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의 '수원 詩, 수원 詩人'(32)] 이강석 '뒷간과 세월'

김준기 수원시인협회 회장

 

뒷간과 세월

               이 강 석

 

고향집 뒷간 멀어

밤마다 웅얼웅얼 가고오고

신문지 구기던 어린 시절에는

세월이 저리도 멀더니

 

나이들어 집 안에 양변기

최근에 비데까지 들여

방에서 뒷간까지 가까운 그만큼

세월은 마구 달려가더라

 

차라리 차라리

뒷간 하염없이 깊다는

그곳에 움막 짓고 살며

빠른 이 세월

반나절이라도 잡아볼까

 

‘고향집 뒷간 멀어/밤마다 웅얼웅얼 가고오고/신문지 구기던 어린 시절에는/세월이 저리도 멀더니’ 

내가 알기로는 시인의 고향은 화성시 비봉이다. 그 옛날에는 화성군 비봉면이었다. 수원의 인구도 10만 남짓이었던 시절로 도심만 벗어나면 농촌이었다. 하물며 화성군 비봉면임에랴. 사방을 둘러봐도 논과 밭뿐이었을 것이다.

농가의 뒷간은 대개가 집 밖에 있었다. 뒷간은 단순히 용변을 보는 곳이 아니라, 아궁이에서 내온 재와 짚 더미를 한쪽에 쌓아 놓고 거기에 인분을 섞어 쌓아 퇴비를 만들어 보관하는 두엄간의 기능도 함께 했다. 두엄이야말로 농가의 큰 재산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두엄을 만들기 위해서는 인분이 반드시 필요했다. 오죽하면 지독한 사람을 일컫는 말로 작은 것이 마려우면 오리를 참고 큰 것이 마려우면 십 리 길을 참고 걸어 자기 집 뒷간에서 볼일을 본다고 했을까. 하지만 어린아이에게 한밤중에 그 뒷간을 가는 일은 난제였다. 화장지도 따로 없던 시절이었다. 신문지를 구겨 대신 사용했다. 그야말로 그때는 그랬지 하고 그 시절이 그대로 그려진다.

그때는 왜 그리도 시간이 안 지나갔을까. ‘신문지 구기던 어린 시절에는/세월이 저리도 멀더니’. 참말로 시간이 더디게 흘러갔다. 빨리 어른이 되어서 아이라고 무시당하는 일도 없고, 도시로 나아가 번듯하게 돈도 벌고 당당히 어깨도 펴고 싶은데 그 시절 시인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속절없이 세월이 흘렀다. 그야말로 상전벽해이다. 우리네 삶의 모습도 따라 변했다. ‘나이 들어 집 안에 양변기/최근에 비데까지 들여/방에서 뒷간까지 가까운 그만큼/세월은 마구 달려가더라’ 두엄간으로도 쓰던 집 밖의 뒷간은 어디에도 없다. 다만 ‘방에서 뒷간까지 가까운 그만큼/세월은 마구 달려가더라’라며 세월의 흐름에 점점 더 가속도가 붙는 하루하루가 아쉬울 뿐이다. 안타까울 뿐이다. 하여 ‘차라리 차라리/뒷간 하염없이 깊다는/그곳에 움막 짓고 살며/빠른 이 세월/반나절이라도 잡아볼까’라며 시인은 빠르게 흘러가는 야속한 시간에 가슴을 때린다. 세월의 야속함이야 어찌 시인뿐이겠는가. 그리고 어린 시절 고향 집이 그리운 것도. 좋은 시란 이런 시가 아닐까. 굳이 난해한 시적 장치나 수사적 기교를 떠나 많은 이가 고개를 끄덕이는. 

이강석 시인은 필자와는 고등학교 동기동창이다. 졸업 후 곧바로 공무원이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는 5급 을이라고 했다. 지금으로 말하면 9급 공무원이다. 그 자리에서 시작하여 2급에서 정년퇴직을 한, 공무원 사회에서는 그야말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외길로 매진하였어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시적 소명도 등한시하지 않고 정진한, 동창이기에 앞서 존경하는 시인이다.

 

이강석 시인

『해동문학』으로 등단

동두천시 부시장, 오산시 부시장, 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등 역임

저서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 공무원 밀고 당기는 홍보 이야기』, 『정치를 참견하고 싶은 나이』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