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의 '수원 詩, 수원 詩人'(50)] 이광호 '엄마야 누나야'

김준기 수원시인협회 회장

 

엄마야 누나야

                                     이  광  호

 

출렁다리 건너는 유년은 

수여선 협궤열차에 오른다.

 

반음(半音)타고 오르는 아리랑고개

검은 기적 먼저 당도하면

 

깍지 끼고

온종일 섰는 누나의 입술에선

석류가 빨갛게 익고

 

짐칸처럼 흔들리던 어머니

자식들 등 뒤로 정차한다.

 

긴 말 휘어져 

매듭만 가득한 이야기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으로 나가는 동요는 본래는 소월이 1922년 『개벽』에 발표한 시를 노랫말로 삼고 있다. 어찌 들으면 자장가처럼 들리기도 하는 이 노래는 지금도 소리를 낮춰 조용히 부르면 촉촉이 젖어 드는 유년의 장으로 우리의 꿈을 실어 나른다. 

이미 전 국민이 다 알다시피 하는 유명한 시의 제목을 그대로 시인이 자신의 시 제목으로 차용하는 모험을 한 까닭이 무엇일까. 까무룩한 유년의 페이지들을 넘기며 그 애틋함이 그만큼 커서였기 때문이었을 게다. 수여선의 좁은 기찻길 위로 김광균의 시 「추일서정」에서처럼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증기기관차가 달리던 그 시절. 그 기찻길 근처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수원의 토박이만이 되새김해 볼 수 있는 풍광이고 그 풍광에 스민 정한의 세계가 ‘출렁다리 건너는 유년은/수여선 협궤열차에 오른다’라며 시 전편에 촉촉이 스며들기 시작한다. 

그랬다. ‘반음(半音)타고 오르는 아리랑고개’였다. 수원역을 출발하여 화성역까지 그래도 제법 온음으로 달려온 협궤열차가 화성역을 출발하여 원천역으로 가는 도중에 첫 번째 맞는 고개인, 인계동과 지동의 경계선 사이로 뻗은 기찻길에선 반음으로 겨우겨우 고개를 올랐다.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 것처럼 심한 경우는 기차가 힘이 달려 오르지를 못하고 승객들은 내려서 걸어 올라가고 저 혼자 칙칙폭폭 나아가 고갯마루에서 사람들을 기다리기도 했다. ‘검은 기적 먼저 당도’하는 셈이다.

그 길에서 누이는 어머니를 기다린다. 간절히 ‘깍지 끼고’ 기다린다. 기다림에 ‘온종일 섰는 누나의 입술에선/석류가 빨갛게 익’는다. 어머니가 오셨다 ‘자식들 등 뒤로 정차’하듯 오신다. 그 하루하루가 ‘짐칸처럼 흔들리던’ 날이었다. 보따리 가득 서러운 이야기 가득 담긴. 그 긴 서사에 얽힌 매듭을 어찌 다 풀 수 있으랴. 기찻길처럼 휘어진 굽잇길에 ‘매듭만 가득한 이야기’이다. 그래도 시인은 그 유년이 그립다. 누가 뭐라 해도 되돌아 갈 수 있다면 가고 싶다. 세상살이의 신산함에 젖은 몸과 마음을 소월이 뒷문 밖 갈잎의 노래로 씻었듯 그곳에 살고 싶다. 그 간절함을 한 행으로 된 마지막 연에 모두어 담는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고

지지난 주에 이광호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버리지 않아도 떠나는 것들의 기억』을 세상에 내놓았다. 위의 「엄마야 누나야」는 그 시집 속에 들어있다. 세 번째 집을 건드러지게 오롯이 지으심에 새삼 축하를 드리고 기회를 빌려 모든 이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이 광 호 시인

수원시인협회 회원

시집 『자전거를 타다』

     『비 오는 날의 수채화』

     『버리지 않아도 떠나는 것들의 기억』

공저 『유교 인문학 강좌』

현) ㈜ 모인터건축사사무소 전무이사

   종묘제례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