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의 '수원 詩, 수원 詩人'(42)] 강희동 '콩나물'

김준기 수원시인협회 회장

 

콩나물

                      강 희 동

 

콩이 나물이 되기 위해서는

적묵(寂默)으로 수도해야 한다

해를 보지 않고 덮은 굴속에서 물만 먹고

노랗게 질리며 제 키를 호리빼빼하게 키우며

묵언 정진해야 한다

세상이란 난전에서 제 역할로

제 모습 팔리고 사라지기란

콩이 나물이 되는 것보다

훨씬 더 고단하다

콩나물

사람의 입속으로 들어가 우걱우걱 씹히며

음식으로 사라지는 행위를 위해

나는 오늘도 볕들지 않는 골방에서

콩나물이 되고자 몸피 줄이고

밤 곤두세워 키 늘이고자

물과 술(術)을 퍼부어 주고 있다

 

위의 시는 강희동 시인이 2022년에 펴낸 시집 『나 흔적이 되려 하네』에 실린 시 「콩나물」의 전문이다.

어린 시절 우리 집에서도 콩나물은 자급자족의 반찬거리였다. 볕이 잘 들지 않는 윗목 한쪽에 큰 함지박을 놓고 그 위에 나무 삼발이를 뉘어 놓은 다음 시루를 얹는다. 그 속에 물에 불린 콩을 넣고 검은 천으로 덮은 다음 하루에도 서너 번씩 물을 주어야 한다. 혹시 콩나물이 얼마나 자랐나 하는 어린 조바심에 그 검은 천을 들춰보다가 어머니께 혼을 난 기억이 이 시를 읽으며 새롭다. 콩나물을 기를 때에는 그 속으로 볕이 들어가서는 안 된다. 잘 자라지도 않을뿐더러 초록색으로 변하고 자칫 비린내가 나기가 십상이기 때문이다. 

‘묵언 정진’이라니. 한낱 콩이 콩나물이 되기 위해서도 ‘적묵(寂默)으로 수도’하는, ‘묵언 정진’ 그 통과의례가 필요하단다. 무릇 본래 모습을 바꿔 새로운 모습의 생명이 되기 위해서는 한 마리의 애벌레가 나비가 되기 위해서 고치라는 과정을 거치듯 ‘해를 보지 않고 덮은 굴속에서 물만 먹고/노랗게 질리며 제 키를 호리빼빼하게 키우며/묵언 정진’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어 시인의 사유는 ‘세상이란 난전에서 제 역할로/제 모습 팔리고 사라지기란/콩이 나물이 되는 것보다/훨씬 더 고단하다’라며 우리네 인생살이의 곤고함으로 뻗는다. 그 고단한 생애에서 과연 우리는 이 세상의 무엇을 남기고 우리네 이웃에게 무엇을 베푸는 존재일까. 

시인은 ‘콩나물/사람의 입속으로 들어가 우걱우걱 씹히며/음식으로 사라지는 행위를 위해/나는 오늘도 볕들지 않는 골방에서/콩나물이 되고자 몸피 줄이고/밤 곤두세워 키 늘이고자/물과 술(術)을 퍼부어 주고 있다’고 했다. 처음 이 시를 읽었을 때는 ‘어라, 이 무어지?’했다. 시의 끝 행에서 ‘물과 술(術)을 퍼부어 주고 있다’라고 했는데 처음에는 무심코 그 술(術)을 마시는 술[酒]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강희동 시인도 청탁불문 두주불사의 술꾼이다. 당연히 일상의 언어가 시의 언어로 탈바꿈하기 위해서는 생명의 원형상징인 ‘물’과 시인의 영혼을 적셔주는 술로 생각했다. 그런데 다시 보니 술(術)이다. 내 나름대로는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았다. 술(術)은 단순히 계략이나 재주만을 뜻하는 글자가 아니라 살아오면서 각자가 제각기 깜냥대로 획득한 과정이자 통로이기에 그 소산을 붓는다는 뜻일까. 나머지 사유는 독자에게도 넘기고.

에이 모르겠다. 강 시인. 이 겨울 지나고 낙동강 둔치에 개나리 필 때쯤 한번 내려갈 테니 탁주 한 잔 사소. 그 답은 그때 듣는 걸로 합시다.

 

 

강희동 시인

시집 '지금  그리운  사람', '손이 차가워지면 세상이 쓸쓸해진다', '세한도' 등. 

율목문학상, 경기페문학대상, 한국시학상 본상, 영랑문학상 대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