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동의 視角] 마지막 남은 한 달, 귀를 열고 마음을 열자

대표이사 / 한국지역인터넷신문협의회장

 

초 스피드시대, 상대방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려면 많은 인내심이 필요하다. 경청(傾聽)을 하려면 더욱 그렇다.

해서 그런가? 우리 주위에는 말을 잘하는 사람은 많아도 다른 사람의 말을 잘 경청하는 사람은 의외로 드물다.

점점 남의 말을 듣지 않으려는 세상이 돼가고 있는 셈이다. 반면 내 말을 더 많이 하는 사람들은 점점 늘고 있다. 

아울러 대화와 타협도 실종되고 있다. 심지어 상대방 말을 '평가절하'하며 '깔아뭉개기'도 다반사다. 

물론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정치인들이 대표적이다. 

요즘 뉴스에는 정치 소식이 넘친다. 그중 절반은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 김건희 여사와 한동훈 대표, 거기에 명태균이 주인공이다. 

이런 뉴스 속에서도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기는 커녕 귀담아 듣는 모습은 찾아 볼 수 없다. 

책임감 없이 내뱉는 '아니면 말고식' 말들이 넘쳐나고 진영논리를 앞세워 동조하는 말까지 난무한다.

우리 사회 일반인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가정에서의 대화가 단절되고 지인들과의 말 섞음도 적어지고 있어서다. 

경청보단 반론이 판을 치고, 없는 말도 만들어 내는 각박한 세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말이 많다는 것은 논란이 많다는 이야기다. 어지러운 세상이라는 뜻도 함축하고 있다.

구설(口舌)의 폐해를 지적한 김천택의 청구영언(靑丘永言)의 고시조가 다시 생각난다. 

“남의 말 내 하면 남도 내 말 하는 것이 말로써 말이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

사람들이 말을 하는 이유는 대략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표현하여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다. 

다른 하나는, 자신의 고통과 억울함을 호소하며 위로받기 위함이다.

말을 하며 서로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대화'의 소중함이 강조되는 이유다.

"대화를 통해 기쁨을 나누면 두 배로 늘고, 슬픔은 함께 나누면 절반으로 준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 속에 경청이 있다. 어렵지만 최소한의 노력만이라도 필요하다. 

경청이 이뤄지지 않으면 공감보다 권위가 앞설 수 있고 소통은 기대하기 어렵다.

나라의 지도자를 포함, 가정의 가장에 이르기까지 모두에게 해당되는 진리다.

인간의 삶이란 결국 말하고, 읽고, 듣기다. 이중 말을 배우는 데는 2년이 걸린다고 한다. 

반면 듣기를 배우는 데는 60년이 걸린다고 한다. 그래서 60 나이를 (耳順)이라 했다.

그만큼 말하기, 읽기, 듣기 세 가지 중에 가장 어렵다고 해서다. 

영국 속담엔 이런 이야기도 있다. “지혜는 듣는 데서 오고 후회는 말하는 데서 온다” 

마지막 남은 한달이라도 귀를 열고 마음을 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