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영 광교칼럼] 영화 ‘하얼빈’의 감동...우리도 ‘까레아 우라!’를 외쳤다
크리스마스 전날인 24일, 영화관에 갔다. 참 오랜만이다. 그동안 마음에 닿은 영화가 없었던 탓이다.
그런데 영화광인 ㄱ이 ‘하얼빈’을 보러갈 건 데 함께 가자고 한다. 역시 영화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ㅈ도 함께 하겠다고 한다. 24일은 ‘하얼빈’이 개봉한 날이다.
수원역에 있는 ㄹ시네마에서 영화를 보는 내내 깊은 생각에 빠졌다.
내가 안중근과 같은 독립투사였으면 저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 것인가. 가족을 버리고 떠나 저 가혹한 북방의 추위와 일제의 고문, 회유를 견뎌낼 수 있었을까? 동지들을 일본군의 밀정으로 의심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하얼빈’은 일제강점기 안중근 ‘장군’을 비롯한 독립투사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개봉 첫날인 24일에만 38만 관객을 동원했다. 현재(30일 오전 11시 30분)까지 238만 명이 관람했다고 하는데 머지않아 1000만 관객을 돌파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렴, 1000만 명을 넘을 것이다. 이런 영화는 모든 국민이 봐야 한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관람을 적극 권하고 있는 중이다.
‘남산의 부장들’의 우민호 감독이 연출하고 현빈, 박정민, 조우진, 전여빈, 정우성 등이 출연하는 이 영화는 안중근의 하얼빈 의거가 주된 이야기다.
그런데 영웅주의에 빠진 영화들과는 다르다.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를 척살한 안중근을 강한 투사나 초인(超人)의 이미지가 아니라 약점도 가진 인간으로 그리고 있다.
줄거리는 이렇다. 1908년 안중근 장군이 소속된 대한의군은 함경북도 신아산 전투에서 일본군에게 승리를 거둔다. 그런데 안중근은 만국공법에 따라 일본군 포로를 풀어준다. 하지만 풀려난 포로들에 의해 독립군의 위치가 알려지고 역습을 당해 안중근의 부대원은 전멸된다. 안중근은 대한의군 동료들에게도 의심받고, 본인도 자책감에 시달리지만 블라디보스토크로 가서 동료들을 모은다. 그리고 결국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다.
영화엔 인상 깊은 대사가 나온다.
“불을 밝혀야 한다. 사람을 모아야 한다. 기어이 앞에 나가고, 뒤에 나가고, 급히 나가고, 더디 나가고, 미리 준비하고 뒷일을 준비하면 모든 일을 이룰 것이다.” “어떤 역경이 닥쳐도 절대 멈춰선 아니 된다”는 안중근의 내레이션은 요즘 시국에서 깊이 생각해 볼 말이다.
“조선 백성들이 국난이 있을 때마다 이상한 힘을 발휘한단 말이지”라는 이토 히로부미의 대사도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선포 이후 맞고 있는 현 시국상황에서 퍽 의미 있게 들렸다.
참았던 눈물은 이토 히로부미를 죽이고 나서 외치는 “까레아 우라!(대한독립 만세)”라는 비장한 구호에 기어이 터지고야 말았다.
영화가 끝나고 일행들과 참새 방앗간인 행궁동의 ㄷ에 들렀다. 첫잔을 들어 올리면서 “까레아 우라!”를 외쳤다.
그런데 옆방에 한동민 수원화성박물관장이 친구들과 모임을 갖다가 우리를 보고 반가운 얼굴로 다가온다. 그는 올해 정년 퇴직한다. 영화 ‘하얼빈’ 얘기를 듣더니 “안중근 선생이 수원에 왔었다”는 이야기를 해준다.
읽은 적이 있다. 수원문화재단이 발행하는 잡지 2015년 ‘인인화락’(통권 12호)엔 이토 히로부미가 처단된 1909년의 하얼빈 의거 1년 전 안중근 의사가 수원을 찾아왔었다는 한 관장의 글이 실려 있다. 순종황제가 수원 서호(만석거)에 온 바로 그날이었다.
한 관장은 “서울 남산의 안중근기념관(안중근의사숭모회)에는 1908년 10월 2일자 수원우편국 소인이 찍힌 안중근 의사의 우편엽서가 있다. 순종황제의 수원 방문을 기념하는 소인이 찍힌 것으로, 권업모범장을 배경으로 한 사진엽서인데, 안 의사가 평안도 진남포의 돈의학교 홍석구(빌렘) 신부에게 보낸 것이다. 안 의사와 빌렘신부의 긴밀한 관계를 잘 보여 주는 자료”라고 설명했다.
그 엽서엔 ‘有火急用事. 目下水原留宿 前途漢城 經過各地 向發爲計. 親知諸卒等 下傳于此旨幸甚 伏望各地着治上書 諒知安心之地 千萬伏望’(‘화급한 용무입니다. 저는 지금 수원에 유숙하고 있는데, 한성에 갔다가 각지를 거쳐서 그곳으로 갈 예정입니다. 친지와 아랫사람들에게도 이 뜻을 전해주시면 무척 다행이겠습니다. 가는 곳마다 글을 올리겠으니 그리 아시고 안심하시기 바랍니다’)라는 내용이 들어있다.
사진엽서엔 ‘안도마 응칠 재배(安道馬應七再拜)’ ‘무신(戊申, 1908) 10월 1일’이 적혀 있다. 도마(토마스)는 세례명이고 응칠은 어릴 때 이름이다. 이는 안중근 의사가 1908년 10월 1일 수원에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엽서엔 10월 2일 자 수원우체국 소인이 찍혀 있다. 전기한 것처럼 이날은 순종황제가 수원으로 행차한 날이다.
기차를 타고 융릉과 건릉을 참배하고 서호 옆 권업모범장을 하루 동안 다녀갔던 날이다.
한 관장은 조심스럽게 순종황제의 능행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배종하여 따라올 것으로 예상해 그를 제거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을 한다. 하지만 그날 이토 히로부미가 아니라 소네 아라스케 부통감이 순종황제를 배종했다고 한다.
한 관장은 “안중근 의사의 수원방문과 함께 수원에서 이토를 처단하는 ‘수원 의거’가 이루어졌다면 하는 역사적 상상을 해보는 것도 짜릿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덧붙였다.
나는 지난 2015년 11월 중국 다롄(대련)에서 45km 떨어진 뤼순(여순) 감옥을 방문한 적이 있다. 거기에 재현해 놓은 사형장과 그 옆의 추모공간을 보면서 가슴이 먹먹해서 한참동안 발걸음을 옮길 수 없었다.
이번에 영화 ‘하얼빈’을 보면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모두 올라갈 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하얼빈’, 이 영화를 적극 추천한다. 그러나 ‘단순한 오락물’만을 원하는 이들의 입맛엔 맞지 않을 수도 있으니 이를 감안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