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마중
허 정 예
겨울 끝자락의 밤은 짧다.
동트는 새벽 언저리에
창문 빗장을 흔드는 저 두드림
절기를 찾아 꽃비의 걸음이다.
천생만물이 앞다퉈 기지개 켜며
하늘과 땅이 약속이나 한 듯
입춘을 지나온 비바람이
세상을 봄으로 물들인다.
어서 일어나라고
어서 눈떠 보라고
촉촉이 스며드는 봄 언저리에
초록 비 꽃물 흐른다.
봄을 재촉하는 우수(雨水)의 눈동자
어젯밤 꿈속에 노란 생강꽃이
봄 길을 걸어오고 있다.
지구온난화의 역설이라고 한다. 겨우내 기승을 부리지 않던 혹한이 생뚱맞게 입춘이 지나면서 심술을 부리더니 우수가 코 앞일 때 올겨울 들어 가장 긴 추위가 찾아왔었다. 그러나 어쩌랴. 아무리 질긴 동장군이라도 계절이 바뀌는 것은 막지 못한다. 오늘 아침부터 성큼 봄으로 들어가는 듯하다. 그래서일까. 위의 허정예 시인의 시로 「봄 마중」이라도 나가야겠다.
‘겨울 끝자락의 밤은 짧다.’라고 시인은 계절이 옮기는 발자국을 확인한다. 동짓달 기나긴 밤도 절기가 우수를 지나 며칠 안 있으면 경칩이고 또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춘분이 한 달도 채 안 남았으니 밤이 짧을 수밖에. 곧 봄이라는 이야기이다.
‘동트는 새벽 언저리에/창문 빗장을 흔드는 저 두드림/절기를 찾아 꽃비의 걸음이다.’ 봄은 아침의 시간과 어울리는 계절이다. 만물들이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는 아침이다. 그 생명에 더욱 활기를 불어줄, 봄날의 만화방창을 위하여 꽃비가 내리리라. ‘어서 일어나라고/어서 눈떠 보라고/촉촉이 스며드는 봄 언저리에/초록 비 꽃물 흐른다.’ 그 빗물의 빛깔은 초록이어야만 한다. 그렇게 봄날의 만화방창을 위한 꽃비여야 한다. ‘봄을 재촉하는 우수(雨水)’가 지났다. 봄을 기다리는 성급한 마음이 누구에겐들 없으랴. 시인의 꿈속으로는 ‘노란 생강꽃이/봄 길을 걸어오고 있다.’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 속에 나오는 그 꽃은 실상은 생강꽃이라고 한다. 톡 쏘는 알싸한 꽃내음이 마치 생강 냄새와도 같은. 들녘에 아지랑이가 본격적으로 오를 무렵에 강원도 인제로 한번 가볼 생각이다. 만해문학관도 들르고 백담사를 찾아 그 산골짜기 어디쯤 만발했을 생강꽃을 만나러 겸사겸사
허정예 시인
문파문학 신인상
한국경기시인협회 이사
한국문인협회, 수원문인협회 수원시인협회 회원
시집『시의 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