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이 세상에서 지낸 시간이 늘어날수록 우리는 자기 인격의 수준을 헤아리며 그 수치에 영향 받는다. 경험 축적에서 우리는 사리를 알게 되고, 또 시차에 따른 과정과 추이를 성찰할 수 있어 연륜은 그 일정한 척도라고 하겠고, 관련 자의식을 아무래도 외면하기 어렵다. 부담인가. 축복인가.
공자는 나이 50에 “知天命(천명[운명, 분수]을 알았다)”이라고 하였는데[『논어』 「위정(爲政)」 편], 이후 사람들은 50세 관련 최고 규범으로 알며, 자신의 상태를 부끄러워하기도 하고 격려하기도 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 자의식의 범주와 향방이 다채로워졌다. ‘지천명’은 그 직후의 언급(“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 : 예순 살에는 무슨 말이든 순조롭게 들을 수 있었고, 일흔 살에는 욕망대로 언행하여도 상도(常道)에 어긋나지 않았다”)에서 알 수 있듯, 자신의 욕망을 편안하게 절제하는 지혜와 자율의 경지, 그 기초였는데, 우리는 우리의 욕망을 개인과 합리의 시각에서 심화 해석하고 욕망과의 갈등을 줄이면서 가능한 한 그 충족을 기도(企圖)하고 있다.
다음 시의 화자는 나이 50세를 계기로 인생 소회를 피력하는데, 위의 두 경향과 다른 이야기를 한다.
서리 덮인 기러기 죽지로
그믐밤을 떠돌던 방황도
오십령 고개부터는
추사체로 뻗친 길이다
천명이 일러주는 세한행(歲寒行) 그 길이다
누구의 눈물로도 녹지 않는 얼음장 길을
닳고 터진 알발로
뜨겁게 녹여 가라신다
매웁고도 아린 향기 자오록한 꽃진 흘려서
자욱자욱 붉게붉게 뒤따르라 하라신다
- 「세한도 가는 길」/류안진
50세 이후 자신의 삶을 화자는 ‘세한행(歲寒行)’이라고 전망한다. 여유와 성숙, 겸손과 소신의 따뜻한 길이 아니라, 춥디추운 한기가 최강으로 얼어붙은 길이라고. 아니 그렇게 각오하고 있다. 또 화자는 50세 이전 행로의 정황을 ‘그믐밤’의 ‘방황’이라고 하였다. 이 또한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 서른에 학문과 인생에서 유지하여야 할 조리를 세웠고, 마흔에는 이런저런 확산을 하여도 드디어 흔들리지도 않았다”와 너무 다르다. 다시 말해 이 시 화자의 인생행로는 50세 이전뿐만 아니라 이후도 전통 규범과 다르고, 오늘날 욕망을 동정하고 달래고 타협하고 절충하려는 경향과도 다르다. 화자는 자신이 여전히 ‘닳고 터진 알발로’ 이제 이전에도 없던 도저한 난경, ‘누구의 눈물로도 녹지 않는 얼음장 길’을 가야한다고 한다고 한다.
우리가 또 주의하여야 할 국면은 화자가 처음 자신의 그 길을 ‘천명’이라고 인식하였지만 다른 보통 사람들처럼 도피하려하지 않고 또 가야겠다고 수용하지도 않는 정형(情形)이다. 그렇다. ‘뜨겁게 녹여 가라신다’, ‘자욱자욱 붉게붉게 뒤따르라 하라신다’에서 알 수 있듯, 화자에게 누가 그런 지시를 하고 있다. 문맥으로 보아 이 지시 또한 ‘천명’이고, 지시의 주체가 바로 그 주체인 ‘하늘’이라고 우리는 쉽게 추정할 수 있다. 이 시의 화자는 그 길 이후 예순과 칠십의 길과 상태를 헤아리지 않는다. 하지만 예순과 칠십의 길도 ‘세한행’의 연속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끝없는, 아니 결국 고난이 끝이고 마는 이 길은 비극의 길인 것인가. 그건 아닐 것이다. 우리는 다시 끝 세 행, ‘뜨겁게 녹여 가라신다/매웁고도 아린 향기 자오록한 꽃진[꽃의 진액 같은 피] 흘려서/자욱자욱 붉게붉게 뒤따르라 하라신다’를 읽으며, 계속되는 그 길의 고난에 병렬 내포될 역설과 승화를 이윽고 우리도 ‘자오록한’ 상태에서나마 감지하게 된다.
이 시는 추사(秋史) 김정희(1786-1856)의 「세한도」를 연상하게 한다. 하지만 이상 감상에서 자명하듯, 상황과 이해가 바뀌어도 지속되는 의리와 지조를 상찬하는 “歲寒然後知松栢之不彫 : 엄혹한 추위가 닥친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와도 차원이 다르다.
우리는 작중 ‘추사체로 뻗친 길’을 차용하여 이 시를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파격과 독창의 조형으로 50세 이후 세차고 빠르게 내닫는 삶의 새 길. ‘천명’의 그 길은 다시 말해, ‘누구의 눈물로도 녹지 않을 얼음장 길’이 아니라, ‘누구의 눈물로도 녹지 않는 얼음장 길’로 확실하게 예정되어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길이 그 길과 무관하더라도 그 길이 어떤 길인지, 저마다의 길과 대비하며 한번 옷깃을 여미고 상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