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종의 문학잡설(118)] ‘이왕이면 실비 오는 날’

김승종 / 시인 · 전 연성대 교수

 

 오래 교단에 섰다가 명퇴했던 대학동기가 쌍둥이 손주를 아내와 돌보며 쓴 육아일기와 수필을 엮은 책 『꿈새의 날갯짓』을 보내왔다. 읽으면서 그의 일상과 생각에 생경하였다. 그런데 왜 나는 지금도 그를 잘 안다고 여기고 있는 걸까. 따지고 보면 20대 한때 흑석동 시절을 공유했을 뿐인데. 다음 대목을 읽으면서도 그의 심정이 낯설었지만, 지난 세월 유로(流路)의 물결 위로 그의 젊은 얼굴이 아주 선명하게 떠올랐다. 

2022년 10월 11일(화)

 융이는 1주 만에 등원하다. 지난 금요일부터 승이도 감기증세가 약간 있었지만, 융이와 함께 도담어린이집에 보냈다. 하원하자마자 우리 넷은 농촌진흥청 경내를 산책하였다. 놀이터에서 잠깐 시간을 보내기도 하했지만 아쉬움에 자연스레 발걸음이 옮겨진 것이다. 광장을 가로지르며 달려보고, 호수 주변을 테크 따라 걷다가 수양버들이나 풀잎을 따서 놀기도 한다. 잔디가 깔린 운동장도 좋고 산책길도 그만이다. 무엇보다 한적하기에 느긋한 마음 가득히 햇살을 받고 식물을 구경하며 다니기에 주변 중 으뜸이다. 그러는 중 사진도 찍고 벤치에 앉아 준비한 음료수와 과자를 나누어주면 매우 좋아한다. 이때 노래와 춤을 시키면 스스럼없이 곧잘 한다. 특히 융이가 부르는 국악동요 「모두 다 꽃이야」(류형선 작사 작곡)는 들을수록 슬픔이 밀려온다. 살아온 날을 되짚어 볼 때, 추억의 편린이 이렇게 문득 동요를 통해 투영되나 보다.

 

산에 피어도 꽃이고, 들에 피어도 꽃이고

길가에 피어도 꽃이고 모두 다 꽃이야.

아무 데나 피어도 생긴 대로 피어도 

이름 없이 피어도 모두 다 꽃이야

 

봄에 피어도 꽃이고, 여름에 피어도 꽃이고 

몰래 피어도 꽃이고 모두 다 꽃이야.

아무 데나 피어도 생긴 대로 피어도 

이름 없이 피어도 모두 다 꽃이야.

 

 대체 그는 왜 이 동요에 ‘들을수록 슬픔이 밀려온다’고 하는 건가. 모든 꽃은 조건 없이 모두 소중하고 어여쁘다는 메시지는 이미 설득력 있게 우리를 수차 경유하여 범박하고, 그렇지 않은 세속 현실을 오히려 조소하거나 비판하려는 의지가 슬그머니 솟을 텐데. 혹시 그는 밝고 맑게 노래 부르는 손자의 목소리와 그렇지 않은 조건우선 현실의 그늘을 살아갈 손주들의 삶을 동정하다가, 그러다가 할아버지로서 그 깊어진 정리에서 그러고 만 건가.

 진자리 마른자리 국양(鞠養)의 노고를 조금도 마다않은 정성과 사랑의 일기, 이 희귀한 긴 일기를 읽으며 혹시 그 이면에 그에게도 무언가 의미가 있지 않을까 짐작하다가 육아일기를 마치는 날 기록의 마지막 문장을 드디어 읽을 수 있었다. 

2025년 3월 3일(월) 

 꿈새 손주들은 내일 입학을 그리고 있다. 꿈새는 균형 있는 날개로 자랐으면 좋겠다.

 하루를 정리하자니 서서히 저녁이 내려앉고 있다. 이제 그동안 조금씩 적어나간 일기도 아퀴를 짓자. 거슬러 7년 전 손주가 태어나던 그 순간을 떠올린다. 

 아 꿈새의 성장만큼 나의 성숙도 있었나를 돌아본다.  

 이 책에는 아이들에게 주는 삶의 여러 다양한 지혜와 교훈도 개재되어 있었는데, 그렇다면 이 모두가 한편으론 스스로 면려하기도 한 자기수양의 지침과 과정이 아니었나 한다. 그러다가 그가 쓴 수필 「남도기행」에서 송광사의 부속 암자인 천자암(天子庵)에 이르러 일으킨 상념을 읽고, 다시 읽으며 시로 여기고 행 구분을 해보았다.

 

극락이 어디냐고, 피안이 무어냐고 

묻는 사람은 쌍향수를 안아보라

영혼 없는 사랑꾼과 도덕 없는 지식꾼도 함께 오라

꿈꾸는 세상과 마주한 세상이 다르다고

절망하는 사람이 찾아도 좋다

이왕이면 실비 오는 날

부드러운 곱향 잎에 머물다

실타래 같은 줄기로 내리는 빗물에 이마를 적셔보라

너처럼 낙수는 낙수대로 사연으로 내리고

머리는 차가와도 향 내음은 가슴을 데우리니

시간을 두고 천천히 생각의 꼬리를 잡아라

그리고 그 꼬리를 곱향 줄기에 걸쳐 두어라

붙잡고 싶어도 떠날 것은 언젠가 떠나고

기다리지 않아도 올 것은 오리니

조바심 부리지 말고 마음 한켠 자리나 비워두라고……

법왕루 지나며 한껏 자세를 낮춘 골바람이 나긋하게 말해주는 것 같다. 돌아올 땐 우의를 벗어도 좋다

         - 허윤목

 

 ‘쌍향수(雙香樹)’는 수령 800여 년 높이 12.5m이며, 보조국사[지눌]와 담당국사(湛堂國師)의 전설이 서려 있다. 온갖 잡인들뿐만 아니라 ‘꿈꾸는 세상과 마주한 세상이 다르다고/절망하는 사람이 찾아도 좋다’며, ‘빗물에 이마를 적’시면서, ‘가슴을 데우’는 ‘쌍향수(雙香樹)’의 ‘향 내음’에 겸허한 탈속 자각을 이루기를 권유하는 메시지, 송광사의 저녁 예불 독송과 무척 어울린다고 하겠다. 시인은 이 진술의 화자를 ‘법왕루 지나며 한껏 자세를 낮춘 골바람’이라 하였는데, 우리는 그 ‘골바람’[조계산 한 계곡의 바람]을 시인 내면의 자아로 알며, ‘너처럼 낙수는 낙수대로 사연으로 내리고’에서 ‘너’가 시인 자신의 아상(我相)이기도 하다는 것도 안다. 또 이 시는 시인 자신이 누구보다도 자신을 일깨웠던 죽비의 말이라고. 

저 높은 조계산과 그 깊은 계곡을 눈 감고 상상하고 나니, 시의 끝 문장 ‘돌아올 땐 우의를 벗어도 좋다’가 또 한 생각에 잠기게 한다. 독자 여러분께서는 무엇을 느끼시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