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종의 문학잡설(100)] ‘다시 미풍 불어달라고 바라지 않아도 좋으리’
새삼스럽지만 시에서 다뤄지는 사물은 삼라만상처럼 다양하고 직접 간접 표출되는 의사 또한 그러하며, 철학메시지도 그중 한 큰 갈래이다. 철학은 관념과 논리 위주의 제시방식으로 시와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지만, 철리시란 장르도 있고, 시에서 이미지와 정경과 사연을 향유하고 나아가 그 형상화에 함유된 의사를 명제의 언어로 귀납하면 철학의 범주로도 이행된다. 이치 성찰은 우리의 인식을 더 조리 있게 하며, 우리는 시 감상에서 그러한 다층 인식을 자주 체험하였다. 그런데 다음과 같은 시에서 후자를 놓치기 쉽다.
獨倚山窓夜色寒(독의산창야색한) : 산으로 난 창에 기대니 밤빛과 기운이 차갑고
梅梢月上正團團(매초월상정단단) : 매화나무 우듬지에 달 떠오르고 달은 둥글고 둥글다
不須更喚微風至(불수갱환미풍지) : 다시 미풍 불어달라고 바라지 않아도 좋으리
自有淸香滿院間(자유청향만원간) : 이윽고 매화 맑은 향기 스스로 퍼져 집안에 가득하니
- 「도산월야영매(陶山月夜詠梅)」 제1수/이황(1501-1570)
步屧中庭月趁人(보섭중정월진인) : 뜨락을 거닐자 달이 사람을 따라 오고
梅邊行繞幾回巡(매변행요기회순) : 몇 번이나 매화나무 언저리를 돌고 돌았는가
夜深坐久渾忘起(야심좌구혼망기) : 밤 깊도록 황홀히 앉아 일어서기를 잊었는데
香滿衣巾影滿身(향만의건영만신) : 어느덧 매화 향기는 옷에 배었고 꽃 그림자는 내 몸에 어려 있네
- 「도산월야영매(陶山月夜詠梅)」 제3수
우리는 이 시들을 읽고, 이른 봄 여전히 매서운 추위에도 불구하고 꽃 피워 청결하고 아름다운 향기로 주변을 고아(高雅)하게 정화하는 매화나무를 휘영청 밝은 달밤에 공경하는 시인의 태도와 심정을 잘 이해할 수 있다. 또 단순한 취향 고백의 풍류 풍정이 아니라, 특히 ‘어느덧 매화 향기는 옷에 배었고 꽃 그림자는 내 몸에 어려 있네’란 3수의 결구에서 매화와 자신과의 합일을 추구하는 시인의 각별한 의지도 감수하게 된다. 필자를 포함해서 이상 감상으로 우리는 자족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유려한 서경과 진솔한 서정의 시를, 조선 최고의 성리학자 퇴계가 말년에 도달하였던 대미, 주희(朱熹 : 1130-1200)와 달리, ‘리(理)’의 능동성과 자율성을 강조한 ‘리유용(理有用 : 리는 존재만 하지 않고 우주에서 작용한다)’ ‘리자도(理自到 : 리는 기에 의지하지 않고도 스스로 인간과 사물에 이른다)’ 학설에 연계시켜 감상의 폭을 넓힐 수 있다.
제1수의 3, 4행 ‘다시 미풍 불어달라고 바라지 않아도 좋으리/이윽고 매화 맑은 향기 스스로 퍼져 집안에 가득하니’를, 사람들이 매화 향기가 바람이 불어야 그 바람에 불려 뜨락을 지나 방에 도달한다고만 알고, 다시 그 향기를 체험하려고 바람이 불기를 바라며 기다리고 있는데, 알고 보면, 바람이 불지 않아도, 매화나무가 그 향기를 자신의 역량으로 스스로 주변에 퍼져나가게 한다는 사실을 시인이 부각 강조하고 있다고 주목하고, 즉 적어도 그 향기가 기류(氣流)에 의지하는 피동의 객체만이 아니라 그 기류를 주체로서 타고[乘] 사역시켜 주변으로 퍼져나가기도 하는 주체라는 소신을 시인의 의도로 파악하고, 나아가, 이 정경을 ‘리(理)’와 그 능동 작용을 환유하고 있다고 우리는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복합 병렬은 우연의 일치가 아닐 것이다. 퇴계는 인간은 선성(善性)의 존재이고, 그 선성은 우주로부터 왔으며, 그 발휘는 인간의 의지뿐만 아니라, 자연의 자연스러운 이치이기도 하다고 노년에 더욱 소신하였다.
제3수의 3, 4행 ‘밤 깊도록 황홀히 앉아 일어서기를 잊었는데/어느덧 매화 향기는 옷에 배었고 꽃 그림자는 내 몸에 어려 있네’도 ‘리(理)’의 접근과 그 감화 취지의 형상화로 이해할 수 있다. ‘매화 향기’, 즉 ‘리(理)’는 바람이 불면 바람을 활용하고, 바람이 불지 않아도 스스로 이윽고 ‘사람’의 몸에 안착하여 거듭 거듭 그 ‘심성(心性)’이 된다... 다음 시에서 우리는 그 진경(進境)을 읽을 수 있다.
梅萼迎春帶小寒(매악영춘대소한) : 매화 떨기 봄 맞아 찬 기운 띠어
折來相對玉窓間(절래상대옥창간) : 한 가지 꺾어와 창가에 두고 마주하네
故人長憶天山外(고인장억천산외) : 고인은 아득한 천산 너머 세상을 길이 생각하며
不耐天香瘦損看(불내천향수손간) : 견디기 어려워하리, 천향이 마르고 축나는 모습을 본다면
- 「절매치삽안상(折梅置揷案上)」
이 시 3, 4행 번역에 논란이 있을 것이지만, ‘고인’(옛 현인)의 서거를 서거로만 알지 않고 모종 소통이 가능하다는 시인에게 내재한 영성(靈性)에 결부시키면 그 표현을 이해할 수 있다. 또 시인이 이기의 욕망과 시정(市井)의 권력으로 혼란한 현재를 ‘천향(매화 향기)’이 ‘마르고 축나’는 부자연하고 부조리한 세계로 보고 있고, 고인들도 이를 크게 걱정하며 어떤 이화(理化)의 도리를 이행하리라 상상하는 자의식도 점검할 수 있다. 우리는 또한 이 상상을 시인의 이상(理想)으로 바꿔 이해할 수 있으며, 내포되어 있는 관련 소원과, 그리고 그 대열의 후미에서 미력하나마 동참하겠다는 의지도 읽을 수 있다.
양극화, 기후변화, 이기의 물질편중과 전쟁 등 현대의 제반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를 유학에서 계발하자는 슬로건으로 지난 주 11월 21부터 24일까지 타이페이 대만대학교에서 「제30차 유교사상과 퇴계학국제학술회의」가 열렸다. 그간 현대의 관련 학자들이 조명하였지만 퇴계의 ‘리유용(理有用)’ ‘리자도(理自到)’ 학설도 이번 대회에서 확대 검토되었는데, 대만의 학자 황준걸(黃俊傑) 양유빈(楊儒賓) 씨 등은 그 진전을 거론하며 퇴계를 성리학의 완성자, 즉 퇴계가 주자를 계승하면서도 온고지신에 해당하는 개척 발명(發明)의 ‘창신(創新)’을 이뤘다고 평가하였다.
퇴계는 아마 그런 견지에서 ‘리기호발(理氣互發)’을 전제로 사단(四端)을 ‘리발이기수지(理發而氣隨之 : 사람에게서 리가 먼저 일어나고 기가 따른다’로, 칠정(七情)을 ‘기발이리승지(氣發而理乘之 : 기가 먼저 일어나더라도 리가 그 운행을 조섭한다)’로, 즉 ‘인간은 역시 우주가 품부한 ‘리(理)’로 ‘기(氣)’를 그 발생 선후를 막론하고 따르게 하거나 조섭해야 한다’, 즉 도덕의지를 적극 발동하여야 한다고 강조하는 최종 정리를 하였다고 하겠다.
한 겨울 못지않게 추운 초봄에 피어 천하에 봄을 선도 발양하는 매화나무와 향기를 기린 시들. 그렇다면 이 시들에서도, 사람에게서 선량한 본성을 더욱더 성찰하고 그 근본 소종래(所從來)인 ‘리(理)’에 주자 이후 5백여 년 동안 주자의 권위 때문인지 간과하였거나 다루지 못하였던 능동성과 자율성을 영성으로 부여하며, 은은하게 퍼져나가는 맑고 아름다운 정화의 매화 향기로 형상화한 철학자 시인 퇴계의 시로 융화된 도덕의지가 돋보인다. 다시 말해 퇴계도 물론 악한 본성과, 그 편향과 일탈을 부인하거나 외면하지 않았으나, 사람이 ‘리(理)’처럼 ‘자율’의 주체가 되어 ‘기(氣)’를 제어하면서 활용하여야 사람답게 살 수 있지 않겠느냐는 신념을 시로도 제기하였다고 하겠다. 이 주제는 공자(BC.551-BC.479)의 ‘극기복례(克己復禮)’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한편 제 3수에서 3, 4행을 본고와 다르게 해석하고 퇴계의 다수 매화 시가 단양의 관기 두향과의 사랑을 노래한 시라는 주장들이 있다. 본고의 제3수 3, 4행 해석이 틀렸다고 하더라도, 퇴계는 두향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조선 후기에 이미 낭설이 유포된 듯하고, 1978년에 소설가 정비석의 야담집 『퇴계소전(退溪小傳』에 실린 이후 계속 재생산 되고 있다.(김언종이 퇴계는 두향이란 인물과 만난 적조차 없었다는 사실을 이미 몇 해 전에 논고로 밝혔는데도 더욱 확산되고 있다.) 또 심지어 퇴계가 임종을 앞두고 서거 직전에 “매화에게 물을 주라”는 유언도 매화가 두향의 은유라면서 퇴계가 두향을 그토록 그리워했다는 증빙으로 삼는 주장들마저 있다.
다시 말해 퇴계는 100여 매화 시를 지었다. 매화를 ‘매형(梅兄)’이라한 시도 있는데, 다른 시들에서 그 기리는 태도와 정조가 마치 연인 사이의 사랑이라고 하여도 그럴 듯하여 조선 후기 어느 시기에 그런 낭설이 발생하였다고 하겠다. 퇴계의 매화 사랑은 그만큼 진폭이 남다르다. 본고에서 살핀 대로 퇴계의 매화 시들은 매화나무의 의연하고 부드러운 생리와 깨끗하고 아름다운 매화 향기를 자신의 여러 지향을 총괄하는 상징으로도 삼고, 그 미덕을 애착하며 두루 예찬 상찬한 작품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