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종의 문학잡설(104)] ‘한밤의 불빛들은 떨린다’

김승종 / 시인 · 전 연성대 교수

 

 낮과 밤은 우리 삶의 주요 환경이면서, 우리 자아의 양음(陽陰) 양면을 표상하기도 한다. 낮은 수행의, 밤은 성찰의. 해질녘을 기준으로 그 전후로 나눈 이런 도식은 진부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그 관성을 따르는 우리의 모습을 문득 보고 있고, 허용하고 있기도 하다. 다음 시는 밤 이야기의 하나이다.    

 

슬픔이 나를 어슬렁거린다

내가 밤에 취약하다는 걸 아는 눈치다

나의 집이 4층이라는 걸

가장 공포스러운 

11m 높이란 걸 염두에 둔 듯

바로 지금이라고 부추긴다

건너 편 아파트가 보인다

켜진 불빛이 여러 개 있다

그것은 모두 중독의 증상 

게임에 사랑에 불면에 고통에 불안에......

노출된 채

살아왔고 살아지고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거부할 수 없는 반응

돌아가고 싶지 않다와

돌아갈 수 없다 사이에

견딤이 있어서

한밤의 불빛들은 떨린다

그것은 나 이외에 가까운 사람이

상처 입길 바라지 않는 마음과 겹쳐진다

거기에 그만 끝내고 싶고 

마침내 떠나고 싶은 마음도 포개진다

견디는 것들이

견뎌지고 있는 지금

난 혼자야라는 기분이 오랫동안

나를 가두고 있었다는 걸 새삼 확인한다

새벽으로 가려는 수많은 혼자들

지독히 혼자가 되면 될수록

밤의 가장자리가 잘 보이는데

극단을 밀어내느라 힘겨운 몸짓이 선명한데

불빛이 하나 꺼지고

또 하나가 켜지면 다행이란 생각뿐인데

슬픔은 지금도 왜 침을 뚝뚝 흘리고

허기진 표정으로

나를 향해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걸까

난 끝까지 가장자리만큼은 포기할 자신이 없는데......

     - 「당신과 나의 가장자리」/ 하린

 

 한밤에 나타나 화자 가까이에서 ‘어슬렁거’리는 무슨 짐승 같은 ‘슬픔’. ‘내가 밤에 취약하다는 걸 아는 눈치’라는 화자의 말로 미루어, 화자가 반기지 않았겠지만 막고 싶지도 않았을 그것은, 동작은 느리지만 ‘바로 지금이라고 부추’겨 화자뿐만 아니라 우리도 긴장시킨다. 무엇을 부추기는지 화자가 부연하지 않았으나 ‘가장 공포스러운/11m 높이를 염두에 둔 듯’으로 보아, 그곳에서 뛰어내리라고 화자에게 속삭이고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즉 화자는 불면 상태에서 자신과 무엇을 슬퍼하다가 자기방기 충동도 느낀다. 화자는 또 자신처럼 밤 깊도록 뒤척이는 이웃들을 ‘건너 편 아파트’의 ‘켜진 불빛’으로 은유하면서 자신과 등치시키고, 더불어 ‘게임에 사랑에 불면에 고통에 불안에’ 빠진 그 ‘중독의 증상’이라고도 한다. 또 이 ‘증상’을, 자신을 포함해 그들의 삶에서 배제하지 못하는 ‘거부할 수 없는 반응’이라고 강조한다. 우리는 화자가 한밤에 왜 슬퍼하는지는 알 수 있으면서, 화자의 생각과 추정에 동의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어느 쪽이든, ‘돌아가고 싶지 않다와/돌아갈 수 없다 사이에/견딤이 있어서/한밤의 불빛들은 떨린다’라는, 역시 자신도 포함된 화자의 이어지는 진술에서, 이전과 다른 자제의 절제를 읽고 안도하고 지원하는 심정이 된다. 나아가 ‘떨린다’는 ‘한밤의’ 그 ‘불빛들’에, ‘나 이외에 가까운 사람이/상처 입길 바라지 않는 마음이 겹쳐’ 있다고 하고, ‘그만 끝내고 싶고/마침내 떠나고 싶은 마음도 포개진다’고 하여, 우리는 거의 모두 일정한 감명과 함께 마침내 화자의 상기 생각과 추정도 용인하게 된다. 

 더욱이 ‘밤의 가장자리’를 잘 보며, ‘극단을 밀어내느라 힘겨운 몸짓이 선명’한 ‘새벽으로 가려는 수많은 혼자들’에게 화자가 동병상련에서도 성원하며, ‘불빛이 하나 꺼지고/또 하나가 켜지면 다행이란 생각뿐인데’라고 토로하자, 즉 화자가 이웃이 드디어 불면을 끝내는 정경들을 보면서 흔연해하자, 우리도 어느덧 위로를 받는 듯하다. 

 그러나 그래도 화자에게는 여전히 ‘슬픔’과 충동은 ‘허기 진’ ‘아가리를 벌리고’ 있다. 이에 맞서는 마지막 행 화자의 표명은 무슨 짐승 같은 ‘슬픔’과 충동뿐만 아니라, 우리도 경청해야할 그 최선의 대거리라고 할 수 있다. ‘난 끝까지 가장자리만큼은 포기할 자신이 없는데......’. 온아하지만 강력한 이 우회의 표출에는 상기 진술에 혹 비껴 있다고 의심될 자찬(自讚)의 기미를 소거하는 진정성도 있다. 그리고 삶을 경외하고 자타에 겸허한 태도가 함축되어 있으며, ‘포기할 자신이 없는’ ’그 ‘밤의 가장자리’와 잘 어울린다고 우리는 반추할 수 있을 것이다.

 세말(歲末)의 밤이 이제 낮에도 흐르고 있다. 우리는 올 한해를 성찰하며 혹 여러 미흡과 유감에 사로잡힐 수 있다. 그리하여 성찰이 깊어질수록 그 정도가 지나칠 수도. 그리하여 ‘슬픔이 나를 어슬렁거린다’고 독백하게 될지도. 만약 그렇다면 우리도 ‘나 이외에 가까운 사람이/상처 입길 바라지 않는 마음’으로 떨면서 그 ‘견딤’을 지탱하고, ‘난 끝까지 가장자리만큼은 포기할 자신이 없는데......’라고, 우리의 ‘당신’도 그러기를 바라면서 자신에게도 분명하게 나직하게 말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