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광복 80주년을 맞는 해이고, 내일(3월 1일)은 3·1운동 106주년을 맞는 날이다. 수원박물관은 이날부터 6월 29일까지 3·1운동이 일어난 1919년 수원사람들의 항쟁을 다룬 특별기획전 ‘항거, 수원 1919’를 개최한다.
이 전시회에는 당시 수원지방의 3·1 운동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개도와 함께 ‘방화수류정 만세운동’(3월1일), ‘송산면 사강리 만세운동’(3월28일), ‘수원 기생 만세운동’(3월29일), ‘제암리·고주리 학살 사건’(4월15일)과 관련된 사진·유물이 전시된다.
1919년 3월 1일 화홍문과 방화수류정 일대에서 열린 ‘방화수류정 만세운동’은 김세환(민족대표 48인, 1888~1945) 선생을 비롯, 교사와 학생, 종교인들이 중심이었다. 이후 만세운동은 4월까지 팔달산, 행궁 등 수원 전지역에서 20여 차례에 걸쳐 잇따라 열렸다. 수원기생조합 김향화 지사 등 기생들도 일신의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수원박물관 관계자 말처럼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1919년 외쳤던 ‘대한독립만세!’ 함성을 되돌아볼 수 있는 전시”다.
이런 애국지사들의 피로 물든 헌신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그런데 이상한 사람들도 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제 점령함으로써 나라가 발전했다는 요상한 궤변을 펼치는 자들이다.
집에 떼강도가 들었다. 강도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은 대문을 크게 확장하고 집 앞 도로를 정비한 것이었다. 철도도 놓았다. 어리석은 집주인은 크게 기뻐했다.
그러나 곧이어 그 문으로 대형트럭과 기차가 들어와 집안의 가재도구며 쌀, 집안에서 전해 내려오는 오래된 가보, 심지어는 뒤란의 장독과 마루까지 뜯어 싣고 나갔다.
젊고 어린 여자들을 잡아서 사창가로 팔았다. 뒤늦게 항의하는 식구들은 죽이거나 잡아다 고문하고 가뒀다. 남은 것은 폐허가 된 집뿐이었다. 원래는 철로도 뜯어갈 생각이었지만 떼강도들이 급하게 도망치느라고 그냥 두고 갔다.
세월이 흘렀고 후손들이 다시 집을 수리해 살았다. 강도들은 지금도 가까운 마을에서 뻔뻔하게 잘살고 있다. 진정한 사과나 피해 보상도 하지 않은 채 자신의 자식들에겐 강도질을 미화해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피해자 가족 중엔 그 어리석었던 조상의 DNA를 받은 이가 있어서 큰 대문과 길을 칭찬하고 있다. 그들은 강도가 아니라 우리 집안을 일으킨 은인이라며.
지난 2019년 8월 1일 서울 일본대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 옆에서 이상한 시위도 벌어졌다. 한 여성단체가 우리나라 대통령이 일본에 사과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이 자리에서 한 여성은 “아베 수상님,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사죄를 드립니다” “일본 파이팅!”이라고 외치기도 했다. 이완용도 울고 갈 일이었다.
이 여성단체 만이 아니다. 이른바 뉴라이트라고 하는 교수 중 한명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매춘에 종사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위안부가 됐다”고 했다.
어떤 목사는 “대한민국은 일본의 식민지로서 일본과 함께 전쟁의 전범이다” “일본이 한국을 독립국으로 인정해준 것이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대한민국에 대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처리하실 것 같냐”는 망언도 했단다.
심지어 이 나라의 대통령도 그랬다. 2023년 3·1절에 윤석열 대통령은 청산되지 않은 과거사를 외면한 채 “일본은 협력 파트너”라고 했다. 순국선열과 독립지사의 고귀한 희생을 부정하듯 “우리가 준비를 제대로 못 한 바람에 국권을 상실”했다고 했다.
애국선열과 그 후손들에게 부끄러울 따름이다. ‘부끄러움은 우리의 몫’이란 말이 있다. 망언과 망동은 저들이 하고 있는데 왜 우리가 부끄러워야 하는가?
내일부터 수원박물관에서 열리는 ‘항거, 수원 1919’ 전시회를 많은 시민들이 보러 가주시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