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종의 문학잡설(121)] ‘눈지팡이 짚고 걷고 싶은 눈항아리’

김승종 / 시인 · 전 연성대 교수

 

어머니는 요양병원에 있고

나는 흰 개와 시골집에서 둘이 살고 있다

 

웅크린 흰 개 옆에 앉는다

등뼈 마디를 눌러 가면

마음 계단이 펼쳐지고

계단을 올라가고

전망대에 올라서면서

바람이 분다

 

집은 답답하고 우울했어 15년 된 보일러를 새것으로 바꾸니까, 마당에 물이 고이진 않아 모터가 고장 난 냉장고는 버렸어 썩은 음식물은 형태가 사라지고 냄새만 나 계속 좋지 않은 일만 일어났어

 

뒤뜰 항아리에 눈이 쌓였어 눈사람 항아리, 배관을 죽여 죽은 수도꼭지… 수도 파이프는 눈지팡이가 되었다 눈사람 속은 텅 비었다 눈사람이 눈지팡이를 보고 있다 문자메시지 알람이 와서 열어 본다 계좌에 원고료 100,000원이 입금되었습니다****** 출판그룹, 눈지팡이 짚고 걷고 싶은 눈항아리

 

손바닥 안

겨울은 조각조각 부서지고

녹아 흘러내리고

 

집이 보일러를 돌린다 흰 개는 털갈이를 시작했다 

개 코에 밤 달렸다 개가 혀로 밤을 핥는다 밤이 촉촉하다

    - 「에크리튀르」/조상호

 

 1연에서부터 알 수 있듯 이 시의 기본 상황은 어머니와 아들 단 둘이서 오순도순 살았던 집, 현재는 그렇지 못한 집의 ‘답답하고 우울’한 적요(寂寥)이다. 3연에서 변화의 계기[‘15년 된 보일러를 새것으로 바꾸’다]가 출현하면서 분위기가 이전과 달라지며 재활의 기미가 이는데,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후자에 치중하기보다는 전자를 우선 더 주목해야 할 것이며, 후자로 전환하는 계기와 그 의의가 무엇인지에도 응분의 고려를 해보아야 할 것이다.    

 세월이 흐르고 드디어 병든 노모를 하는 수 없이 요양병원으로 보낸 화자. 빈집과 다름없는, 아마 오히려 자신이 버려졌거나 심지어 자신도 부재한다고도 여겨질 그 집에서 화자는 혼자 살다가, ‘흰 개’를 들여 ‘둘이 살고 있다.’ 차라리 그 집을 떠날 수 있었을 텐데 떠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떠나지 않은 것일 것이다. ‘흰 개’로 보아서. ‘흰 개’는 그저 한 반려동물이면서도 화자의 동의 여부를 떠나 머리 센 노모를 연상시키는 그 대리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또 그 수식 ‘웅크린’으로 보아 화자 자신마저도 동병상련으로 투영되어 있지 않나 추정할 수 있다. 나아가 우리는 ‘흰 개’에 연관시켜 노모와의 애착 분리 이후 화자가 겪는 자기방기가 배인 상실의 공허를 연상하며 깊은 동정으로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 

 2연에서 화자는 ‘흰 개 옆에 앉’고, 그 ‘등뼈 마디를 눌러 가’며, ‘마음 계단’을 펼치고 ‘계단을 올라가’곤 하는데, 맥락에서 일탈한 이질(異質) 묘사로도 보이지만 아무래도 노모와의 사연과 그 연상을 두루 암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전망대에 올라서면 바람이 분다’는 표현은 그 기억의 정점에서 자신이 남루(襤褸)처럼 휘날린다는 뜻을 내포한 환유일 것이다. 이 시에서 이상 2연만은 전지시점 진술이다. 화자가 자신의 상태와 노모를 우울하게 그리는 상념을 그대로 드러내기가 저어되어 그런다고 하겠다. 아니 집의 정황과 사연을 짐짓 확대하는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우리는 집의 상태와 분위기가 달라지는 3, 4연을 읽으며 2연에 함축되었던 그 일단을 병렬 점검할 수 있다. 노모가 요양병원으로 가기 전에 바꾸었어야 했던 ‘보일러’가 더욱 악화되어 ‘마당에 물이 고’여도 그대로 외면하고, ‘썩은 음식물’의 ‘형태마저 사라지고 냄새만 나’는 ‘모터가 고장’난 ‘냉장고’를 버리지 않았으며, ‘수도 파이프는 눈지팡이가 되었’는데, 그런데, 우리는 ‘배관을 죽여 죽은 수도꼭지’에 이르러선, 이 모든 사정이 화자의 단순한 방치에서가 아니라 자해에 가까운 고의에 기인하였다는 사실을 감지하게 된다.  

 이러한 문제 정황은 다시 말해 3연에서부터 진술 현재에서 그 변전이 시사되었다. 점검했던 대로 그 기본 계기는 ‘15년 된 보일러를 새것으로 바꾸’기이며, 일종의 사건이라 할 4연의 화자의 ‘계좌에 원고료 100,000원’이 ‘입금’된 사실이다. 화자가 이 소식을 인지한 직후에 ‘눈지팡이 짚고 걷고 싶은 눈항아리’라고 하고 있어, 우리를 더욱 주목하게 한다. ‘속이 텅 비’어 있는 상실의 ‘눈항아리’(‘눈사람 항아리’)는 바로 화자가 자신을 가리키는 은유이며, ‘눈지팡이’는 ‘배관을 죽여 죽은 수도꼭지’에 달려있는 ‘수도 파이프’인데, ‘눈항아리’가 ‘눈지팡이’가 된 ‘수도 파이프’를 그저 거리를 두고 물끄러미 바라 ‘보고 있다’고만 했는데, 역시 그 ‘문자메시지 알람’ 직후에 화자가 유의미한 자신의 보행에서 유력한 동반자로 삼으려 한다. 다시 말해 ‘원고료 100,000원’ ‘입금’ 사실은, 화자가 죽은 ‘수도파이프’와 ‘수도꼭지’를 살리고 집과 자신의 재활을 의미하는 ‘걷고 싶은’ 동기로 제시되어 있다. 또, 집의 ‘답답하고 우울’한 적요(寂寥)를 깨는 ‘문자메시지 알람’에 즉각 반응하는 화자의 모습에서부터 우리는 화자의 폐쇄된 처지와 외부와의 소통을 바라는 심정을 다시 절감할 수 있다. 

 우리는 드디어 5연, ‘손바닥 안/겨울은 조각조각 부서지고/녹아 흘러내리고’라는 화자의 해빙 토로에 이어 마지막 6연에서 먼저 한 괄목할 역설성 심미 표현과 만난다. ‘집이 보일러를 돌린다’는. 그렇다. 보일러가 집을 데우지 않고, 이제 외부와 소통하는 변화한 집이 보일러를 돌려 자신을 데운다. 그리하여 우리는 ‘흰 개는 털갈이를 시작했다’는 표현도 연속되는 능동 변화의 은유로 잘 수용하며, ‘개 코에 밤 달렸다 개가 혀로 밤을 핥는다 밤이 촉촉하다’란 환유 섞인 은유를 사실처럼 인지하게 된다. ‘웅크린’ 위축 면모를 탈피한 ‘흰 개’의 애정과 시도에 우리의 밤도 어느덧 ‘촉촉’해지는 듯하다.

 참고로, 제목 「에크리튀르(écriture)」는 불어이며, 글쓰기 자체를 포함하여, 분절과 조합, 의미변환 지속의 텍스트 등 여러 뜻이 있는데, 시와 시작의 의미를 표상하기도 하고, 그 주체의 존재방식까지 두루 포괄하는 기호로도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