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성 여민동락(280)] 까치야....

정준성 주필

옛 사람들은 설 전날을 가리켜 '아치 설날'이라 했다.

'아치'는 '작다'라는 순수 우리 말이다. 

'까치 설날'은 여기서 비롯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기쁜 소식 전하는 까치처럼 설이 온다는 설레임이 담겨 있어 정겹다.

'까치설날'은 반달을 작곡한 윤극영 선생이 지은 동요 '설날'의 첫 대목에도 등장해 더욱 친근하다. 

아직도 설이 다가오면  방송을 통해 접할 수 있어 더욱 그렇다. 

일제가 없애 버린 설날의 의미도 새록 되살아난다. 

설이 공식 부활한 것은 꼭 40년 전이다. 

첫 공휴일 지정이 1985년이어서다. 

당시는 단 하루만 공휴일로 인정됐다.

귀성을 감안한 연휴가 시작된 것은 1989년부터다. 

열차표를 사기 위해 역에서 밤을 지새우고 고속도로가 주차장이 되는 진풍경 연출도 이때부터다.  

설 풍습과 풍경은 많이 변했다. 

아울러 명절의 의미도 퇴색하고 말 그대로 긴 휴가로 자리잡아 가는 추세다.

덩달아 차례가 줄어들고 설 음식이 대체되고 덕담이 사라지는 시대가 됐다. 

그래도 세배와 세뱃돈은 여전히 남아 있어 다행이다. 

올해는 이런 연휴가 임시휴일을 포함 최대 9일이나 된다. 

하지만 모두에게 즐거움은 아니다. 

고단한 몸, 시름겨운 마음으로 긴 시간을 외로움으로 견뎌야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다. 

그 속엔 이런저런 사정으로 고향을 찾지 못하고 가족과 모일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포함된다. 

그리고 그런 이들이 '나'일수도 '가족'일수도, '이웃'일수도 있어 슬프다. 

못가는 자식이나, 기다리는 부모나 모두가 불행이다. 

시인 김남조의 ‘설날 아침에’라는 시가 있다. 

“-중략- 닭이 울고 날이 새고/설날 아침이다/새해 새아침 아침이라 그런지/까치도 한두 마리 잊지 않고 찾아와/대추나무 위에서 운다. 

까치야 까치야 뭣 하러 왔냐/때때옷도 색동저고리도 없는 이 마을에/이제 우리집에는 너를 반겨줄 고사리손도 없고/너를 맞아 재롱 피울 강아지도 없단다/좋은 소식 가지고 왔거들랑 까치야….” 

나흘 후면 '설'이다. 이런 집들이 많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