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의 '수원 詩, 수원 詩人'(34)] 곽 예 '달력'

김준기 수원시인협회 회장

 

달력

                  곽  예

 

왕고모가 달력을 보내셨다

스마트폰 하나면

시계도 달력도 필요 없는데

 

하기는 스마트폰으로 

책을 싸고

호박전 김치전 널고

둘둘 말아

모기를 잡을 순 없겠다

 

하기는 스마트폰에

잘 깎은 연필로

“병아리 태어난 날”

침 발라 적을 순 없겠다

오늘 저녁엔 가족들 모여

달력 뒷면에

윷놀이 말판을 그려볼까

 

눈이 오면 동생하고

모자와 배 접어야지

눈사람은 달력모자 쓰고

달력배 저어 저어

눈 속을 항해하겠지

 

우리는 항해 떠나는

눈사람 어부의 등 뒤로

달력비행기를 날려 줄 거야

배웅하는 비행기야.

 

내가 나이가 든 것일까. 점점 더 세상이 많이 바뀌었음을 실감한다. 그리고 ‘예전에는…’이라는 말을 하는 경우가 점점 는다. 

그래도 해야겠다. 예전에는 달력이 참 소중한 물건이었다. 물자가 부족해 모든 물건이 귀하기도 했지만, 달력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받은 달력으로 대청마루에서부터 방방이 달력을 걸어놓은 숫자가 그 집 가장의 능력을 가늠하는 잣대이기도 했고 연말연시엔 꽤 괜찮은 선물이기도 했다. 그랬던 달력이 요즘은 천대를 받는다. 그놈의 스마트폰 때문이다.

왕고모께서 달력을 보내셨단다. 왕고모는 아버지의 고모이시니 옛날 어른이시다. 아무리 ‘스마트폰 하나면/시계도 달력도 필요 없는’ 세상이어도 그분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선물이다. 그리고 이내 그 선물은 시인으로 하여금 추억의 여행을 떠나게 해준다.

‘하기는 스마트폰으로 /책을 싸고/호박전 김치전 널고/둘둘 말아/모기를 잡을 순 없겠다//하기는 스마트폰에/잘 깎은 연필로/“병아리 태어난 날”/침 발라 적을 순 없겠다’

종이 한 장도 귀했던 시절이다. 한 달이 가면 떼어낸 달력을 버리지 않고 차곡차곡 모아둔다. 요긴하게 쓸 데가 많기 때문이다. 학년이 바뀌면 받게 되는 교과서 표지를 싸는 데 달력보다 좋은 종이가 없었다. 더군다나 렘브란트나 고흐의 그림 등을 인쇄한 것이라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였다. 그리고 명절 전날 전을 부칠 때에 소반 위에 깔기도 그만한 종이가 없었다. 키친타올이라는 것을 상상으로도 그 이름도 생각할 수 없었을 때다. 그렇게 우리네 일상의 잔잔한 미소 혹은 애잔한 눈물과 함께 했던 달력이 스마트폰 때문에 사라져 간다. 그러니 ‘잘 깎은 연필’에 침을 묻혀 가며 ‘병아리 태어난 날’이라고 적을 일도 없다. 

잠시 이야기를 돌려 보자. 왜 하필이면 ‘병아리 태어난 날’일까. 내가 아는 시인 곽예는 그런 시인이다. 누구보다도 따듯한 심성을 지니고 맑고 고운 동심의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시인이다. ‘동시조집 『초롱이 오빠』’라는 독특한 책을 상재한 일도 우연이 아니다.

다시 돌아와서 시인은 그 시절이 그립다는 말을 시 어느 구절에도 쓰지 않았다. 그런데 이 시는 우리를 동심의 어제, 그 그리움의 시공으로 인도한다. ‘오늘 저녁엔 가족들 모여/달력 뒷면에/윷놀이 말판을 그려볼까//눈이 오면 동생하고/모자와 배 접어야지/눈사람은 달력모자 쓰고/달력배 저어 저어/눈 속을 항해하겠지’ 달력의 뒷면은 윷놀이의 말판을 그리기에도 더없이 좋았다. 또 모자나 종이배 혹은 종이비행기를 접기에도 그만이었다. ‘우리는 항해 떠나는/눈사람 어부의 등 뒤로/달력비행기를 날려 줄 거야/배웅하는 비행기야.’로 달력 덕분에 얻었던 동심의 여행을 맺는다. 

또 한 해가 간다. 남은 한 장의 달력으로 나는 어디로 떠나는 비행기를 접을까. 배를 접을까. 긴 겨울밤을 고민해 보아야겠다. 그건 그렇고 곽시인. 요즘 얼굴 보기가 어렵습니다. 프로 야구도 쉬는 계절이니 조만간 한번 봅시다. 감기 조심하시고.

 

곽  예 시인

『한국시학』으로 등단

시집 『북간도』

동시조집『초롱이 오빠』

산문집 『곽예의 사진일기』, 『곽예의 독서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