산 정약용도 19세 때 지은 시 ‘무검편, 증미인’(舞劍篇, 贈美人:칼춤 노래. 미인에게 준다)을 통해 검무를 예찬했다.

 

...(전략)...

선녀가 나는 듯 훌쩍 내려앉는데

발밑에선 추련 같은 검광이 번쩍번쩍

...(중략)...

한 용은 땅에 있고 한 용은 튀어 올라

푸른 뱀이 일백 번 가슴을 휘감는 듯.

홀연 쌍칼을 손에 들자 사람 모습 사라져

순식간에 구름 안개 허공에 자욱하다.

좌로 달리고 우로 달려도 칼끝이 닿지 않고

치고 찌르고 뛰고 굴러 눈을 어지럽게 하며

회오리바람 소나기 차가운 산에 가득하듯

자색 번개 푸른 서리 빈 골짝서 다투는 듯

놀란 기러기 높이 날아 돌아오지 않을 듯

성난 매가 휘돌아 갈겨도 쫓아가지 못할 듯

...(하략)...

 

화성행궁 봉수당에서 열렸던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회갑잔치의 검무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보자.

당시 회갑연을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에는 두 사람의 여성이 양손에 칼을 들고 춤을 추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 여인들은 경기(京妓:서울 기생) 의녀 춘운(春雲, 31세)과 침선비인 운선(雲仙, 24세)이었다.

화성행궁 봉수당 진찬연 때 공연됐던 검무(원행을묘정리의궤 그림).
화성행궁 봉수당 진찬연 때 공연됐던 검무(원행을묘정리의궤 그림).

다시 말하지만 조선시대 궁중정재로는 최초의 일이다.

그러므로 수원에서 최초로 공연된 궁중정재 검무는 복원해 전승할 가치가 있다.

전기한 ‘정재무도홀기’를 조금만 더 연구한다면 원형에 가까운 복원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기록엔 공연자의 배열도와 춤의 진행 절차가 기록돼 있다. 배열도에는 각 정재의 역할 및 배치와 출연자의 이름까지 들어있다. 음악과 동작이 상세하게 서술돼 있다.

수원 지역의 해당분야 연구자와 검무 춤꾼들이 적극 나서 복원한다면 무예24기와 함께 수원의 자랑스런 전통유산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