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의 '수원 詩, 수원 詩人'(35)] 오호영 '고등동 앨범 5'
고등동 앨범 5
오 호 영
월동 준비로 들여 논 연탄이 떨어져
매일 연탄을 사오는 일이 내 몫이 되었습니다.
새끼줄을 중심 구멍에 끼운 연탄 낱장을
사오는 일은 창피하기도 하지만
깨지기도 잘 해서 잘 해야 본전입니다.
한참, 재미있게 놀 때
불 꺼진다고 빨리 사오라시면
정말 판이 깨집니다.
총알같이 갔다 와도
친구들은 기다려주지 않고 아무도 없던
썰렁한 그 골목길 놀이터
이 시는 오호영 시인이 2012년에 펴낸 연작시집 『고등동 앨범』에 들어있는 시이다. 시인이 시집 머리말에서 언급했듯이 ‘맨드라미, 백일홍, 개똥참외, 오이지, 수제비, 부뚜막, 석유곤로, 찬장, 무구덩이, 쥐덫, 연탄재 등 수많은 유년의 기억들 속 소품들로 슬픔의 그늘에서 흘리던 눈물까지도 빛나는 아름다움이었다.’라며 그려낸 107편의 연작시들로 엮은 시집이다.
그랬다.
그때는.
국민 절대다수가 절대빈곤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던 1960년대가 이 시의 배경이다. 수원의 인구가 10만 남짓이던 시절에는 시인이 유년 시절을 보낸 고등동도 반농반도(半農半都)의 마을이었다. 바꾸어 말하면 도시도 농촌도 아닌 어정쩡한 마을 구성원 대다수의 일상은 궁핍에서 벗어나기가 힘들었으리라.
‘월동 준비로 들여 논 연탄이 떨어져/매일 연탄을 사오는 일이 내 몫이 되었습니다.//새끼줄을 중심 구멍에 끼운 연탄 낱장을/사오는 일은 창피하기도 하지만/깨지기도 잘 해서 잘 해야 본전입니다.’
요즘 가옥의 형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구조 중의 하나가 탄광이다. 그 탄광에 겨울을 온전히 날 수 있을 정도로 연탄을 싸놓고 사는 집은 동네에서 잘 산다는 축에 속하는 몇몇 집뿐이었다. 대부분은 그날그날 필요한 연탄을 한두 장씩 사다가 탄불을 꺼트리지 않고 이어나가야만 했다. 사실 필자도 그렇게 한 장씩 사 오는 연탄을 수없이 날라보았다.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그 연탄 한 장을 사 들고 오는 길에 같은 반 여학생이라도 마주치면 그야말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새끼줄에 꿴 연탄을 들고 오다 보면 아무리 조심해도 연탄이 바짓자락에 검정 칠을 하기 마련이다. 그까짓 바지에 묻은 검정 칠이 대수랴. 연탄을 사러 가느냐고 잠시 빠져야만 했던 친구들과의 자치기 혹은 딱지치기가 기다리는 골목길로 뛰어간다. 그런데 아무도 없다. 시인은 ‘총알같이 갔다 와도/친구들은 기다려주지 않고 아무도 없던/썰렁한 그 골목길 놀이터’라고 했다. 어느새 뉘엿뉘엿 땅거미가 깔리는 시간이다. 그 쇠잔한 겨울 저녁의 햇살을 등에 지고 집으로 향하여야만 했던 추억은 지금도 그 바짓자락에 묻었던 연탄의 검정만큼이나 지워지지 않는다.
그래도 시인의 말처럼 어두워 가는 골목에서 흘렸던 눈물까지도 빛나는 아름다움이었다. 그 시절의 추억을 공유할 수 있어 더 아름답다. 오랜만에 오호영 시인과 통화를 했다. 시의 길을 함께 걸어온 도반이기에 언제 만나도 혹은 목소리만 듣더라도 반갑다. 조만간 오시인이 군포에서 운영하는 약초 건강원에 한번 가야겠다. 굳이 서로의 소식을 길게 묻지 않더라도 웃음만으로도 충분히 그동안의 안부가 될 수 있는 지음이 있음은 축복이다. 그 안부만으로도 이 겨울을 따듯하게 날 수 있을 것 같다.
오호영 시인
『예술세계』 신인상
한국시인협회 회원
2000년 올해의 경기시인상 본상 등 수상
시집 『새들의 세상이구나』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