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손자 현이가 태어난 지 1년이 됐다. 지난 5일엔 돌잔치를 했다.
양가 가족·친척과 딸·사위 친구들 합쳐 100명 정도가 모인 제법 성대한 잔치가 됐다.
돌잔치는 생후 1년 동안 건강하게 자란 것을 축하하고 앞으로 무병장수와 행복을 기원하는 뜻 깊은 자리다. 열두 달을 한 바퀴 무사히 돌았다고 해서 돌이라고 한다.
예전엔 집에서 조촐하게 상을 마련해 가까운 이들을 초청했지만 언제부턴가 뷔페나 행사전문식당을 빌어 요란한 이벤트를 곁들인 잔치를 열고 있다.
그럴 만도 하다. 아기 울음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시대에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난 것은 진심으로 축하할만한 일이다. 일부에선 과한 비용을 들인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아기의 부모나 가족들 입장에선 온 우주와도 바꾸지 않을 귀한 존재이기에, 평생에 단 한번 뿐인 경사이기 때문에 비난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특히 현이는 딸 부부가 8년 만에 낳은 아이다. 혼인 후 아이가 들어서지 않아 우울해 하던 차에 들려온 임신소식에 뛸 듯이 기뻤다. 그리고 지난해 1월 9일 마침내 딸 부부와 양가 가족들이 그토록 소원하던 아이가 태어났다.
그때의 희열은 지난해 2월 20일자 수원일보 광교칼럼에 ‘나도 손자 바보가 됐다’라는 제목의 글로 표현한 적이 있다.
‘딸의 임신 소식에 뭘 그리 호들갑을 떠느냐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딸 부부는 혼인한지 8년이 지났지만 아이를 갖지 못했다. 개를 한 마리 데려와 자식처럼 길렀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강현(姜賢)'이란 이름은 사돈과 사위의 부탁으로 내가 지어줬다. 화성연구회 강희수 사무총장은 지역 화단에 널리 알려진 중견화가지만 사주와 성명학도 깊게 공부한 사람이어서 그에게 보여줬더니 훌륭한 이름이고 아주 좋은 사주라고 했다.
그날 돌잔치의 하이라이트는 당연히 ‘돌잡이’였다.
돌잡이는 돌 잔칫상에 여러 가지 물건을 늘어놓은 뒤 아이가 잡게 해 장래를 점쳐보는 풍속이다.
예전엔 쌀, 붓(또는 연필), 활, 돈, 실(또는 국수) 등을 펼쳐놓았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이 가운데 쌀과 실을 잡기 원했다. 과거엔 잘 먹고 오래오래 사는 게 최고의 복이었다. 당연히 최고 인기 물건은 쌀과 실이었다.
그런데 요즘엔 새로운 물건들이 등장했다. 돈 대신 신용카드가 등장했고 미국 달러도 돌잡이상에 오른다.
의사 등 의료인을 뜻하는 청진기를 비롯해 마이크(연예인이나 방송기자), 법봉(판사, 검사, 변호사 등), 마우스(IT와 컴퓨터 전문가), 카메라(방송 PD나 영화감독), 비행기(기장, 스튜어디스), 게임기(프로게이머), 배(선장), 스마트폰(유튜버, 인플루언서)까지 등장했다.
현이는 돈을 잡았다. 사실은 본인의 의사가 아니었다. 실 꾸러미를 잡으려고 하자 딸이 슬그머니 상을 돌려 돈을 잡도록 유도했다. 그 모습에 장내엔 폭소가 터졌다.
인사말을 할 때는 딸 부부 모두 무병장수를 뜻하는 실 꾸러미를 잡았으면 좋겠다고 우물쭈물 말했는데 본심은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사실 예행연습 때는 연필을 잡았었다. 그러자 가족들은 모두 나를 쳐다봤다. 특히 아내는 ‘그럼 그렇지’하는 표정이었다.
아무렴, 돈을 선택한 것도 나쁘지는 않다. 어느 정도는 경제적으로 풍족해야 수시로 건강을 보살필 수 있고 여유를 갖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손자 바보’가 된 나, 지금도 핸드폰에 저장된 녀석의 사진을 보며 헤픈 웃음을 짓고 있다.
손자가 태어난 후의 큰 변화는 또 생겼다. 예전엔 다른 아기들에 큰 관심이 없었으나 요즘엔 길에서 만난 모든 아기들을 보면 내 손자를 보는 듯 발걸음을 멈추고 웃음 짓게 됐다.
“아이구 예뻐라” “어 그 녀석 참 찰 생겼다”라는 말이 자동으로 나온다.
가끔 눈치가 없을 때도 있다.
화홍문 근처에서 유모차에 탄 아이를 보고 “와~ 잘 생겼네”라고 했더니 아기 아빠가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딸인데...”라고해서 무안해진 적도 있었다.
어쨌거나 내 손자 현아, 그리고 세상의 모든 아기들아. 탈 없이 무럭무럭 자라나서 우리 세대가 이루지 못한 밝고 건강한 세상, 다툼이 없고 전쟁이 없는 세상, 특히 계엄령 같은 건 아예 꿈도 꾸지 못하는 세상을 만들어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