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의 '수원 詩, 수원 詩人'(41)] 은 결 '벼리다'

김준기 수원시인협회 회장

 

벼리다

                은    결

 

대장장이 김씨는

온 힘을 모아

무쇠 몸속 구석구석 불을 지피며

그의 일생을 모질게 메질을 한다

 

모루 위에서 부서지고 깨지며 단단해지는 생각

기포처럼 떠돌던 오래된 허무

얼음으로 엎드린 노숙의 생애

무쇳덩이 몸속 보랏빛 울혈진 말들이

뜨거운 비명을 삼키며

모양 쪽으로 걸어간다

 

모양은 궁극

업에 이르는 길

베고 자르고 뒤집어엎고 피 흘리고

나 언제 이렇게 살아봤나

달구어진 시뻘건 고통을 매달고

서슬 퍼런 조선 낫이 되었다

 

그렇게 서늘한 비수가 되어

흘러넘치는 슬픔 한 자락 베어내고

위안의 연대기를 쓴다

다시 스윽, 심장을 겨누는

나의 연장, 나의 시

나를 넘어

수없이 때리고 두들기고 다독여

나를 버린다

나를 벼린다

 

낫은 모름지기 조선낫이어야만 한다. 무쇠를 참나무 숯불이 이글거리는 풀무에 달구고 담금질을 한 다음, 두드리고 갈아 날을 세운 조선낫, 그래야 가을 할 때 볏단도 손쉽게 베어낼 수 있고 한식 벌초에는 잡풀은 물론 봉분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나뭇가지를 쳐내도 날이 무뎌지지 않는다. 기계로 찍어낸 왜낫은 조금만 써도 날이 나가고 무뎌진다.

벼리다.

‘벼리다’의 사전적인 뜻은 ‘연장의 날을 불에 달구어 두드려서 날카롭게 만들다.’이다. 사전은 표제어의 본뜻에 ‘마음이나 의지를 가다듬고 단련하여 강하게 하다.’라는 뜻을 덧달고 있다. 시인은 대장장이 김씨가 조선낫의 날을 벼리는 과정을 통해 궁극으로는 시인이 가다듬어야 할 마음을 노래하고 있다.

대장장이가 쇠메로 메질을 하는 것은 시뻘겋게 달구어진 쇳덩어리만이 아니다. 그는 ‘무쇠 몸속 구석구석 불을 지피며/그의 일생을 모질게 메질을’하는 것이다. 그런 일련의 치열함으로 ‘모루 위에서 부서지고 깨지며 단단해지는 생각/기포처럼 떠돌던 오래된 허무/얼음으로 엎드린 노숙의 생애’를 거쳐 ‘무쇳덩이 몸속 보랏빛 울혈진 말들이/뜨거운 비명을 삼키며/모양 쪽으로 걸어’갈 수 있다. 울혈이란 무엇인가. 무쇳덩이에도 혈관이 있다. 달궈진 쇠의 혈관을 가로막은 울혈진 언어들은 시인이 시를 통하여 토하고 싶은 시어일 것이다. ‘달구어진 시뻘건 고통을 매달고/서슬 퍼런 조선 낫이 되’듯이 비록 ‘업에 이르는 길’이더라도 ‘베고 자르고 뒤집어엎고 피 흘리’어 시의 ‘궁극’에 다다르고 싶은 치열한 자성으로 ‘나 언제 이렇게 살아봤나’라고 묻는다. 무심코 읽으면 시의 마지막 두 행을 반복으로 보기 쉽다. 그러나 아니다. ‘나를 버린다’와 ‘나를 벼린다’이다. 나를 버려야 비로소 나를 벼릴 수 있음이다.

은결 시인이 시를 발표하기 시작한 지가 30여 년 전이라고 나는 알고 있다. 그런데 단 한 권의 시집도 낸 일이 없다. 도대체 얼마나 버리고 벼리어 날이 시퍼런 잘생긴 조선낫 한 자루 보여주려 함일까. 시인은 오늘도 얼마나 ‘나를 넘어/수없이 때리고 두들기고 다독여’ 시의 날을 벼리고 있음일까. 기계로 왜낫을 찍어내듯 이런저런 시집들이 쏟아지는 시대에 대장장이의 메질로 벼린 조선낫같은 시인의 시집을 기대한다.

 

 

은   결  시인

『시와 의식』으로 등단

나혜석 문학상, 수원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