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나무
이 태 학
같은 산에 살아도
더 추운 나무 있다
같은 능선 살아도
더 서러운 나무 있다
산기슭 허름한 산길
엊그제 푸르렀던 붉나무 잎
첫서리 한 번에 먼저 붉었다
풋풋한 시절 눈길 없던 나무
그 설움 붉은 잉크로
산길에 토한다
불속에 타면서도
탁 탁 탁 파열하는 폭음의 울음
같은 세상 살아도
더 추운 사람 있다
같은 세끼 먹어도
더 서러운 사람 있다.
추위 속에서 또 한 해가 가고 새해가 왔다. 모진 것은 겨울바람만이 아니다. 세월이 더 모질다. 매년 연말이면 으레 즐겨 듣던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을 턴테이블 위에 한 번도 얹지를 않고 한 해를 보냈다. 어느 해인들 아픔이 없었던가. 그래도 아픔보다 축복이 더 컸다는 믿음으로 4악장 환희의 송가를 들으며 한 해를 마무리하곤 했는데 이번 연말연시는 그러지를 못했다.
아무튼 새해이다. 아침 식사도 하기 전 공복에 커피 한 잔을 내려 마시며 지난 문학잡지들을 넘기다 『한국시학』 2018년 봄호에서 이태학 시인을 만났다.
붉나무는 산속 척박한 너덜바위 지역이나 들판에 주로 자란다. 시인은 산행길에 그 붉나무를 만났다. 그렇다. 나무가 다 고를 수는 없다. ‘같은 산에 살아도/더 추운 나무 있다/같은 능선 살아도/더 서러운 나무 있다’ 삶을 통찰한 자만이 산을 볼 수 있는 눈높이이다. 그 고르지 못한 나무들 속에서 시인의 눈길은 오히려 ‘더 추운 나무, 더 서러운 나무’에 간다.
붉나무는 산이 온통 붉게 타는 듯한 가을 단풍 속에서도 유난히 붉게 물든다. 그러나 귀히 여기는 나무는 못되기에 여름 한 철에는 아무리 풋풋해도 사람들이 눈길을 주지 않는 나무였다. 그렇기에 그 설움을 ‘산기슭 허름한 산길’에서 ‘붉은 잉크로 산길에 토’하여 붉나무가 그리 붉은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이름도 붉나무라 했던가.
그리고 시인은 ‘같은 산에 살아도/더 추운 나무 있’고 ‘같은 능선 살아도/더 서러운 나무 있’듯이 ‘같은 세상 살아도/더 추운 사람 있’고 ‘같은 세끼 먹어도/더 서러운 사람 있다.’라고 한다. 나는 이것이 시(詩)의 힘이라고 믿는다. 불과 몇 행의 울림으로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우리가 자칫 잊기 쉬운, 여전히 고르지 못한 세상 속에서 더 추운 사람 더 서러운 사람들을 향한 관심을 이끌어내는 힘을 시는 지닌다. 그 관심이 아무리 고르지 못한 세상이라도 그래도 아직은 살 만한 세상이 되게 해주는 힘이 된다.
온 국민을 경악하게 했던 충격과 비탄 속에서 한 해를 보냈다. 그래도 새해가 되었으니 다시 추스르고 힘을 내어 일어서 보련다. 더 추운 나무, 더 서러운 나무에게 함께 일어서자고 손을 내밀어 본다.
이태학 시인
『한국시학』 신인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