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의 '수원 詩, 수원 詩人'(52)] 김우영 '무위(無爲)'

김준기 수원시인협회 회장

 

무위(無爲)

                              김 우 영

저 꽃잎

질 자리에서 진다.

 

또 그 사이

흙 비집고 태어나는

풀씨

 

이를 무위(無爲)라고 해도 좋겠느냐

그냥 사랑이라고

말해야 하겠느냐

 

창밖, 꽃잎이 이우는 풍경을 바라보다가 아침에 꺼내 두었던 김우영 시인의 시집 『부석사 가는 길』을 한 장 한 장 새삼 읽는다. 2003년 ‘제4회 한하운 문학상 수상 시집’으로 상재되었으니 벌써 20여 년 전의 시집이다. 시집 속 시인의 사진을 보다가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40대 중반이었을 터인데 지금처럼 학발은 아니더라도 벌써 반백이다. 하긴 시인에게 나이를 헤아림에 무슨 뜻이 있겠는가. 노년에야 바라볼 수 있는 경계를 불혹을 겨우 넘기 나이에 이미 거닐고 있었음에. 아무튼 위의 시는 그 시집 속에 든 「무위(無爲)」라는 시의 전문이다.

화무십일홍이라고 했던가. 그 앞이나 뒤에 짝으로 붙는 말은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에 가슴이 답답해지니 치워두고, 그저 저 언덕에 꽃이 피고 떨어지는 풍광만 생각하자. 새로 피는 꽃보다 떨어지는 꽃잎이 훨씬 더 많은 어제와 오늘이니. 

‘저 꽃잎/질 자리에서 진다.’

‘자리’라 이름은 꼭 공간만이 아닐 것이다. 시공을 함께 아울러 일렀음이다. 제아무리 만화방창이었다 하더라도 떠나야 할 때가 되면 떠나는 것이고 그때 ‘질 자리’에서 져야 함이 순리(順理)이고 순명(順命)이다. 어차피 무상(無常)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 무상이 꼭 스러짐만은 아니다. 이울고 또 다시 피어남도 무상이다. 시인이 ‘또 그 사이/흙 비집고 태어나는/풀씨’라 하지 않았는가. 그 풀씨 바람에 날려 떨어진 자리에서 다시 꽃으로 피어남 또한 무상이다.

‘이를 무위(無爲)라고 해도 좋겠느냐/그냥 사랑이라고/말해야 하겠느냐’고 묻지만 단지 단정 짓지 않음일 뿐이다. 그런데 헷갈린다. 결국 무위와 사랑은 등가라는 말인지, 아니면 첫 행과 다음 행 사이에 ‘혹은’이라는 말을 생략한 선언지 명제인지. 선언지 명제라면 하나를 긍정하면 다른 하나가 부정된다. 무위냐 사랑이냐 중 하나만을 고르고 따라야 한다. 그렇다고 등가라면 ‘아직 나는 아니올시다’라고 말하고 싶다. 내 사랑은 꿈같지도 않고, 헛것도 아니며 그림자도 아니니 말이다. 다 늙어 주책이라고 말해도 좋다. 사랑에 또한 나이가 없다. 물론 시 속의 사랑이 그렇게 편협한 의미가 아니라는 것은 안다. 꽃이 지는 아침이기에 그냥 해 보는 말이다. 

에이 모르겠다. 더 생각하려니 머리만 아프다. 항상 이렇다. 결코 돈이 될 수 없는 생각에 머리를 싸맨다. 그건 그렇고 조지훈 시인은 그의 절창 낙화에서 ‘꽃이 지는 아침은/울고 싶’다고 했다. 이슬 내린 술잔에 한잔하고 싶음이다. 꼭 아침이 아니면 어떠랴. 우수수 꽃비 내리는 이 시절에 애써 시간을 가릴 리가 없다.

형. 혜미네서 한 잔 합시다. 물론 술값은 형이 내고.

 

 

김 우 영 시인

1978년 『월간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수원시 문화상, 한국시학대상 등 다수 수상

시집 『당신이 외치는 문』

     『겨울 수영리에서』

     『부석사 가는 길』

     『장안문 달빛에 막혀 집에 가지 못했다』 등

수원시인협회 회장, 경기신문 논설위원 역임

현) 수원일보 논설실장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