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종의 문학잡설(109)] ‘그것은 생활의 율조(律調)일 따름이다’

김승종 / 시인 · 전 연성대 교수

 

 양력 1월 29일 수요일, 을사년 새해가 시작되는 날이다. 연초부터 관행처럼 을사년 운운 하였으나, ‘을사(乙巳)’는 음력의 세서(歲序) 간지(干支)이기에 이제 제 자리를 찾았다. 20세기 초에 양력 1월 1일을 설날로 삼고 새해 인사를 하며 음력 1월 1일을 구정(舊正)이라 하였다. 아직도 그렇게 부르기도 하는데, 이제 우리 일제히 원래 이름 ‘설날’로 불렀으면 한다. 구정과 설날은 같은 날이지만 그 취지와 어감은 새삼스럽지만 아주 다르다. 게다가 설날에는 우리의  관련 전통과 문화 자산이 활발하게 살아나기도 한다. 이날 우리는 떡국을 먹으며 한 살 더 먹었다고 하며, 어떤 성찰 끝에 진심으로 덕담을 건네기도 하는데, 가족의 소통에 잘 어울리며, 관계와 애정을 고양하는 뜻깊은 언표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복 많이 받아라”란 축원이 주류를 이루고 있고, 다른 메시지는 잘 들리지 않는다. 어른 역할하기가 어려운 시대이고, 어떤 선입견의 영향으로 주눅 들기도 하고 기피하기도 해서 그런가. 그렇다면 새해 첫날의 의의가 아무래도 밋밋하다. 있어야 할 무엇이 없는 상태로 아쉬울 수 있다. 사회나 개인이나 발전과 향상을 바라며 우리는 일정한 계기에 그 기약을 하고 싶어 한다. 금상첨화(錦上添花). 설날에 다음 시를 읽으면 더 좋을 것이다. 

          

내가 새로워지지 않으면

새해를 새해로 맞을 수 없다

 

내가 새로워져서 인사를 하면

이웃도 새로워진 얼굴을 하고

 

새로운 내가 되어 거리를 가면

거리도 새로운 모습을 한다

 

지난날의 쓰라림과 괴로움은

오늘의 괴로움과 쓰라림이 아니요

내일도 기쁨과 슬픔이 수놓겠지만

그것은 생활의 율조(律調)일 따름이다

 

흰 눈같이 맑아진 내 의식은

이성의 햇발을 받아 번쩍이고

내 심호흡한 가슴엔 사랑이

뜨거운 새 피로 용솟음친다

 

꿈은 나의 충직과 일치하여

나의 줄기찬 노동은 고독을 쫓고

하늘을 우러러 소박한 믿음을 가져

기도는 나의 일과의 처음과 끝이다

 

이제 새로운 내가

서슴없이 맞는 새해

나의 생애, 최고의 성실로서

꽃피울 새해여!

     - 「설날」/구상(1919-2004)

 

 진술 태도로 보아 이 시의 화자는 우리의 동료나 친구가 아니다. 우리의 ‘어른’이며, 우리는 이런 분이 메시지를 음미하기 전에 벌써 그리울 수 있다. 1연 ‘내가 새로워지지 않으면/새해를 새해로 맞을 수 없다’부터 우리에게 향발하는 지시 성격의 권유 담화이기도 하지만 화자가 자신에게도 다짐하는 독백이기도하기 때문이다. 2, 3연에 이르기까지 그 말뜻 또한 이치에 합당하여 우리가 거리를 두려하거나 외면하기 어렵다. 아니 그런다면 부끄러워질 것이다. 더욱이 마음이 정화되기도 한 설날 아닌가.  

 그렇다면 ‘내가 새로워져서’에서 그 내포가 무엇인지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개신(改新)’의 취지와 각도에서, 갱신과 경신을 비롯하여 회개와 참회에 이르기까지 다양할 것이다. 화자가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아마 이중 어느 것을 선택하여도 진정성만 있으면 좋다는 허여의 뜻이 있어 보인다. 3연의 ‘거리’는 사회를 지칭하며, 나 개인의 변화가 사회를 새롭게 한다는 제언이 소신으로 선명해 우리의 주목을 끈다. 타인이나 사회가 보다 나아지기를 바란다면 자신이 자신을 먼저 변화시켜야 한다는 1연의 메시지가 여기서 자율과 자긍의 자중자애(自重自愛)로 강화되면서 더욱 자신을 새롭게 하기를 촉진한다. 

 이 시에서 우리가 가장 공감하는 부분이, 4연 ‘지난날의 쓰라림과 괴로움은/오늘의 괴로움과 쓰라림이 아니요/내일도 기쁨과 슬픔이 수놓겠지만/그것은 생활의 律調일 따름이다’일 수 있겠다. 앞 두 행에는 새해 설날 이전의 고통과 고뇌가 제대로 정리되지도 정화하지도 못했다고 하더라도, ‘내가 새로워’진다면 그것들은 더 이상 미몽의 고통과 미련의 고뇌가 아니다. 사심 없는 자성(自省)으로 시비를 제대로 분별하여 자신에게 귀책되는 것은 그대로 인정하며 응분의 자책을 하고, 남에게 귀책되는 것은 관용하며 잊으라는 뜻도 함축되어 있다고 하겠다. 뒤 두 행에는 우리 삶에서 늘 문제시되는 조울, 기쁨과 슬픔을 역시 ‘내가 새로워’진다면’ 올해에도 어떤 식으로든 여전히 발생할 것이지만 그저 ‘생활의 율조(律調)’, 즉 삶의 기본 양식(糧食)에 불과하다고 여길 수 있으며 동요되지 않을 의지로 포용도 할 수 있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고 하겠다. 

 5, 6연의 경지는 개신에 익숙하지 않거나 이해에 골몰하는 우리에게 부담스러울 수 있다. 경이원지(敬而遠之). 하지만 생활에서 4연을 대범하게 실천한다면 그 후과(後果)로 자연스럽게 도래할 수 있을지 모른다. ‘흰 눈같이 맑아진 내 의식’은 설날의 서설(瑞雪)과 잘 어울리고, ‘내 심호흡한 가슴’에 ‘용솟음’ 치는 ‘사랑’은 주변의 타인들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축복일 것이다. 그리하여 만약 화자의 소신대로 ‘꿈’이 ‘나의 충직과 일치’할 수 있으면, ‘나의 줄기찬 노동은 고독을 쫓’을 수 있어 우리는 어쩌면 생활의 완인(完人)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모두 따를 수 없고 그 규모도 줄이고 줄이더라도 특히 설날 아침에 떡국을 먹으며 자신에게 어떤 개신을 부디 한번 충일하게 시도해보라고 이 시의 화자는 ‘기도’하듯 권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