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영 광교칼럼] 수원, 그날의 함성 ‘찐 태극기 부대’가 여기 있었네
독립운동가 김세환 현양사업, 수원시와 지역사회 적극 지원 필요
지난 1일 수원박물관에 다녀왔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온몸을 바친 수원의 독립운동가와 민중의 이야기를 시민과 우리 후손들이 기억하기 위한 제106주년 3·1절 기념 ‘수원, 그날의 함성’ 행사가 열렸기 때문이다.
이날 서울에서는 대규모 탄핵 찬반시위가 열렸다. 나도 가서 내 의사를 표현하면서 힘을 보태고 싶었지만 수원에서 열린 3·1절 행사가 우선순위였다.
특히 서거 80주년을 맞은 수원의 독립운동가 김세환(1888~1945, 민족대표 48인 중 한 명) 선생 헌화소에 국화 한 송이나마를 바치고 싶었다.
얼마 전 수원일보에 쓴 사설(2월 28일자, ‘106주년 3·1절에 친일을 생각한다’)에서 이런 비유를 들었다.
‘집에 떼강도가 들었다. 강도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은 대문을 크게 확장하고 집 앞 도로를 정비한 것이었다. 철도도 놓았다. 어리석은 집주인은 크게 기뻐했다.
그러나 곧이어 그 문으로 대형트럭과 기차가 들어와 집안의 가재도구며 쌀, 집안에서 전해 내려오는 오래된 가보, 심지어는 뒤란의 장독과 마루까지 뜯어 싣고 나갔다.
젊고 어린 여자들을 잡아서 사창가로 팔았다. 뒤늦게 항의하는 식구들은 죽이거나 잡아다 고문하고 가뒀다. 남은 것은 폐허가 된 집뿐이었다. 토벌대가 들이닥쳤다. 급하게 도망치느라 철로도 대문과 철로는 그냥 두고 갔다.
세월이 흘렀고 후손들이 다시 집을 수리해 살았다. 강도들은 지금도 가까운 마을에서 뻔뻔하게 잘살고 있다. 진정한 사과나 피해 보상도 하지 않은 채 자신의 자식들에겐 강도질을 미화해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피해자 후손 중엔 그 어리석었던 조상의 DNA를 받은 이가 있어서 큰 대문과 철로를 칭찬하고 있다. 그들은 강도가 아니라 우리 집안을 일으킨 은인이라며.’
안타깝지만 ‘어리석었던 조상의 DNA를 받은’ 자들이 지금도 꿈틀거리며 나타나 이상한 소리를 하곤 한다. 그들의 머릿속엔 도대체 무엇이 들어있는 것일까? 어떤 교육을 받았기에, 어떤 사회적 영향을 받았기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걸까?
믈론 이런 자들과 달리 정상적인 사고와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조성진이 대표적인 사람이다. 그는 독립운동가 김세환 선생 기념사업회를 이끌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그의 친구 윤의영과 고영익 등도 자기 일처럼 그를 돕고 있다.
조성진 일가는 김세환 선생이 살았던 집터에서 한약방과 카페, 명상센터, 전시장을 운영하고 있다. 부모님은 거기에 사신다. 조성진과 김세환 선생과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민족대표 48인 중 한 명인 김세환 선생은 수원의 3·1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1919년 3월 1일 저녁 화홍문과 방화수류정(용두각) 일대에서는 천도교도와 기독교도를 포함해 수백 명이 횃불시위를 벌였다. 수원지역 3·1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이어 봉수대, 팔달산 화성장대 등 20여 곳에서 만세 함성과 횃불이 타올랐으며 발안장터 등 수원군(현 수원시, 화성시)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수원군 일대의 만세 항쟁은 전국에서도 가장 격렬했다고 평가된다.
김세환 선생이 이 만세항쟁의 시작이었다. 선생은 수원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독립운동과 민족운동·교육을 이끌었다.
수원 지역 뿐 아니라 이천, 충남지역 등 국내 3·1 독립만세 운동을 이끌다가 체포된 뒤 옥고를 치렀다.
한동민 박사는 2019년 2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유관순 열사로 대표되는 천안 아우내 장터 만세 운동도 김세환 선생의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출옥 후에도 신간회 수원지회장과 수원체육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활동을 쉬지 않았다.
선생은 광복을 맞은 지 한 달 후인 1945년 9월 16일 세상을 떠났고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이처럼 훌륭한 일을 한 애국지사지만 수원지역사회에서는 선생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지 않았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조성진 회장(사단법인 화성연구회 이사)이 자비를 들여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김세환 선생 집터 전시회, ‘일제 강점기 김세환과 수원지역 사회운동’강연회, 역사 콘서트를 진행하고 있다.
가빈갤러리 앞 인도엔 ‘김세환 집터’라는 안내판도 설치돼 있다.
‘독립운동가 김세환선생 기념사업회’도 출범시켰다.
이런 활동의 결과 2020년 3·1운동 101주년엔 ‘3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수원엔 선생의 동상조차 세워져 있지 않다. 김향화, 이선경, 김노적 등 온몸으로 일제에 항거한 지사들의 동상 역시 없다.
임면수 선생 동상만 수원시청 앞 공원에 외롭게 서있을 뿐이다. 친일 논란이 있는 홍난파는 동상과 노래비까지 있는데 말이다.
수원시와 지역사회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3월 1일과 8월 15일에만 반짝거리는 관심보다는 모든 시민이 이 위대한 인물들을 기억할 수 있도록 끊임없는 현양(顯揚)사업을 펼쳐야 한다.
이날 수원박물관에서 열린 행사에서 나도 ‘대한독립 만세’라고 목청껏 외쳤다.
내 뒤에서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그래, 이것이 찐 태극기 부대지. 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