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종의 문학잡설(108)] ‘한 번도 울지 않는 새가 있었다’

김승종 / 시인 · 전 연성대 교수

 

 다음 시의 첫 연에서, 우리는 화자 ‘나’가 누구와 대화중이며, 우리도 일상에서 가끔 겪었던 대로, 화자가 자신이 ‘이야기’하는 화제의 기본 취지를 상대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어 바로 잡고 있는 국면을 목격한다. 화자는 자신의 관심 대상이 ‘새’와 ‘꽃’이 ‘아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도 다른 무엇을 기대하였는데, 하지만 2연에서 ‘새’와 ‘꽃’이 아닌 게 아니라, ‘둥지를 만들지 않는 새’, ‘향기를 품지 않는 꽃’이라는 사실을 알며 우리의 주목은 경신된다.(화자의 상대 역시 그럴 것이다.) ‘둥지를 만들지 않는 새’, ‘향기를 품지 않는 꽃’이라고? 그렇다면 화자의 시정을 군말 없이 따를 수밖에 없다. 보통 ‘새’와 ‘꽃’을 화제로 삼는다면 아무래도 새의 울음과 꽃의 향기를 상기하고,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 정체성으로 삼기 때문이다. 우리는 화자의 그 다음 ‘이야기’에 관심을 집중하게 된다.   

 

나는 지금 새에 대해 이야기 하자는 게 아니다

나는 지금 꽃에 대해 이야기 하자는 게 아니다

나는 지금 생각 너머에 가 있다

 

나는 지금 둥지를 만들지 않는 새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 향기를 품지 않는 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여름은 늘 너무 덥고

겨울은 너무 춥다

나는 지금 생각 그 너머에 가 있다

 

둥지가 없는 새는 알을 품지 않는다

향기를 품지 않은 꽃은 오래 시든다

 

봄이라고 늘 화창하지도 않고

가을이라 늘 청명하지도 않다

 

나는 지금 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지금 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한 번도 울지 않는 새가 있었다

한 번도 향기를 품지 않은 꽃이 있었다

 

그때 너는 어디에 가 있었나?

 

나는 지금 울음 그 너머에 가 있다

나는 지금 향기 그 너머에 가 있다

     - 「울지 않는 새」/성선경  

 

 4연 ‘둥지가 없는 새는 알을 품지 않는다/향기를 품지 않은 꽃은 오래 시든다’를 읽고, ‘둥지를 만들지 않는 새’와 ‘향기를 품지 않는 꽃’이 어떤 새인지 어떤 꽃인지 그 구체 면모를 알게 되면서 충격을 받는다. 새가 알을 품지 않고, 꽃이 향기를 품지 않는다니. 그렇다면 정상이 아니다. 불임의 불구의 신세가 아닌가. 더욱이 이는 불능(不能)이 아니라 불위(不爲). 어떤 장애로 하여 그런 새와 꽃이 없을 수 없겠지만, 대체 왜 새와 꽃이 자신의 의지로 그러는가 말이다.  

 우리는 3연 ‘여름은 늘 너무 덥고/겨울은 너무 춥다’로 되돌아가 다시 읽어야 그 까닭을 짐작할 수 있다. 계절의 상태를 다룬 3연은 2연과 4연 사이의 맥락에서 좀 생경하였으나, 미리 그 까닭을 제시한 도치(倒置)의 진술이다. 즉 여름의 더위와 겨울의 추위가 얼마든지 덥고 추울 수 있지만, ‘늘 너무 덥고’ ‘너무 춥다’. 그렇다면 우리는 화자가 기후이상에 기인한 이변(異變)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파악할 수 있다. 더욱이 기후이상을 재차 강조하는 5연, ‘봄이라고 늘 화창하지도 않고/가을이라 늘 청명하지도 않다’를 읽으며 더욱 그렇게 이해하게 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화자가 이런 과정을 거쳐 우선 보기엔 1연을 시인하는 듯한 인상을 주지만,  1연을 거듭 시정하려는 의도로, 6연, ‘나는 지금 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나는 지금 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진술을 하고 있다고 파악한다. 다시 말해 이러한 양상은 이 시 메시지의 외연 강조에 해당하며 우리의 그 문제성 인식을 거듭 촉진하고 있다. 화자는 그리하여 ‘한 번도 울지 않는 새가 있었다/한 번도 향기를 품지 않은 꽃이 있었다’고 일단 맺는다. 이 메시지도 우리에게 새롭지 않지만 우리를 경동(警動)시키기에 충분하다. 기후이변으로 기존 자연의 질서가 세계 도처에서 왜곡되고 있는 이 시대. 화자의 주장처럼 우선 우리는 오늘의 자연을 다루는 시에서 이 시의 화자가 배제하는 전통을 지속할 수 없게 된 것인가.  

 유보해온 1, 3연의 ‘나는 지금 생각 너머에 가 있다’의 취지가 무엇인지도 감상해보자. 애초엔 둘 다 직전 두 시행과의 관계가 모호했는데, 이 시의 끝 연, ‘나는 지금 울음 그 너머에 가 있다/나는 지금 향기 그 너머에 가 있다’에서, 우리는 그 취지가 각각 앞 두 시행에 함축시켰던 기후이상의 비리와 이변 상황, 즉 ‘둥지를 만들지 않는 새’와 ‘향기를 품지 않는 꽃’이 대변하는 자연 파탄이 야기하는 삭막한 정경의 도래를 우려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그때 너는 어디에 가 있었나?’란 화자의 질책성 질문에, 우리 중 누구들은 억울하기도 하겠지만 오히려 성원할 것 같고, 우리 대부분은 그리 억울하지 않으며 굳이 변명하고 싶지 않을 듯하다.             

 한편 우리는 이 시를 상황의 과유불급(過猶不及)을 지척(指斥)하는 알레고리로 읽을 수 있다. 느닷없었다고 할 3, 5연을 일반 ‘과도(過度)’의 비유로 간주할 수 있고, 이와 직결된 6연의 3, 4행, ‘한 번도 울지 않는 새가 있었다/한 번도 향기를 품지 않은 꽃이 있었다’를 그 과도에 저항하는 의지, 그 비유의 표현으로 접근할 수 있다. 즉 세상의 온갖 무리한 과도 상황에서는, 차라리 말하거나 이상을 갖지 않겠다, 다시 말해, 정상이 흔들리는 세태에다 자신도 공정한 중용(中庸)을 시도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불임을 감수하고라도 침묵하겠다는 의지의 진술로 수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읽지 않는다고 해도 이 시는 자연 질서 왜곡만이 아니라 세속 현실의 각종 과도의 폐단을 우려하는 시각에서, ‘한 번도 울지 않는 새가 있었다/한 번도 향기를 품지 않은 꽃이 있었다’를 과유불급이 횡행하는 오늘 현실의 현상들을 수동이 아니라 보다 강력하게 능동 비판하는 용의의 피력으로 연상하여도 무방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