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종의 문학잡설(106)] ‘칼 잡은 손에 힘을 빼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김승종 / 시인 · 전 연성대 교수

 

아무리 우리를 감동시킬 인생 성찰의 시라고 해도 근간 국난(國難)의 형편에서 읽을 흥미가 무연히 소진되기 쉽다. 우리 모두가 구애되고 있는 현하 쟁송(爭訟)의 소용돌이가 주제가 무엇이든 무슨 이야기이든 희석시키고 있다. 우리는 사실 여부에 예민해졌으나 자신의 의사를 대변하는 주장에는 기꺼이 동의하고, 아니면 배척하기에 여념이 없다. 과분한 제언이고 이미 널리 공감되고 있지만 이런 시기 이런 시국일수록 우리 모두를 위해, 모두에게 자신의 이해를 관점으로 현안들에 접근하지 않는 양식이 요청되고 있다.

                       

봉인 씨는 두부를 만든다

햇병아리 닮은 불린 콩 맷돌에 갈아

새벽까지 가마솥 아궁이에 불을 지핀다

부서지고 갈리고 펄펄 끓여져 새로 태어난다

눈꽃 같은 순두부를 베 보자기에 퍼 담아

누름 판으로 눌러 놓으면 희고 단단한 희망이 된다

칼 잡은 손에 힘을 빼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혹여 자신의 삶이 비뚤어질까

숨을 멈추고 금을 따라 반듯하게 자른다

왼쪽 다리가 유난히 가느다란 어린 딸아이 등에 업고

포대기 끈 야무지게 동여맨다

두부 판을 머리에 이고 이른 아침 국밥집에 들르면

아주머니 포대기 속 잠든 아이를 쑥 빼어 든다

작은 체구의 봉인 씨 장터 이곳저곳을 헤집으며

두부 사세요! 두부 사세요!

금세 다 팔리고 마지막 남은 한 모

아주머니께 드리며 머리를 조아린다

눈물 자국 얼룩진 딸아이 들쳐 업고

홀시아버지 시장하실까 집으로 달린다

봉인 씨는 지친 기색도 없다

비지찌개 끓여 식구들 식사 준비하면서도

땀방울 맺힌 얼굴은 싱싱한 풀잎 같다

 

이제 우리 엄마 봉인 씨는 없다

곱게 화장한 얼굴 정갈하게 보여 주고

그 옛날 아궁이 속 연기처럼 떠나갔지만

새벽 두부의 따뜻한 온기로

늘 내 곁에 머물러 있다  

   - 「봉인 씨」/이현이

 

 ‘봉인 씨’가 두부를 만들고 파는 이야기를 다루는 1연을 우리는 화자의 묘사, 그 자력(磁力)에 이끌려 몰입해 읽을 수 있었다. ‘누름 판으로 눌러 놓으면’ ‘두부’가 ‘희고 단단한 희망이 된다’ 전후에서 더욱 그랬고, 그 끝 행 ‘땀방울 맺힌 얼굴은 싱싱한 풀잎 같다’는 직유에서는 ‘봉인 씨’의 ‘얼굴’도 잘 떠올릴 수 있었다. 

 2연 1행 ‘이제 우리 엄마 봉인 씨는 없다’에서, 우리에게도 상실의 유감이 일어나는 가운데  전지 시점의 화자가 일인칭 시점의 화자로 갑자기 바뀐 변화를 우리는 감지하였다. 반전성 두 변전을 그런대로 수용하였지만, ‘새벽까지’ 두부를 빚은 ‘작은 체구의 봉인 씨’가 ‘두부 판을 머리에 이고’ ‘장터’로 나오면서 ‘등에 업’었던 ‘왼쪽 다리가 유난히 가느다란 어린 딸’, 그 ‘아이’가 2연 일인칭 화자의 과거 자신이었다니, 1연 전지 시점의 화자와 2연 화자의 태연한 시선을 살피는 우리의 시선이 경신(更新)되는 듯하였다. 

 또 우리의 태도에도 조정이 뒤따른다. ‘칼 잡은 손에 힘을 빼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혹여 자신의 삶이 비뚤어질까/숨을 멈추고 금을 따라 반듯하게 자른다’란 시행들을 우리는 주목하고 존중하면서도 낯익은 교설(敎說)로 간주하였는데, 그래서 감내했던 미편(未便)이 어느덧 해소되었다고 느낀다. 즉 2연은 첫 행부터 1연의 단순한 부연이나 후속이 아니라 우리도 1연의 메시지를 멀고 가깝게 회고(回顧)하게 하면서 은근하게 고양하는 기여를 한다. 

 ‘희고 단단한 희망’을 만들고 품었기에 집으로 돌아와서도 ‘지친 기색도 없’이 ‘홀시아버지’ 슬하 ‘식구들’이 먹을 ‘비지찌개’를 끓인 ‘봉인 씨. ‘눈물 자국 얼룩진’ 채 그 ‘비지찌개’를 먹으며 자란 어린 딸. 우리는 ‘봉인 씨’의 헌신과 딸의 효심도 가슴에 깊이 담아두며, 오늘의 세태에서 고양된 휴머니티의 하나로 간주하고 싶어진다. 

 참고로 1연 화자의 진술에서 그 시제가 현재라는 점도 주목하자. 과거의 현재화는 시인이 의도한 대로 화자의 캐릭터에서 주요 요소로도 작용한다. 화자에게 ‘엄마’와 ‘엄마’의 삶이 지금 여기에 지속되고 있다는 의지를 강조할 수 있게 하고, ‘그 옛날 아궁이 속 연기처럼 떠나갔지만/새벽 두부의 따뜻한 온기로/늘 내 곁에 머물러 있다’는 고백을 더 실감나게 하며, 우리로 하여금 화자를 화자의 ‘엄마’와 거의 동일시하게 한다.

 그리고 ‘따뜻한 온기’는 그저 ‘따뜻한 온기’가 아니다. ‘멧돌’에 갈린 ‘콩’이 ‘가마솥’에서 ‘부서지고 갈리고 펄펄 끓여져 새로 태어’났을 뿐만 아니라, ‘엄마’가 ‘혹여 자신의 삶이 비뚤어질까/숨을 멈추고 금을 따라 반듯하게’, 더욱이 ‘칼 잡은 손에 힘을 빼고 정신을 바짝 차려’ ‘자른’ 공정하고 겸허한 ‘희고 단단한 희망’이란 ‘새벽 두부’의 ‘온기’이다. 

 그저께 1월 6일 오후 한남동 육교 위에 서 있었다. 경찰부대를 사이에 두고 같은 시공을 꽝꽝 울리며 맞부딪히는 두 진영의 춥고 거친 목소리를 듣고 있을 때, 한 시지의 겨울 호에 실린 이 시가 떠올랐다. 그 아우성은 한밤에 다시 길게 들려왔고, ‘봉인’ 여사와 그 ‘두부’가 또 그리웠다. ‘두부 사세요! 두부 사세요!’라고 외치지 않아도 그 ‘두부’는 오늘의 ‘장터’에서도 ‘금세 다 팔리고’, ‘다 팔리’고야 말리. 우리도 그런 두부를 팔아야 하거나 사야하며, ‘마지막 남은 한 모’는 공정과 겸허로 공무를 수행한 공무원(公務員)에게 드려야 하리. 뿌리 없는 당리당략에 매여 정치인들이 그 집착으로 그러지 못한다면.  

 이 시기 이 시국에서 아무래도 우리 모두, 공자의 다음 말씀을 다시 읽어야만 하겠다. "명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순리를 어기게 되고, 말이 순리를 어기면 그 말로 추진하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런 저런 일들이 그와 같이 이루어지지 않게 되면 예악[질서]이 일어나지 않게 되고, 예악이 일어나지 않으면 형벌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게 되며, 형벌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으면 국민은 손발을 둘 곳조차 없게 된다.(名不正 則言不順 言不順 則事不成 事不成 則禮樂不興 禮樂不興 則刑罰不中 刑罰不中 則民無所措手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