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의 '수원 詩, 수원 詩人'(49)] 조영실 '득중정 향나무'

김준기 수원시인협회 회장

 

득중정 향나무

                                               조   영   실

 

  화성행궁 득중정得中亭 앞마당에 

  향나무가 서 있네 

 

  껍질 벗겨지고, 골이 지고 곳곳이 파인 

  하얗게 변한 몸통 위로 학처럼 

  푸르게 잎을 피운 두 가지, 하늘을 향해 날갯짓하고 

  또 한 가지, 맨살로 길게 목을 빼고 구름을 쪼고 있네

 

  얼마나 퍼덕거렸을까 

  수백 년 동안 활 쏘는 정자, 득중정을 지키느라 

  도끼가 몸을 찍어도 도끼날에 자신의 향을 묻혀준다는 

  꼿꼿한 날갯짓을 

 

  가난한 선비인 듯 안내판도 없이 홀로 서서 

  하얀 시간을 꼼꼼히 새겨 넣는 나무 

  하늘에 닿은 향기가 사람과 하늘을 이어주는 걸까 

  득중정에 스민 마음이 푸르게 돋아나네 

 

  향나무 잎이 늘 푸른 것은 

  마음에 그리고 이루어지길 빌기 때문일까 

  태양이 저녁이 오는 쪽으로 걸어가고  

  비원을 품은 날갯짓이 마당을 가득 채우네

 

서포 김만중의 소설 「구운몽」을 보면 ‘향로에 전단(方舟  檀)을 다시 피우고, 의연히 포단(蒲團)에 앉아 정신을 가다듬어 염주를 고르며 일천 부처를 염하더니’라는 구절을 볼 수 있다. 주인공 성진이 육관대사의 명으로 용궁을 다녀오던 길에 팔선녀를 만나서 흩어진 마음을 바로잡으려는 장면이다. 향은 부처에게 드리는 공양이기도 했지만 수행자의 몸과 마음을 깨끗이 닦는 청정과 정화의 매개체이기도 하다. 그만큼 예로부터 귀한 나무였다.

정조의 효심과 애민의 결정(結晶)이라 할 수 있는 화성행궁 안쪽에는 득중정이 있다. 시인은 행궁 탐방에서 ‘화성행궁 득중정 앞마당에/향나무’를 만났다. 무성한 상록의 잎새를 드리운 나무가 아니다. 풍설에 ‘껍질 벗겨지고, 골이 지고 곳곳이 파인’ 나무이다. 그렇지만 시인은 그 나무에서 ‘학처럼/푸르게 잎을 피운 두 가지, 하늘을 향해 날갯짓하고/또 한 가지, 맨살로 길게 목을 빼고 구름을 쪼고 있’는 모습을 본다. 도대체 얼마나 오랜 세월을 구름을 쪼았을까. 또 그 학은 저 푸른 하늘을 향해 날고 싶어 ‘얼마나 퍼덕거렸을까’ 하지만 ‘수백 년 동안 활 쏘는 정자, 득중정을 지’켰다. 

20세기 초 야수파를 확립하였다는 프랑스의 화가 조르주 루오는 기독교적 신앙을 바탕으로 가난한 자들에 대한 연민과 공감 그리고 그들을 학대하는 부자나 권력자를 향한 분노를 그림으로 표출하였다. 그의 판화 중에 ‘의인은 향나무 같아서 그를 찍는 도끼에도 향기를 묻힌다.’라는 작품이 있다. 예수의 십자가 고난과 죽음을 루오가 그만의 특유한 어두운 바탕 위에 굵고 무거운 검은 선들로 구현한 그림이다.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조롱한 자들 즉 자신을 찍어 아프게 한 도끼날처럼 핍박한 자들에게 독이 아니라 향을 묻혀주는 향나무처럼 용서와 사랑의 향기를 듬뿍 묻혀 영생과 구원의 길을 열어 준다는 의미의 그림일 것이다. 시인 또한 득중정 향나무에서 ‘도끼가 몸을 찍어도 도끼날에 자신의 향을 묻혀준다’며 향나무가 전하는 역사의 ‘꼿꼿한 날갯짓을’을 본다. 

득중정 향나무는 ‘가난한 선비’의 모습을 하고 있다. 김우영 시인은 『수원, 역사 속의 나무』에서 이 나무를 통하여 추사의 ‘세한도’ 속 나무들과의 연관성을 짚었다. ‘ 안내판도 없이 홀로 서서/하얀 시간을 꼼꼼히 새겨 넣는 나무/하늘에 닿은 향기가 사람과 하늘을 이어주는 걸까/득중정에 스민 마음이 푸르게 돋아나네’ 조영실 시인의 시에서도 세한도의 당당한 송백(松柏)들과 맞닿은 정신을 읽을 수 있다.

‘태양이 저녁이 오는 쪽으로 걸어가고’ 있다. 모처럼 나선 나들잇길이 저녁을 향해 걸어가는 시간이다. 그만큼 시인은 오랜 시간 그 향나무 앞을 서성이며 묵상에 잠겼다. 행궁 마당에 드리워지는 향나무의 그림자는 정조대왕의 ‘비원을 품은 날갯짓’이었다.

완연한 봄이다. 팔달산에는 벌써 산수유는 한창이고 어느새 목련도 꽃망울을 앙증맞게 내밀기 시작했다. 머잖아 성숙한 여인네처럼 희고 맑은 꽃잎을 드리울 것이다. 이어 언덕길에는 벚꽃이 흐드러지리라. 산에 핀 꽃에만 취하지 말고 행궁 깊숙한 곳, 득중정에도 들러 그 앞마당 향나무의 꼿꼿한 정신도 다시 한번 새기라 권한다.

 

조영실 시인

2016년《한국시학》으로 등단 

중봉조헌문학상, DMZ문학상, 해동공자 최충문학상, 대한민국 독도대전 특별상, 문경새재문학상 대상 등 수상

한국경기시인협회, 수원시인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