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동항에서
이 상 정
이틀 밤 녹동항에서
녹이 슨 연장을 닦는다
땅거미 내린 소록대교엔
슬픈 사슴 두 마리
맑은 눈에
구름도 쉬어간다
억센 물결이 아침을 여는 수탄장
부모와 자녀가 눈으로만 만난다
탄식의 소리가 드높은 길을 걸으며
무카이 집에서
소록도 갱생원 만령당에서
고향을 등진 자들의 사연을 읽는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신성리
제비선창가에 노을이 진다
시인은 무슨 까닭으로 수원에서 이 땅의 땅끝이 지척인 녹동항까지 간 것일까. 정작 가고자 한 여정의 종점은 녹동항이 아니었다. 소록도였다. 그런데 차마 들지를 못한다. 시인은 ‘이틀 밤 녹동항에서/녹이 슨 연장을 닦는다’고 했다. 이틀 밤을 더 항구에서 서성이며 녹록지 않은 세상살이에서 그 삶의 방편이었던 연장에 슨 녹을 닦아낸다. 연후에 비로소 소록도로 든다.
‘땅거미 내린 소록대교엔/슬픈 사슴 두 마리//맑은 눈에/구름도 쉬어간다’
섬의 생김새가 작은 사슴을 닮아 섬 이름이 소록도이다. 그런데 녹동항에서 소록도로 건너가는 소록대교에 자리한 슬픈 사슴의 눈에서 쉬어가는 구름이 시인의 가슴을 아리게 한다. 사연이 있다. 이상정 시인이 시의 길을 걷기까지 나환자였던 한하운 시인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알고 있다. 어린 시절을 한하운 시인이 운영하던 고아원에서 보냈기 때문이다.
어쩌다 이상정 시인을 만나 소주 한 잔이라도 하는 날에는 시인은 간혹 어렵게 그 시절의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마디마디 어두운 그림자가 묻어나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내지만 가슴이 아려온다. 보통의 가정집에서 부모 형제의 보살핌으로 자라나도 궁핍으로 어려웠던 시절이다. 그 시절 고아원이 어땠을까는 굳이 물을 필요도 없다. 하지만 그 어려움 속에서 한하운 시인은 고아들을 돌보았고 그 시인은 나병 환자였다. 물론 병의 진행이 끝난 음성 환자였지만 그 흔적은 몸 곳곳에 남아 있어 누가 보아도 이른바 ‘문둥이’였다.
나병은 천형이었다.
오죽하면 미당은 ‘해와 하늘 빛이 문둥이는 서러워’라고 했을까. 우리가 알다시피 소록도는 양성 나환자들의 유배지였던 곳이다. 이 섬이 나환자들의 격리 시설로 사용되기 시작한 때가 일제강점기여서인지도 모른다. ‘무카이집’은 우리말 ‘맞이하다’에 해당하는 일본어 ‘무카이(迎い)’와 ‘집’이 합쳐져서 생겨난 말이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일종의 대합실인 셈이다. 이곳에서만 만나고 헤어져야 했다. ‘억센 물결이 아침을 여는 수탄장/부모와 자녀가 눈으로만 만난다’라고 했듯이 나병의 전염성을 믿었던 이들은 부모 형제끼리도 부둥켜안거나 하다못해 두 손을 맞잡지도 못하고 ‘눈으로만 만나’야 했던 무카이집에서 시인은 그 옛날 ‘고향을 등진 자들의 사연을 읽는다’라고 했다. 시인은 그 섬에서 어린 시절 자신을 돌봐주었던 한하운 시인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 천형의 시인이 젊은 시절 바라보았을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신성리/제비선창가에 노을’을 어린 이상정이 아니라 그도 어느새 노년이 되어 바라보는 저녁노을로 시상을 닫는다.
수원천을 따라 걷는 산책길에서 매교다리를 지나 한참을 걷다 보면 한하운 시인의 시 「보리피리」가 음각된 시비를 만날 수 있다. 한하운 시인이 월남하여 한때 수원 세류동에 기거했던 일을 기억하기 위해 세운 조형물이다.
이상정 시인은 교회 장로가 되더니 가급적 술자리도 피하는 눈치이다. 하지만 이상정 시인. 이 추운 겨울이 지나고 노란 개나리가 천변을 뒤덮고 수원천 제방의 버드나무가 파란 잎을 내밀 즈음에 만나 함께 수원천을 걸어봅시다. 소주 한잔 기울이며 녹동항에 가서도 소록도로 차마 들지 못하고 ‘이틀 밤 녹동항에서/녹이 슨 연장을 닦’은 사연을 안주 삼아.
이상정 시인
1995년 『시와 시인』으로 등단
경기문학인상 대상 외 다수 수상
시집 『욜로』 외 다수
표암문학회 회장
수원문인협회 부회장 역임
수원시인협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