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의 '수원 詩, 수원 詩人'(51)] 최희명 '달빛사진'
달빛 사진
최 희 명
볼 붉던 열일곱에는 흑백으로 찍었네
공장 다니는 친구들과 팔달산에서 찍었네
누구나 그렇듯 사랑이 찾아왔네
그 사랑 품에 안겨 서장대를 빌렸네
첫아들 손을 잡고
강감찬 장군 동상 병풍 세웠네
달빛 동행하여 행궁을 돌아
성군 정조 효심으로 쌓은 성벽 따라 오르니
북암문 방화수류정에 용지대월 덩시렀네
성균관 유생 셋째 아들이
이제는 귀밑머리 희끗희끗한 어미 모습을
달무리 화관 얹어 셀폰으로 찍어주네
이백이십 년 화성 역사에
나의 오십 년도 달빛 아래
사진으로는 어엿하네
벌써 오십 년도 훨씬 지난 이야기이다. 그때의 수원은 그랬다. 우리가 흔히 삼성전자라고 부르던 삼성산요 공장이 새로 세워져 수원의 경제를 이끌었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었다. 산드래미 너머 권선리 일대에 대규모 공장이 들어서고 일순 몰려든 생산직 공원들의 수요로 그야말로 달팽이집 같은 방이라도 없어서 사글세를 못 놓을 정도였다. 월급날이면 영동시장을 비롯하여 도심의 상점들이 붐비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골목골목 구멍가게까지도, 밀렸던 외상값들이 들어오고 매출이 뛰었다. 어찌 수원뿐이랴. 사실 그 무렵 우리나라의 괄목할 경제 성장은 꽃 피고 지는 봄날의 설렘을 묵묵히 생산 현장에서 묵묵히 땀으로 대신한 청춘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루어낸 것이다.
모처럼의 휴일이었을 게다. 고향집을 떠나 일자리를 찾아 수원에 정착한 열일곱 꽃다운 처녀는 정작 수원 사람은 잘 가지를 않는 팔달산을 찾았다. ‘볼 붉던 열일곱에는 흑백으로 찍었네/공장 다니는 친구들과 팔달산에서 찍었네’라며 회상한다. 팔달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봄날의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그렇게 찾았던 팔달산에는 그 후로도 아름다운 추억이 산기슭 여기저기에 남게 된다. ‘누구나 그렇듯 사랑이 찾아왔네/그 사랑 품에 안겨 서장대를 빌렸네/첫아들 손을 잡고/강감찬 장군 동상 병풍 세웠네’ 사진첩에는 서장대를 배경으로 사랑하는 남자와 찍은 사진이 그리고 지금은 성신사로 복원된 강감찬 장군 동상 앞에서 첫아들과 찍은 빛바랜 흑백 사진들이 남아 있다. 그렇게 수원에서 지낸 세월이 어느새 오십 년을 훌쩍 넘었다.
하여 열일곱 볼 붉던 처녀도 칠십을 코앞에 두게 되었다. 무상하고 또 무심한 게 세월이다. 그래도 수원의 꽃다운 화성은 여전하여 여전히 마음만큼은 소녀인 시인은 새삼 행궁과 성곽 순례에 나선다.
‘달빛 동행하여 행궁을 돌아/성군 정조 효심으로 쌓은 성벽 따라 오르니/북암문 방화수류정에 용지대월 덩시렀네’ 야심한 탓도 있었지만 이젠 산을 오르기에는 숨이 차다. 달빛과 동행하여 성곽을 따라 걷다 보니 방화수류정이다. 용연에서 월출을 기다리는 ‘용지대월’은 예로부터 수원 팔경의 하나로 꼽았다. 달이 떴다. 아름다운 곡선으로 흘러내리는 부연 끝에 걸린 달이 두둥실 떠오른다. 그 달빛을 받은 지붕을 시인은 ‘덩시러네’라고 하였다. ‘건물 따위가 웅장하고 그 느낌이 시원스럽게 높음’을 나타내는 형용사 ‘덩실하다’를 시적으로 변용한 말일 게다. 어쩌면 시인의 고향인 남도의 사투리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달밤의 용두각을 형용하는 말로 ‘덩실하다’보다 훨씬 그 느낌에 정감이 간다.
위의 시는 최희명 시인의 시집 『쇠똥구리의 은하수』에 실린 「달빛 사진」의 전문이다. 시집이 나온 시기는 올초였다. 하지만 ‘이백이십 년 화성 역사’라고 한 것으로 보아 십 년 전쯤에 쓴 것으로 짐작된다.
‘성균관 유생 셋째 아들이/이제는 귀밑머리 희끗희끗한 어미 모습을/달무리 화관 얹어 셀폰으로 찍어주네/이백이십 년 화성 역사에/나의 오십 년도 달빛 아래/사진으로는 어엿하네’라고 하였다. 화성이 축성되고 이백이십 년, 그 앞에 시인은 서 있다. 시인은 공장 노동자였다. 결코 역사의 주인공은 아니었다. 그 노동자가 역사와 현실의 정의에 끝없는 의문을 던지기에 게을리하지 않고 시인이 되었다. 맵고 신 오십여 년의 세월이었다. 그 세월을 수원에서 보냈고 버텼고 마침내 이겼다. 그 시인의 머리에 달무리가 화관을 얹어준다. ‘오십 년’이 ‘달빛 아래/사진으로는 어엿하’다고.
최 희 명 시인
『서정시학』 등단
시집 『밥차리미 시인의 가을』 등 다수
웅진문학상 당선, 전태일 문학상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