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목사 아침묵상] 내 삶을 이끌어 준 10가지 말씀(77)

김진홍 목사

입학식에 모인 학생들의 모습이 가관이었습니다. 

빨간 머리, 노란 머리, 파란 머리, 머리 색깔부터가 총천연색이었습니다. 

설교 시간이나 축사 시간 등 행사가 진행하는 동안 제대로 된 자세로 앉아 견디는 학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노무현 변호사가 축사하는 동안에는 달랐습니다.

축사가 시작되는 때는 삐뚤어진 자세로 앉아 있던 학생들이 축사 시간이 10분이 넘어서자 모두들 자세를 바르게 하고는 진지하게 들었습니다. 

행사가 마친 후에 교사들이 모여 차를 마시며 하는 말이 학생들이 노무현 변호사의 축사 시간이 40여분이나 되었는데 학생들이 진지하게 듣는 것이 참 이상하다 했습니다.

그러기에 내가 답해 주었습니다. 

"아마 수준이 비슷해서 잘 들었을 거야" 하며 웃었습니다. 

노무현이란 분이 정치적인 명은 제하고 인간 자체로서 참 아까운 인물이었습니다. 

무슨 연유에서인지 삶의 마무리가 잘못되어 지금도 그를 생각하면 아쉽고 짠한 느낌입니다.

두레자연학교가 시작된 후에 거친 학생들, 마음대로 살아 온 학생들의 규율을 어떻게 세워 갈 것인가에 대하여 교사들의 고민이 깊었습니다.

 전교생이 기숙사에서 지나기에 남자 기숙사와 여자 기숙사 사이에 잘못 오고가는 일이 일어날까 염려가 되었습니다. 

기숙사에 2층은 여학생들의 숙소이고 3층은 남학생들의 숙소였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남녀 기숙사에서 오고가는 일이 빈번하기에 저녁 9시 이후에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자는 방안을 세워 광고했습니다.

9시 이후는 3층의 남학생들이 2층 여학생 방에 드나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 교사가 복도에서 지키도록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기숙사 전체가 조용하여지고 질서가 잡히기에 학생들이 잘 따르는구나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남학생들 중에 침대 홑이불로 밧줄을 만들어 창문에 달고는 2층으로 내려가는 것을 모르고 선생님은 복도에서 앉아 졸고 있었습니다. 

그런 정도였던 학생들이 선생님들이 형님처럼, 부모처럼, 함께 운동하고, 함께 식사하고, 열성을 다하여 가르치니 질서가 잡혀 나갔습니다. 

3년 후 첫 졸업식이 있는 날 졸업식장이 울음바다가 되었습니다.

한 학생이 "우리가 선생님들을 왜 그렇게나 괴롭혔을까" "부모님 속을 왜 그렇게 썩혔을까"를 후회하며 흐느껴 울기 시작하니 학생들 모두가 울음바다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니 선생님들도 울고, 졸업식에 참여한 부모님들도 울고, 설교하러 단상에 올라간 나도 울었습니다. 

그런 졸업식을 치르고서 나는 힘들여 학교를 세운 보람을 느꼈습니다. 내 생애에서 최고로 잘한 일이란 긍지를 느끼게 되었습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