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영 광교칼럼] 12월 3일 그 밤 택시를 몰고 국회로 간 수원 시인이 있다

김우영 논설실장 / 시인

이번 겨울 첫눈은 참으로 대단했다.

내 산책길에서 만나는 나무들이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찢겨 내려갔다. 내 최애 산책길 동공원의 억새들은 폭설이 깔고 앉아 아름다운 풍경이 일찌감치 지워졌다.

우리나라 남자들의 눈에 대한 느낌은 군대 입대 전과 후로 나뉜다고 한다. 20대 초반까지는 눈 내리는 날의 낭만을 느끼지만, 군대에서 엄청난 양의 눈을 치우면서 ‘하늘에서 내리는 하얀 쓰레기’라고 부른다.

물론 나 역시 군대시절 제설작업에 진저리가 날 정도였지만 아직 소년 감성이 남아 있는 지 눈이 그리 싫지는 않다.

지난 폭설 때도 동공원 눈밭을 산책하면서 옛 추억을 떠 올리기도 했다.

그런데 나와는 다른 감성으로 눈을 생각하는 이가 있다.

폭설이 꾸민 ‘달마 눈사람’. (사진=김우영)
폭설이 꾸민 ‘달마 눈사람’. (사진=김우영)

밤새 내린 눈이 세상을 덮었다/밤 근무를 마친 그는/함박눈을 머리에 이고, 눈사람인 양 돌아와/밥 한술 뜨고,/냉골 같은 방 전기장판 위에 몸을 뉜다/눈이 온 날의 아침햇살은/일터에서 밤을 새운/그의 뼈처럼 투명하고 눈부시다

창문으로 들어온 햇살이/오래전 폭설 속에서 헤매었던 기억처럼/지친 몸, 그의 곁에 눕는다/햇살은 눈사람을 비추듯/그의 드러난 기억들을 따뜻하게 덥히고/뭉쳐있던 그의 근육은/그림자 반대쪽으로부터 눈처럼 녹는다/기억은 녹아 햇살에게로 투명하게 흘러가고/그는 점점 가벼워져 잠 속으로 부양 된다/눈이 내렸던 중력의 공간을 걸어온 햇살이/폭설의 기억을 녹여 얼었던 발바닥까지 공손히 데운다

창밖의 건물들이 하얗게 덮여 하나로 보이고/때때로 오목하게 굴절된 곳, 바람이 미끄러져/눈으로 만든 공장들이 눈 위로 엎어진다/하얗게 덮인 눈 위에/누군가는 첫 발자국을 찍었을 테지만/기억도 없이 하얗게 달려가던 아이들은 숨이 차올라 헉헉거린다/눈 덮인 설목의 하얀 그림자를 보며/천천히 저녁으로 미끄러져 가는 시계를 보던, 가벼워진 그는,/낮 근무자와 통화하며/"어쩜 저렇게 눈은, 눈이 부셔" 핸드폰에 대고 키득키득 웃다가/머리털 다 빠진 소나무가 기웃거리며 창을 가리면/햇살이 엷어져 가는 창가에서 가벼워진 기억들, 근육을 풀듯 털어낸다

저녁이 오고 이윽고, 햇살이/눈길 위에 발자국도 없이 돌아가고 나면/눈에 덮인 하얀 저녁은 고즈넉해진다/그는 다시 언 발을 오금에 끼고 앉아/브라운관 속 세상 이야기 멍하니 쳐다보며,/출근 밥을 뜨고 있다.

-이종구 시 ‘눈사람의 방’ 전문

 

‘그’는 눈 내린 날 밤 미끄러운 도로에서 밤새 택시를 몰며 사는 택시운전사다. 그는 새벽에 방으로 돌아와 밥 한술 뜨고 냉골 방에서 잠에 빠져 든다. 이윽고 시간은 저녁이 되고, 휴식의 도움으로 몸이 가벼워진 그의 눈이 떠진다.

눈길에 미끄러지듯 흘러간 시간, 시계를 보던 ‘그’는 전화기를 들어 낮 근무자와 이야기를 나눈다. 아마도 “오늘 손님은 많았어?” “도로 상태는 어때? 미끄러지지는 않았어?” 등 평소와 별 다르지 않은 이야기들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생뚱맞다. 신산(辛酸)한 삶이 분명할 터인데, 그 삶의 이야기를 하다보면 거친 언사를 쓰며 남의 흉을 보고 세상사에 대한 불평이나 내뱉었을 법 한데 ‘그’는 “어쩜 저렇게 눈은, 눈이 부셔” 핸드폰에 대고 키득키득 웃는다.

그리고 ‘그’처럼 세파에 시달리느라 ‘머리털 다 빠진 소나무’가 기웃거리며 창을 가리면 ‘햇살이 엷어져 가는 창가에서 가벼워진 기억들, 근육을 풀듯’ 털어낸다.

이윽고 ‘그’는 다시 저녁밥 한술 뜨고 출근 준비를 한다.

‘그’는 내가 좋아하는 이종구 시인이다. 이종구 시인은 택시기사다. 다정하고 온유한 사람이지만 12월 3일 계엄령이 선포된 밤 즉시 택시를 몰고 여의도로 가서 국회로 진입하는 계엄군을 막았다.

밤새도록 계엄 철폐를 외쳤고 여당의원들의 표결참여를 호소했다.

그 밤, 나는 그저 분노에 몸을 떨고 있을 뿐이었는데 그는 용기 있게 국회 앞 현장으로 가서 시민들과 함께 계엄을 저지했다.

그는 밤에 일을 나가 날이 밝을 무렵 귀가한다.

그날도 날이 밝아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물론 사납금은 채우지 못했을 것이다.

그에게 미안해서, 추위에도 거리에 나선 젊은이들에게 부끄러워서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과 광화문 앞에 가기도 했다.

큰 아들은 이런 아비가 걱정스러웠는지 너무 앞에 나서지 말라고 한마디 한다. 걱정마라, 이젠 체력이 안 된다고 힘없이 대답해줬다. 실제로 이젠 예전의 몸이 아니어서 쉽게 지친다. 차가운 거리에서 오래 서 있기가 두렵다. 젊은 사람들처럼 아스팔트에 앉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하, 그저 마음만 청춘이다.

대통령 하야를 외치는 시민들의 행진. (사진=김우영)
대통령 하야를 외치는 시민들의 행진. (사진=김우영)

‘택시 운전사 시인’ 이종구는 참으로 많은 직업을 전전했다. 양복점 시다, 포장마차 운영, 양복점 주인, 탄광노동자, 절집 수행자, 음료회사 영업사원, 라면대리점 운영, 택배기사, 대리기사 등.

험한 세상을 살아오다가 큰 사고를 당해 목숨이 위태로워진 적도 있었다. 의사는 가망이 없다고 했고 아내는 영정사진까지 준비했었단다.

 

지워지지 않는 얼룩으로/세제 통에 담가 놓은 걸레들/꽉 짜보면 눈물 나지 않는 걸레가 없다//담벼락에 기대어 서 있는/바싹 마른걸레도/뼈마디 관절마다 파스 안 붙인 곳이 없다.

-「걸레를 빨며」 전문

 

‘꽉 짜보면 눈물 나지 않는 걸레가 없다’ ‘바싹 마른 걸레도 뼈마디 관절마다 파스 안 붙인 곳이 없다’는 이 짧은 시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렇다. 눈물의 세월은 누구에게나 있다. 이 풍진(風塵)의 세상을 살아 온 사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시다.

‘뼈마디 관절마다 파스’를 붙이고 사는 사람들에게 올해 2025년은 어떤 해가 될까.

당장의 내 소망은 사람들이 더 이상 차가운 거리에 나서지 않는 것이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내편’이든 ‘네편’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