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강
임 애 월
나더러
냉정하고 차갑다고
함부로 말하지 마라
가슴 속
물길 깊은 곳엔
뜨거운 피 흐르고 있나니
촌철살인이라 하던가. 그 어떤 구구한 이야기보다 단 한마디의 말이 사물의 급소를 정확히 찌르는 법이다. 시도 그럴 때가 있다.
위의 시 「겨울강」은 2011년 시인이 펴낸 시집 『어떤 혹성을 위하여』에 들어있다. 날씨 탓이다. 묵은 시집들을 꺼내어 읽다가 이 짧은 시가 눈에 훅하고 들어왔다. 얼핏, 시에 그 어떤 시적 수사(修辭)도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저 우리가 쓰는 지극히 일상적인 언어들이 행을 가르며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그 시어들의 원형상징을 통하여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살펴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우리가 보고 판단하는 것은 그 깊이가 어디까지일까.
한겨울 얼어붙은 겨울강은 그 풍광을 더욱 을씨년스럽게 만든다. 언제 흩날렸던 것이었을까. 꽁꽁 얼어붙은 겨울강의 표면 위로 겨우 내려앉았던 자국눈이 파랗게 날이 선 칼바람에 베어져 허공에 흩어졌다가 다시 낮은 강설을 이룬다. 시인은 그 겨울강이다. 시인은 겨울강의 1인칭 화자가 되어 ‘나더러/냉정하고 차갑다고 /함부로 말하지 마라’라고 한다. 그렇다. ‘함부로’이다. 우리는 너무 쉽게 함부로 판단하고 그 어떤 여과도 없이 말하곤 한다. 일상에서 어떤 특정 현상이나 인물을 그 표면만 보고 이미 딱딱하게 굳은 고정관념으로 판단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가슴 속/물길 깊은 곳’에 흐르는 ‘뜨거운 피’를 미처 보지 못하고 말이다.
두말할 필요 없이 물의 원형상징은 생명이요 사랑이다. 이 지상의 모든 생명도 그 까마득한 기원은 물이었으며 지금도 그 물에 힘입어 형체를 이루고 들숨과 날숨을 이어간다. 흐르던 강물이 그것도 겉면만 겨울 한철 잠시 얼었을 뿐이다. ‘겨울강의 가슴 속’ 깊은 곳에는 여전히 생명과 사랑의 뜨거운 피가 끊이지 않고 흘러가는 것이 강이다.
입춘 추위가 너무 가혹하여 웅크리고 앉아서 해보는 생각이다. 머지않아 또 봄은 어김없이 찾아오고 얼음장 속에 흐르던 뜨거운 생명의 원형이 강줄기를 타고 굽이쳐 흐를 것이다. 그 흐름에 젖은 둔덕에는 실버들 우듬지까지 푸른 생명의 흐름이 번지고 하늘에는 노고지리가 날 것이다. 그리고 임애월 시인이 땀 흘려 가꾸는 과수원에 복숭아꽃이 만발할 것이다. 꽃샘 추이 속에 들어앉아서도 그 크고 탐스러운 향기를 생각하면 입에 침이 고인다. 시인의 시와 시인이 사는 마을 언덕에 자리 잡은 생명들 또한 바로 임 시인이 ‘가슴 속/물길 깊은 곳’에 흐르게 하는 ‘뜨거운 피’의 발현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그리고 사람도.
임애월 시인
시집 『나비의 시간』 외 다수
문덕수문학상, 전영택문학상, 한국시학상, 수원시인상 등 수상
계간『한국시학』 편집주간
수원시인협회 상임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