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에 갈 때마다 내가 머무는 숙소가 모란봉 중턱에 있는 고려호텔입니다.
고려호텔에서 산을 끼고 조금만 가면 김일성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평양 시가지와 대동강의 흐름이 한눈에 들어오는 명당자리입니다.
나는 평양을 방문할 때마다 그 자리를 찾아가 동상 주위를 몇 바퀴씩 돌곤 합니다.
돌면서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밧줄을 동상 목에 걸어 어느 자리에서 당기면 잘 무너질 것인가를 생각합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자리가 바로 1907년에 일어나 한국교회 부흥의 출발점이 되게 하였던 장대현교회가 서 있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 유서 깊은 교회를 헐고 그 자리에 김일성 동상을 세웠습니다.
나는 한국교회 목사의 한 사람으로 그 동상을 헐고 장대현교회를 복원하는 것이 주어진 사명이라 생각합니다.
그 후로 절차를 밟아 두만강 다리를 건너 '나진·선봉'으로 가서 고아원을 세우고 농장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고아원 세우기는 성공을 하여 북한 전국에서 가장 좋은 고아원이 되어 남북 관계가 끊어져 있는 지금도 그 고아원만큼은 유지되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일할 때는 지혜로워야 합니다.
고아원을 시작하던 때의 이야기입니다.
나진·선봉을 방문하면서 100달러짜리 현금 3만 달러를 준비하여 주머니에 넣고 갔습니다.
나진·선봉시 인민위원장을 만나 고아원 사역을 시작하기로 합의한 후에 내가 한 가지 조건을 내세웠습니다.
"고아원을 설립하여 운영함에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이 조건이 허락되지 않으면 오늘 이야기는 없던 것으로 하겠습니다."
내 말에 그들이 움칠하며 말했습니다.
"조국의 일에 무슨 조건이 필요합네까?" 하기에 "조국을 돕는 일이니까 시작하는 때부터 분명한 조건이 있어야지요"라고 했습니다.
하였더니 인민위원장이 "그럼 조건을 말해 보시라요"하였습니다.
하기에 "고아원 운영을 직영(直營)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건축에서부터 운영 전체를 우리가 직영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그랬더니 한국의 시장(市長)격인 인민위원장이 딱 잘라 말했습니다.
"우리 공화국에는 그런 법이 없습네다. 필요한 예산을 넘겨주면 우리가 알아서 운영합네다" 하였습니다.
나는 산전수전 겪으며 일해 온 터라 그런다고 그 말에 곱게 물러날 만큼 순진한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분명히 일러주었습니다.
"이 고아원 운영의 비용이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동포들의 성금을 모아 운영합니다. 그러기에 나에게는 책임이 있습니다"
" 이번에도 성금 3만 딸라를 준비하여 왔는데 자체 운영의 조건이 허락되지 않으면 이 기금을 가지고 그냥 돌아가겠습니다"
하며 안주머니에 있는 3만 달러를 끄집어내어 흔들며 보여 주었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