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영 광교칼럼] 비상계엄’이라, 45년 전 악몽이 되살아났다
내 가장 꽃다웠던 나이 만 스무 살에 징집된 군대, 군복을 입고 겪었던 10.26, 12,12, 5.18...
그 끔찍했던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을까, 나의 아들 딸, 손주를 비롯한 젊은 세대들이 고난을 겪지 않을까. 요즘 나의 걱정이 태산 같았다. 그래서 13일엔 여의도 국회의사당 집회 현장으로 갔다.
평일 오후인데도 인산인해, 방송에서 보던 그 응원봉을 든 젊은이부터 나 같은 ‘노땅’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 '대통령 탄핵'을 외치며 노래 부르고 춤을 췄다.
최루탄과 화염병, 돌멩이가 날아다니고 곤봉을 든 ‘백골단’이 시위대를 잡으러 뛰어오던 그 살벌한 풍경이 아니었다. 군중들이 외치는 구호는 대통령 ‘탄핵’, ‘하야’, ‘체포’ 등 무겁고 심각한 내용이었지만 현장 분위기는 그냥 축제였다.
여기저기서 커피와 어묵, 핫팩 등을 무료로 나눠주고 있었다. 나도 어느 단체인가에서 준 주먹밥과 물로 허기를 메웠다. 한 젊은 여성은 나이든 내가 안쓰러웠는지 초콜릿을 한줌 내어준다.
공원 한쪽에서는 탄핵을 염원하며 5000배를 하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2024년 12월 3일 밤 10시 27분,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그날 모처럼 일찍 잠자리에 들려고 했다. ‘내일 사설로 쓸 만한 기사가 뭐 있나’ 검색한 다음 컴퓨터를 끄려고 했는데 웬 해괴한 자막이 뜬다. ‘비상계엄’이 선포 됐단다. 이 무슨, 그야말로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소린가?
‘가짜 뉴스’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말로 대통령이란 사람이 계엄령을 선포한 것이다. 무장한 군인들이 헬기를 타고 국회에 내리고 국회 안으로 난입하는 장면을 보면서 소름이 끼쳤다. 아아, 이 나라가 거꾸로 가고 있구나.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45년 전인 1979년 10월 26일 ‘10.26’이라 불리는 박정희 전 대통령 피격사건이 발생했다. 그때 나는 군대에 있었다. 새벽에 라디오에서 장송곡 같은 음악이 흘러나오는 중에 대대 선임하사가 부대로 뛰어 들어오더니 “야, 큰일 났다. 비상이다. 대통령이 총에 맞아 죽었단다!”라며 어쩔 줄 몰라 했다.
눈앞이 캄캄했다. ‘전쟁이 나는구나, 이제 전쟁터에서 죽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 부대원들은 완전군장을 꾸린 채 대기해야 했다.
그리고 곧 계엄령이 선포됐고 우리나라는 암흑에 잠겼다. 그 암흑은 오래 지속됐다.
박정희를 쏜 김재규는 곧 체포됐고 당시 국군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 소장이 계엄사령관이었던 정승화 총장을 체포하고 군을 장악하는 12.12 군사반란을 일으켰다. 전두환 소장과 노태우 소장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신군부가 권력을 잡았다.
그리고 제대 말년이었던 1980년 5월 18일 0시부터 또 다시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 실시됐다. 전국에서 신군부세력을 몰아내자는 민주화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자 전두환이 이를 막고자 집회와 시위 진압을 위해 광주에 공수부대를 투입했다. 5.18이었다.
참, 운도 없다. 하필이면 그때 군대에 있다니.
신문·방송은 전두환 군사정권의 입맛에 맞게 광주시민들을 폭도로 규정했고, 잔인한 진압이 시작됐다. 그런데 전방에 있어 정보에 어두웠던 나는 언론의 보도만 믿었다.
그리고 두어 달 후 제대를 하고나서야 내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알아차렸다. 소위 판금서적이었던 광주 민중항쟁의 기록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황석영)를 숨어 읽을 때 내 눈에서 피눈물이 났다. 밤새 잠을 못 잤다.
그런데 전 세계가 인정하는 민주주의를 국민의 손으로 꽃피운 대한민국에서 또 다시 비상계엄이라니...또 다시 뚠 눈으로 밤을 지새워야 했다. 다행히 시민들과 야당의원, 일부 여당의원들이 국회로 달려가 계엄을 저지시켰다.
이 과정에서 넘어진 계엄군을 일으켜 주는 시민, 퇴각하면서 시민들을 향해 연신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이는 젊은 계엄군의 모습이 눈시울을 뜨겁게 하기도 했다.
국군 방첩사령부는 부대원 100명을 차출해 선관위 등에 투입했다. 해당 부대원들은 일부러 거리를 돌아다니다 편의점에서 라면을 먹거나 다른 장소에서 대기하는 등 사실상 명령을 거부했다고 한다.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의 투표장 이탈로 1차 탄핵은 성사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국민을 위해 명령을 거부하거나 일부러 출동을 지체해 계엄령을 저지하는데 큰 공헌을 한 군인들이 있음을 확인한 것은 다행이었다. 앞으로 1인 독재나 쿠데타가 우리나라에 발붙일 수 없을 것이라는 희망을 준 것이다.
물론 계엄군을 국회와 중앙선관위로 진입시켰으면서도 그저 명령이 따랐을 뿐이라는 말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것이 진정한 반성이었는지 면피용의 비겁한 변명인지는 곧 밝혀지리라.
그리고 대통령의 “끝까지 싸우겠다”는 대국민담화가 있었음에도 14일 2차 탄핵이 국회를 통과했다. 앞으로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절차가 남아 있고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그러나 사필귀정(事必歸正), 모든 일은 반드시 바른 곳으로 돌아간다는 옛 사람들의 말을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