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시불
박 경 숙
하늘에 붉은 감 점점이
연등처럼 매달려
대낮 뿌연 눈 속
밝다
누가 켜 놓았을까
앞뜰 뒤뜰 사방 밝히는
선운사 홍시불
함박눈 퍼붓는데
푹푹 쌓이는데
동백 숲에서 튀어나온 새 떼들
우르르 홍시불 아래
재잘재잘
따듯도 하겠다
시인은 한겨울 선운사를 찾은 듯하다. 선운사는 봄에 피는 동백이라 하여 춘백으로 부르는 꽃으로 이름난 곳이다. 한겨울 춘백이 피었을 리 만무하다. 그런데 불현듯 ‘동백 숲에서 튀어나온 새 떼들’ 시인은 발걸음을 멈춘다. 내려 쌓인 함박눈에 미끄러지지 않으려 조심조심 신발코만 바라보던 눈길을 들어 하늘을 본다.
‘하늘에 붉은 감 점점이/연등처럼 매달려/대낮 뿌연 눈 속/밝다’ 경이로움이다. 까치밥으로 하나둘 남아있는 홍시가 아니다. 내리는 눈발로 대웅정 부연 끝 단청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데 하늘 빈 공간을 선연한 붉은 빛으로 점점이 채운 홍시가 눈에 들어온다. 부처님 오신 날 절집 마당을 가득 덮으며 단 지등(紙燈)만이 연등이랴. 저 감들이 연등이다. 연등을 다는 이유가 무명(無明)의 바다에서 지혜의 빛을 찾으려는 중생의 간절함이 아니겠는가. 시인이 한겨울 무슨 연유에서 산집을 찾았겠는가. ‘누가 켜 놓았을까/앞뜰 뒤뜰 사방 밝히는/선운사 홍시불’ 한겨울 감나무에 달려있는 붉은 감들이 시인에게는 연등이고 ‘사방 밝히는’ 천강의 달빛이다.
‘함박눈 퍼붓는데/푹푹 쌓이는데/동백 숲에서 튀어나온 새 떼들/우르르 홍시불 아래/재잘재잘/따듯도 하겠다’ 여전히 함박눈은 그칠 줄을 모른다. 그래도 시인의 가슴은 따듯하다. 시인은 그 따듯함만으로도 한겨울을 넉넉히 건널 것이다.
또 우리에게도 그러하라고 한다.
박경숙 시인
2003년 『문예비전』 신인상
시집 『비금도의 하루』, 『야생을 말리다』
한국문인협회, 국제PEN클럽한국지부, 수원시인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