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의 '수원 詩, 수원 詩人'(40)] 서정화 '성벽을 걷다'

김준기 수원시인협회 회장

 

성벽을 걷다

                                서 정 화

굽어든 성벽 따라 노승이 걸어간다

묵언을 쌓아올린 구불구불 이어진 길

화엄의 벽을 안고서 노을 붉게 번져온다

 

올곧게 뼈대 살아 몸 여는 은빛 억새

마음이 곧 부처라고 죽비소리 내리치는

하늘로 비워 낸 가슴 말씀인 양 담긴다

 

말한다, 모든 빛은 제 안에 있는 것

무지개 차오르는 오롯한 꿈의 깊이

내 안에 종소리 퍼져 은하수로 흐른다

 

서정화 시인이 2014년 ‘도서출판 고요아침’을 통해 시집 『유령 그물』을 펴냈다. 내가 알기로는 시인의 첫 시집이었다. 위의 시는 그 시집에 실린 「성벽을 걷다」 전문이다. 시인은 그 성벽이 어느 성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굳이 알아서 무엇하겠는가. 시인이 ‘모든 빛은 제 안에 있는 것’이라고 했듯 우리 눈에 보이는 만상이 다 마음속에서 빚어진 빛의 덩어리일 진데. 다만 내가 나서 살아온 수원의 성벽을 떠올리다 보면 그 빛이 좀 더 오롯이 그리고 살갑게 담겨올 뿐이다.

그 옛날 석공이 돌을 쪼고 다듬어 쌓아 올린 성벽이다. 그렇게 묵묵히 쌓아 올린 지상의 흔적이기에 ‘묵언을 쌓아올린 구불구불 이어진 길’이 마음에 들어온다. 끊기지 않고 이어진 성벽은 무엇인가. 시작이 끝과 맞물린, 마침내 시작과 끝이 따로 없는 무시무종(無始無終) ‘화엄의 벽을 안고서 노을 붉게 번져온다’ 

화서문에서 서장대로, 성 안쪽이 아닌 바깥쪽에서 저녁나절 성벽을 따라 오르다 보면 만나는 장엄의 세계이다. 마침 급하게 경사진 화서공원 쪽으로 ‘올곧게 뼈대 살아 몸 여는 은빛 억새가 보인다’ 그들이 몸을 비비는 소리는 ‘마음이 곧 부처라고 죽비소리 내리치는/하늘로 비워 낸 가슴 말씀인 양 담긴다’ 

시인은 ‘말한다, 모든 빛은 제 안에 있는 것’이라고 했다. 거주지가 수원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축복이다. 수원화성의 성벽을 가까이 마음속에 담을 수 있으니 말이다. 더욱이 ‘무지개 차오르는 오롯한 꿈의 깊이/내 안에 종소리 퍼져 은하수로 흐’르듯 그 성벽을 걸으며 화엄의 세계 끝자락만이라도 더듬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서정화 시인이 다섯 번째 시집으로 사설시조집 『3D 렌티큘러』를 냈다고 한다. 시인의 열정에 박수를 그리고 정말 마음에 축하를 늦게나마 가득 담아 보낸다는 뜻을 전한다. 

 

 

서정화 시인

2007년 백수(白水) 정완영 전국시조백일장 장원

'서정시학'으로 등단

시집 『유령 그물』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