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종의 문학잡설(98)] ‘Donde Voy, Donde Voy’
동트려는 새벽 인적 없는 황무지에서 북쪽으로 달리는 사람이 있다. 그는 침착하지 못하고 몹시 지쳤지만 시선에는 여전히 긴장이 역력하다. 그렇게 사위를 경계하며 그는 밤새도록 멕시코와 아메리카 국경을 넘어가는 중이다. 해가 뜨려 하자 제발 광명한 그 모습 드러내지 말기를, 그리하여 부디 자신을 비추지 말기를 해에게 애원한다. 이전에 해는 그의 어둠도 몰아내면서 그의 이름을 따뜻하게 부르듯 비춰줘 힘나게 하던 다정한 친구였다. 현재 그에게 그 해의 빛은 빛이 아니라 자신을 추적하는 국경수비대의 팔방을 훑는 무정한 서치라이트.
이러한 정황으로 시작하는 멕시코계 미국인 가수 티시 이노호사(Tish Hinojosa)가 부르는 발라드 「Donde Voy」는 1989년 이래 지금 현재에도 불리고 있는데, 앞으로는 더 절실하게 불릴 것이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 제47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트럼프는 당선 직후 제일성으로, 사상 최대로 국경 경비를 강화하고 불법이민자를 색출해 그 추방에 착수한다고 선언하였다. 공약대로.
Madrugada me ve corriendo 희미한 새벽에 난 달리고 있네
Bajo cielo que empieza color 막 붉어지려는 어느 하늘 아래에서
No me salgas sol a nombrar me 태양이여 제발, 모습 드러내 날 부르지 말아다오
A la fuerza de "la migracion" 이민국이 날 체포하지 못하게
Un dolor que siento en el pecho 내 가슴 속 고통
Es mi alma que hiere de amor 내 마음 사랑의 빈 상처
Pienso en ti y tus brazos que esperan 그리워라 당신의 품
Tus besos y tu passion 당신의 키스와 당신의 그 열정도
Donde voy, donde voy 어디로 나는 가나, 어디로 가고 있나
Esperanza es mi destinacion 희망은 우리의 운명
Solo estoy, solo estoy 홀로, 혼자
Por el monte profugo me voy 황무지를 가고 있는 도망자
Dias semanas y meces 하루가 가고 한주가 가고 세월이 흘러
Pasa muy lejos de ti 당신으로부터도 멀리 멀어졌는데
Muy pronto te llega un dinero 이제야 당신에게 돈이 도착할 거야
Yo te quiero tener junto a mi 기원해 내 곁에 와, 나와 함께 있기를
El trabajo me llena las horas 매일 일만 해 힘들지만
Tu risa no puedo olvidar 잊을 수 없네, 당신의 그 웃음소리
Vivir sin tu amor no es vida 당신의 사랑 없는 내 삶은 생명 없는 삶
Vivir de profugo es igual 도망자로 사는 것과 마찬가지
Donde voy, donde voy 어디로 나는 가나, 어디로 가고 있나
Esperanza es mi destinacion 희망은 우리의 운명
Solo estoy, solo estoy 홀로, 혼자
Por el monte profugo me voy 황무지를 가고 있는 도망자
Donde voy, donde voy 어디로 나는 가나, 어디로 가고 있나
Esperanza es mi destinacion 희망은 우리의 운명
Solo estoy, solo estoy 홀로, 혼자
Por el monte profugo me voy 황무지를 가고 있는 도망자
가사 전체의 맥락을 참조하면 3연까지 화자의 공간은 3연 4행의 '황무지를 가고 있는 도망자’란 자칭에서도 알 수 있듯 국경 변방이 분명하고, 동일한 정황의 4, 5연은 5연 1행 ‘매일 일만 해 힘들지만’에서도 알 수 있듯, 월경 이후 미국 어느 곳으로 추정된다. 「Donde Voy」는 그러니까 월경 정황과 고국에 두고 온 연인 연모, 그리고 미국에서 안착과 연인과의 재회를 고난과 고독을 대비하며 기원하는 사랑 추구의 노래이다.
스페인어 가사를 여러 분이 우리말로 옮겼고 필자가 윤문하였는데 아무래도 다른 선택 또한 가능할 것이다. 4, 5연을 월경 도중에 품은 월경 이후의 소망을 피력한 예정의 대목[열심히 일해 마련한 돈을 연인에게 여비로 부쳐 내게로 오게 하여 제대로 산다]으로 본다면, 이 노래는 월경자만의 노래이다. 3연의 반복인 6, 7연에서 우리는 그렇게 일관되게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4, 5연을 다시 월경 이후 상황으로 보면서 6, 7연도 그렇게 볼 수 있다. 즉 미국 어느 곳이 공간인 6, 7연에서도 자신을 여전히 ‘황무지를 가고 있는 도망자’라고 지칭하는 것은 5연 3행 4행에서 토로한 대로, 월경에 성공하였어도 ‘당신의 사랑 없는 내 삶은 생명 없는 삶’이며, ‘도망자로 사는 것과 마찬가지’이기에 화자가 자신을 그렇게 여기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당신이 내게 오기 전까지 난 여전히 국경의 황무지에서 국경 경찰에 쫓기는 ‘도망자’ 신세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화자의 사랑을 우리는 더욱 핍진하게 느끼게 된다.
이런 견지에서 우리는 진작부터 주목하면서도 유보하였던 ‘Donde voy, donde voy(어디로 나는 가나, 어디로 가고 있나)’의 진폭과 함축된 화자의 심경을 더 직절하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화자는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몰라서 그렇게 탄식하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월경도 어렵지만 월경하여도 연인과 함께하지 못한다면 그곳이 어딘들 목적지가 아니라는 저변의식, 그 한 변주이며 그 강조인 것이다. 화자는 자신의 궁극 목적지가 어디까지나 재회한 연인과 함께하는 거소(居所), 즉 가정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 동기와 목적이 달성되지 않은 현재 또한 월경 당시처럼 불안과 희망이 교차하고 있고 또 그때처럼 외롭고 외로워 그렇게 자문한 것일 것이다. 우리는 그 직후, ‘희망은 우리의 운명’이란 다짐의 진술에서 화자가 기구하는 그 목적지를 그 간절한 심경을 같이하며 보다 짙게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화자처럼, 그렇게 애절하고 막막한 월경의 길을 지나 미국에 와 여전히 동요하는 불법이민자로 지내다가 그토록 그리던 연인도 불러들이고 마침내 투표권을 가진 이민자들, 그 과반 이상이 미국의 이번 대선에서 ‘이민자의 적’으로 세계에 널리 알려진 트럼프를 지지하였다고 한다. 후속 불법이민자들이 자신의 일자리를 싸게 빼앗거나 적어도 임금을 줄게 한다고 우려하며. 이런 아이러니가 세속에서 어디 한 둘이랴마는, ‘내로남불’이라고 쉽게 말하기 어렵고, 아니라고 하기는 더 어렵다. 일찍이 맹자(기원전 372-289)가 양혜왕에게 “하필왈이(何必曰利)”라고 유감스럽게 반문하며, 목전의 이익 여부를 기준으로 국가의 체제와 개인의 삶을 영위하면 결국 투쟁과 위해가 야기된다며, 인의(仁義) 여부를 먼저 기준으로 삼지 않을 수 없다고 하였는데, 낡았지만 새롭기도 한 이 화두를 미국이나 우리나 그대로 따를 수는 없어도, 난세의 전국시대(戰國時代)를 도래하게 할 트럼피즘 시세(時勢)를 우리는 그래서라도 방임해서는 안 될 것이다. ‘Donde voy, donde voy(어디로 나는 가나, 어디로 가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