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종의 문학잡설(117)] ‘서고정사(西皐精舍)의 꿈’

김승종 / 시인 · 전 연성대 교수

 

 도시의 아파트 공간이 고향이 되고만 세대와 달리, 산천(山川) 사이 향리(鄕里)에서 자라 산업화 이전 이후에 그곳을 떠나온 세대에게 그곳 즉 고향은, 늘 향수를 자아낸다. 설과 추석의 귀향만으로는 그 근심 같은 그리움이 해소되지 못하고, 어떤 계기를 맞아서는 그 미진이 증폭되기만 한다. 향수를 주제로 한 시가 없을 수 없고, 시사(詩史)에서 그 모티프는 다양한데, 다음 현대 한시(漢詩)에서는 ‘꾀꼬리 소리’이다.      

 

禁苑崇墻碧柳垂   금원의 높은 담장에 푸른 버들 늘어지자

聲聲向我似相知   소리소리 나를 향해 마치 서로 아는 듯

卅年重喚西皐夢   서른 해 서고정사(西皐精舍)의 꿈을 거듭 불러 일으켜

題罷新詩白日遲   새 시를 짓고 나니 한낮이 더디구나 

      - 「청앵(聽鶯)」/이우성(1925-2017)/정경주 역

 

 이 시의 「소서(小序)」에 따르면 시인은 이 시를 1988년 5월에 성균관대학교 수선관(首善館) 6층 연구실에서 썼다. 창덕궁 비원의 숲 버드나무 언저리에서 들려온 꾀꼬리 소리가 시인에게  향수를 초래한 것이다. 그런데 이 꾀꼬리 소리는 1959년 초여름 동래 범어사에서도 같은 향수를 불러일으켜 시인은 하는 수 없이 “花落滿庭吾不去(뜰 가득 꽃이 지도록 내가 가지 않아)/一春愁殺故山鶯(봄 내내 고향 꾀꼬리가 너무 근심스럽겠구나)”이라고 읊었었다. 또 시인은 꾀꼬리와의 오랜 인연과 우정도 언급하였다. “예전에 내가 동자 때에 서고정사에서 독서를 하였는데, 매번 봄에서 여름이 될 무렵 꾀꼬리 소리가 후원의 숲에서 나와 곧장 시를 읊어 서로 화답하였으니, 세월이 총총하게 흘러 이미 50년 전의 일이 되었다. … 다시금 이 벗을 부르는 소리를 들으니 감개가 어떻겠는가?”  

 이제 우리는 꾀꼬리 소리와 향수에서, ‘서고정사(西皐精舍)의 꿈’으로 관심을 옮겨야 할 것이다. 시인의 「연보」에 따르면 이 꿈은 시인의 꿈이기도 하고, 어린 시절의 시인을 밀양의 그곳에서 수학하게 하며 권면을 아끼지 않은 시인의 조부 성헌(省軒) 이병희(李炳憙 : 1859-1939)의 꿈이기도 하다. 성헌의 부친 항재(恒齋) 이익구(李翊九 : 1838-1912)는 성재(性齋) 허전(許傳 : 1797-1886)의 제자이며 『독사차기(讀史箚記)』 등을 지었고, 성헌은 『조선사강목』 등을 짓고 『성호집』을 간행하였다. 이 맥락으로 보아 그 꿈의 단서는 성호학파의 경세치용 학풍을 이은 ‘현실적용 역사통관 함양’이 아니었을까. 시인이 서고정사에서 공부하던 시절, 1939년 9월에 쓴 다음 시를 참고하고자 한다.   

    

廢郭千年跡  황폐한 성곽은 천년의 자취

寒江萬古流  차가운 강물은 만고에 흐른다

秋風無限意  가을바람 무한한 생각 일으키는데

獨上嶺南樓  홀로 영남루에 올랐노라

      - 「등영남루(登嶺南樓)」

 

 1행에서 다른 무슨 경치가 아니라 하필이면 무너진 밀양성곽을 바라보는 15세 시인의 시선도 시선이지만, 나아가 그 흔적에서 ‘천년’ 세월을 운위하고 있어 주목을 끈다. 이러한 시선과 회고는 역사의식 원형이자 기본 자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행에서 영남루 앞을 흐르는 남천강물을 차갑다고 하고, 밀양성이 있기 이전 오랜 아주 먼 옛날부터 이곳에서 흘렀다고 하여 그 시선과 회고는 확대되며 유구한 세월의 이미지가 간단없는 물결로 부각된다. 3행 ‘가을바람 무한한 생각 일으키는데’는 앞 두 묘사에 관련된 시인의 내면 토로로 앞 두 풍경과 규모와도 어울린다. 4행 ‘홀로 영남루에 올랐노라’는 이상을 종합한 시인 자신의 고독한 자기응시  결미이다. 우리는 이 시에 일제치하 민족현실이 투영되어 있고, 식민지 국민교육에서 벗어난  입지에서 무언가 우리의 역사를 조망하려는 지취와 기백이 내포되어 있다고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스물 전후에 썼을 다음 시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柳梢舒眼荻生芽  버들개지 눈을 뜨고 억새 싹이 돋는데

一夜瀟瀟雨薄沙  하룻밤 부슬부슬 비가 모래를 적신다

臥想鱖魚時節近  쏘가리 철이 가깝다 누워서 생각하니 

馬巖春水更如何  마암산 봄 강물은 다시 어떠할지 

 

 앞 두 구에서 봄철 경물과의 그윽하고 유려한 서정을 시인은 피력하고 나서, 3행에서 ‘쏘가리 철’을 자각하며 ‘마암산’ 아래 그 남천강[응천(凝川)] ‘봄 강물’이, ‘다시’ 어떤 상태인지 궁금해 한다. 앞 시 ‘寒江萬古流’에 관련된 풍치에서인가. 그런데 이 시의 의미는 여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시인이 1985년 10월에 쓴 「토요오후(土曜午後) 청담어수(淸潭漁叟)」의 「소서(小序)」에 따르면, 이 시는 일찍이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 : 1431-1492)이 읊었던 시구 “閑仰凝川舊釣磯(한가로이 응천의 옛 낚시터 쳐다보면) 桃花春水鱖魚肥(복사꽃 봄 강물에 쏘가리가 살졌지)”를 전제로 하며, 그 취지를 기리면서 또 적극 공감한다는 의사를 내포하고 있다. ‘마암산 봄 강물은 다시 어떠할지’에서 ‘다시’는 점필재의 시구들과의 연계와 그 후속으로서의 면모를 읽어 들이기에 유력하며, 시인이 이미 그 시절부터 점필재의 문장과 학문, 의리와 춘추필법을 존모하고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참고로 조선 사림파의 영수이자 도학자인 점필재는 시인과 같이 밀양의 부북면(府北面)이 고향이다. 한편 두 시의 이면에 맹자(BC 372년-BC 289년)의 ‘관수(觀水)’의 도리가 함축되어 있지 않나 추정할 수도 있다.

 지난 3월 21일(금) 밀양 그 강의 강변 호텔에서 〈벽사(碧史) 이우성(李佑成)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 모임〉을 선생을 기리는 온지회(溫知會)가 조촐하게 열었다. 이날 임형택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시인의 학자 면목을 조명하며 “‘유교적 선비’와 ‘근대적 지식인’, 이 양자는 한국의 근대 현실에서 상호 불상통의 상반된 양상으로 나타났지만 오직 그의 정신 활동에서는 근대 속에 전근대가 창조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문‧사‧철의 유기적 통합체가 그의 학문세계라고 규정지어도 좋다”고 하고, “주체와 민족” “학적 사고와 현실성”을 학문세계를 관류하는 키워드라고 하였다. 선생은 그렇게 ‘서고의 꿈’을 평생 추구하여 방대한 저작과 불휴의  교육으로 구현하였는데, 역시 그 꿈으로 1990년에 설립한 ‘실시학사(實是學舍)’는 2010년 2012년에 동지 ‘모하(慕何) 이헌조(李憲祖 : 1932-2015) 전 LG전자 회장이 출연한 거금에 힘입어 재단법인으로 재출범해 후학들이 우리 국학 연구를 인도하고 촉진하는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