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오후 화성박물관에서 열린 사단법인 화성연구회 3월 월례회 인문학강좌의 주제는 ‘시흥행궁과 사근행궁’이었다.
발표자는 화성연구회 부이사장으로써 문화재실측설계 기술자이자 고건축을 전문으로 하는 여유당건축 김관수 대표다.
김 대표는 수원일보 1월 24일자 사설 ‘올해는 영화역(迎華驛) 복원에도 힘을 쏟자‘에도 등장하는 영화역 연구자이기도 하다.
나는 그 사설에서 수원시가 역사문화관광 도시로 지속 발전하기 위해서는 영화역을 복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원시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수원화성과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행궁인 화성행궁이라는 훌륭한 역사·문화 콘텐츠를 갖고 있다. 여기에 더해 전통관광자원이 지속적으로 확보된다면 더욱 많은 관광객이 수원을 찾고 지역경제 또한 활성화될 것’이라고 썼다.
그러면서 김관수 대표의 “영화역은 미 복원시설 중 수원시민들의 관심과 복원에 대한 열의가 넘치는 시설이지만, 연구에 대한 투자는 미미하여 아직도 위치조차 찾지 못하고 있는 입장”이라는 지적을 전했다.
영화역은 신도시 수원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정조대왕의 경제 활성화 정책 가운데 하나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그리고 실제로 영화역이 정조대왕의 의도대로 지역활성화에 기여했음을 ‘화성성역의궤’ 기록을 통해 증명했다.
‘영화역은...(중략)...경기 양재도(良才道) 역을 이곳에 옮겨 처음 설치하고, 우선 역에 속한 말과 집을 이사시켰다. 이어서 역관의 건물을 세우고 역의 이름을 영화(迎華)로 바꾸도록 명령했다...(중략)...몇 개월 사이에 새로 모여든 집이 즐비해 취락을 이룬 것이 마치 하나의 작은 현과 비슷했다’
김관수 대표는 이날 인문학강좌에서 복원 완료된 화성행궁에 이어 시흥행궁(금천행궁)과 사근행궁의 복원 필요성을 강조했다.
시흥행궁은 1794년 4월2일 ‘금천행궁’으로 건설됐다. 정조대왕의 어머니 혜경궁 회갑잔치를 위해서 수원으로 오는 경로를 변경해야 했기 때문이다. 1795년 2월1일 ‘시흥행궁’으로 개칭했고 그해 혜경궁과 정조대왕의 수원행차와 환궁 때 숙소로 사용됐다. 1795년과 1796년 행차 때는 정조대왕이 활을 쏘기도 했다.
정조대왕이 승하한 후인 1800년 11월 3일엔 정조영가가 이곳에서 유숙했다. 1816년 3월 1일엔 혜경궁의 영가가, 1821년 9월 10일엔 정조대왕 왕비인 효의황후 영가도 이곳에서 유숙했다.
뿐만 아니라 순조도 1806년과 1807년 수원행차를 위한 출궁과 환궁 때 이곳에서 유숙한 바 있는 매우 유서 깊은 유적이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초기 객사와 관아를 뜯어 고쳐 학교, 군청, 병원, 등기소 등으로 사용하다가 1920년대 기존건물을 헐고 신축하면서 시흥행궁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사근행궁’ 관련기록은 1665년(현종6, 사근내주정)과 1717년(숙종43, 사근천주정소) 승정원일기에 나타난다. 현종과 숙종이 온천행차 때 머물다갔다.
정조실록엔 1760년(영조36, 사근현, 사도세자 온천행), 1794년(정조18, 사근행궁, 정조 수원행), 1795년(정조19, 사근행궁, 혜경궁 수원행), 1798년(정조22, 사근참)의 기록이 남아 있다.
1795년에 간행된 ‘원행을묘정리의궤’엔 ‘수라간으로 사용하기 위해 북쪽 창고를 보수해 가가(假家) 다섯칸을 마련하고 궁인과 당상관 이하 수행원을 위해 별도로 다섯칸의 가가를 지었다’고 기록돼 있다.
사근행궁 역시 이처럼 역사적으로 소중한 유산이었지만 일제강점기인 1939년 면사무소 새청사 건립을 위해 매각됨으로써 사라졌다.
시흥행궁과 사근행궁은 능행도 가운데 ‘환어행렬도’에도 그려져 있다.
현재 정조대왕 능행길에 있던 시흥행궁, 사근행궁, 화성행궁 중 화성행궁만 제대로 복원이 되어 있다. 시흥행궁과 사근행궁은 행정관청과 시민들의 무관심속에 흔적조차 없거나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시흥행궁은 이미 오래 전에 사라져 주택가가 됐다.
사근행궁은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조성되고 있는 중이다. 사근행궁지는 사업범위에 포함돼 있다. 따라서 공사 시행 전 시굴조사를 통해 사근행궁지의 멸실, 또는 잔존여부를 명확하게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김대표는 목소리를 높였다.
수원시는 정조대왕 능행차를 무형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무형유산이 되기 위해서는 왕의 행차가 머물렀던 행궁이 필요하다. 시흥과 의왕 뿐 아니라 우리 수원도 힘을 합쳐 보존과 복원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