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종의 문학잡설(112)] ‘사로 끝나는 직업을 가지래요’
지난주에 고 김하늘 양 피살사건이 발생하자 국민의 이목이 우울한 이목이 다시 우리 학교교육의 현장으로 쏠려 있다.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교육 분야도 사건 사고가 야기되어야 정부 당국과 국민이 문제시하고 자못 침중한 분위기에서 사후 대책을 마련하곤 하는데, 여건이 어떠하든 이제 부디 이런 한심한 면모를 지양하기 바란다. 미리 문제를 찾고 그것을 과감하게 예방하는 선제 대책을 왜 과감하게 조치하지 못하나.
아닌 게 아니라 우리는 백년대계 교육 현장이 궁금하고 청소년 증등 학교도 그러한데 그 실제를 관찰할 겨를을 내기가 쉽지 않다. 첫 행 ‘엎질러진 물처럼’이 대번 우리를 주목하게 하는 다음 시에서 우리는 꼭 알아야 할 그 현장의 한 주요 국면을 살필 수 있다.
엎질러진 물처럼
복도를 내달리는 아이들
울면서 웃는 건지
웃으면서 우는 건지
도통 분간이 가지 않는 맑은 얼굴에
선생님 선생님, 물장구처럼 번지는 부름에
가끔은 뒤를 돌아볼 수 없었다.
저희 엄마는 이혼 전문 변호사가 아니라
이혼이 전문이에요
실은 이모가요
새벽마다 집을 나가는 아빠처럼 되기 싫으면
사로 끝나는 작업을 가지래요
교사, 의사, 검사 …… 폭주 기관사?
장난스레 웃는 너희의 입가에선
물장구치는 소리가 난다.
얘들아, 내 뒤통수엔 눈이 달렸다는 건
대학 가면 애인이 생기고 회사원이 되면 돈이 생긴다는 건
하나도 프로페셔널하지 못한 나의 거짓말
너희는 나를 바라보며 달려오는데
나는 여전히 너희를 뒤따라 걷는다
체크무늬 치마보다
쨍한 주황색 체육복보다
더 촌스런 건 나겠구나
그치만 얘들아 얘들아
우리는 이미 서툰 것에 능하지
그건 우리가 전문이지
마주 잡은 두 손에서
매일 다른 소원이 생기는 것도
교실 창가에 젖은 양말을 널어놓는 것도
얘들아
어른이 된다면 말이다
자꾸만 풀리는 운동화 끈을 서로 묶어 주는
작고 단단한
마침내 전지전능한 다정함으로
우리를 살리자
아이들은 듣는 둥 마는 둥
그러나 내 말대로
저마다 산만하게
쏟아지고 있다
복도에서 교실로 운동장으로 뒷문으로
- 「복도의 복도」/김지은
1연에서 1, 2행 직후에 행간을 두고 3-7행과 나누어 읽으면 좋겠다. 전자는 정규수업이 끝난 직후 교실에서 복도로 학생들이 몰려나오는 모습일 것이며, 후자는 그 상태에서 이 시의 문제제기로 학생들의 어떤 발화가 부각되려 하는 국면이다. ‘울면서 웃는 건지/웃으면서 우는 건지’ 애매하지만, 학생들의 그 ‘맑은 얼굴’의. 하지만 우리는 화자의 대답이나 반응보다 ‘가끔은 뒤를 돌아볼 수 없었다’는 화자의 독백에 직면한다. 의문이 든다. 왜 그러는가. ‘가끔’이라 제한하긴 하지만 학생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고, 게다가 그 ‘부름’은 ‘물장구’에 비유되고 있다. ‘물장구’는 장단 치는 놀이기도 하지만, 물에 빠지지 않으려는 생존의 동작이며 익사를 모면하려는 안간힘이 내포돼 있다고 할 수 있어, 그 취지가 가볍지 않다. 교사로서 정체성이 부족하거나 무슨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는 것도 우리는 직감하지만, 이 토로가 우리로 하여금 이 시의 문제기가 무엇인지 더욱 살피게 촉진한다.
이어지는 2연에서 우리는 그 직감도 씁쓸하게 추인하게 된다. ‘이혼’ ‘전문’은 좀 그렇다고 하더라도 ‘새벽마다 집을 나가는 아빠처럼 되기 싫으면’을 전제로 한 이모의 조언은 바로 우리가 평소에 주로 하던 말 아닌가. 특히 ‘교사, 의사, 검사 …… 폭주 기관사?’란 학생의 반문에, 그 어조에 반발과 조소도 배인 희화화가 내포돼 있어 당황스럽다. 사정에 따라 그러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이 모습은 아무래도 졸렬하여 새삼 우리를 두루 곤혹하게 하며, 우리 마음의 표정도 ‘울면서 웃는 건지/웃으면서 우는 건지’ 애매해질 것 같다.
이러한 견지에서 이전 시행들을 정리하면서 추후 변화를 예고하는 3연도 계속 주목된다. 앞에서 제시된 청소년들의 순수 의식과 생존에 연계된 동작이 재차 강조되고 있고, 화자가 제자들을 바라보는 시선의 상향 변화가 함축되어 있다. 우리를 대신하기도 할 4-8연의 긴 자책 고백은 그래서 느닷없지 않다.(참고로 4연 1행 ‘내 뒤통수엔 눈이 달렸다는 건’, 화자가 칠판을 볼 때도 학생들이 한 눈 팔지 않고 공부에 열중하는지 감시할 수 있다고 채근했다는 취지) 5연, ‘너희는 나를 바라보며 달려오는데/나는 여전히 너희를 뒤따라 걷는다’에서 우리도 화자를 따라 그렇게 공명하며 더욱 착잡해지고, 7연에서 젊은 교사 화자가 ‘우리는 서툰 것에 능하지’라며 제자들의 처지와 문제의식까지 같이하는 자의식도 보이자, 우리 학부모 ‘어른’들은 그 대척에 선 자신의 위치를 개재된 거리와 함께 실감하며, 책임의식이 가중된다.
그리하여 화자가 제자들에게 드디어 그 대책으로, ‘어른이 된다면’ ‘자꾸만 풀리는 운동화 끈을 서로 묶어 주는/작고 단단한/마침내 전지전능한 다정함으로/우리를 살리자’고 제안하자, 우리는 더욱 미안하면서 감사하다. 소통과 연대, 존중과 배려를 환기하는 ‘서로 묶어 주는’ ‘전지전능’한 ‘다정’에 공명하면서. 하지만 그러지 못하고 있는 우리는, 한편 이 미덕들이 기존의 지표와 다르지 않고 과연 그 제대로 된 표출이 가능할지 여전히 의문이며, 또 그런다고 하더라도 과연 ‘전지전능’할 수 있을는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하지만 한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미흡한 실천을 반성하게 한다. 그러고 보니 이 시는 중등학교 현장 교사 화자의 소회만이 아니다. 또 학생들이라기보다는 이 땅의 학부모들을 독자로 하면서, 학부모의 의사도 필수로 개입된 현장의 형편을 다시 참조해보기를 소구(訴求)하는 듯하다. ‘엎질러진 물처럼/복도를 내달리는’ ‘맑은 얼굴’의 ‘아이들’, 교사와 ‘마주 잡’은 ‘두 손에서’ ‘매일 다른 소원이 생기’는 ‘아이들’은, 마지막 11연에서 보듯, ‘듣는 둥 마는 둥’하며, ‘저마다 산만하게’ ‘복도에서 교실로 운동장으로 뒷문으로’ ‘쏟아지고 있’다. 췌언이지만 ‘교실’ ‘운동장’ ‘뒷문’은 여기서 학생들의 서로 다른 지향뿐만 아니라 ‘어른’들의 뜻에 순치된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의 어떤 일탈 양상도 화자가 부각하고 있다고 하겠는데, 그 뜻하는 바가 각각 무엇인지는 부언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