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안동 산불현장에서 화마를 입은 처참한 마을과 산을 보고 온 이야기를 본란 칼럼(18일자 ‘경북 화마(火魔), 내 친구 김 교수의 고향마을도 덮쳤다’)에 쓴 바 있다.
그리고 지난 주 화요일 봄비가 내렸다.
그날 아침 우산을 쓰고 집을 나서면서 경북 지역에서 산불이 시작됐을 때 이처럼 비가 내렸다면 얼마 좋았을까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잠시나마 했다.
비는 낮 동안 내렸다. 오후가 되어 산책 삼아 화성 성곽을 따라 걷던 중 비를 맞고 있는 새싹과 들꽃들을 보았다.
봄에 피어나는 꽃들과 새싹들은 본래 싱그럽고 좋은 기운을 준다. 비에 젖은 모습은 더욱 생동감이 있다.
창룡문을 지나 동공원으로 해서 용연으로 향하는 산책길에 만난 신록에 마음은 한결 상쾌해졌다.
나도 모르게 노래가 흘러나왔다.
구슬비
권오순
송알송알 싸리잎에 은구슬
조롱조롱 거미줄에 옥구슬
대롱대롱 풀잎마다 총총
방긋 웃는 꽃잎마다 송송송
고이고이 오색실에 꿰어서
달빛 새는 창문가에 두라고
포슬포슬 구슬비는 종일
예쁜 구슬 맺히면서 솔솔솔
이 예쁜 시는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잘 표현한 작품이다. 소리와 모양이 곧바로 연상된다. 시인의 나이 18세 때인 1937년에 썼으며 1938년 만주 용정에서 발행되던 ‘카톨릭 소년’에 발표돼 세상에 알려졌다.
안병원이 작곡해 동요로도 널리 알려졌으며 이후 초등학교 국어책과 음악책에 실려 국민적 애창곡이 되었다.
‘봄 아침 멧새소리’란 아래 시에서도 시인의 시적 감각이 얼마나 탁월했는지 알 수 있다.
‘꽃바구니에 담아/창가에/걸어두고 싶다//수정 쟁반에/또그르르…/굴려 보고 싶다//옥항아리에 꽂으면/하이얀 방울 꽃내음/퐁퐁 솟겠다.’
시인은 해방 후 황해도 해주에서 남쪽으로 넘어와 재속 수녀(세상에 속해있으면서 정결, 청빈, 순명을 서약한 수녀로서의 삶을 사는 이들)로써 천주교에서 설립한 고아원에서 보모로 봉사하며 평생 청빈한 독신생활을 했다.
노후엔 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 백운동 천주교회 옆 작은 집에서 재속 수녀로 살면서 시 창작활동을 이어갔다.
말년엔 수원에 몸을 의탁했다.
수원시 장안구 조원동 한일타운 뒤 천주교 ‘가난한 이들의 작은 자매회’가 운영하는 ‘평화의 모후원’이었다. 이곳은 수도자들이 가난하고 소외된 노인을 임종까지 모시는 양로원이다. ‘경로 수도회’로도 알려져 있다.
내가 권오순 선생을 만난 것은 1990년 쯤 이곳 평화의 모후원에서다.
수원에서 발행하는 신문 문화부 기자로 일하던 중 ‘송알송알 싸리잎에 은구슬...’로 시작되는 노랫말을 쓴 작가가 수원에 산다는 정보를 들었다.
소설을 쓰던 수원의 한 선배는 술만 취하면 이 노래를 불렀다. 그 선배의 동생은 나와 고등학교 동창이었는데 몇 해 전 세상을 떠났다. 한동안 소식이 끊겼던 선배 역시 얼마 후 타계했다는 소식을 뒤늦게 들었다. 나도 그 선배 못지않게 이 노래를 애창했었다.
그러니 어찌 반갑지 않을 수 있을까? 곧바로 사진기자와 함께 조원동 평화의 모후원으로 달려갔다. 뭘 보관하고 정리하는 습관이 없어서 그 때 쓴 기사를 찾을 수는 없다.
대신 몇 년 전 한 인터넷 매체에 쓴 당시의 상황을 옮긴다.
“늙었지만, 몸에 힘이 없어 잘 걷지 못하지만, 맑은 심성이 그대로 얼굴에 드러나는 시인을 만나 한참 동안 취재를 빙자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만남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이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이의 건강을 염려한 수녀님의 만류로 긴 시간을 갖지는 못했다. 그리고 몇 년 후 그이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시인은 1995년 별세, 안성 미리내성지에 묻혔다.
그리고 지난 2023년 6월 16일 사단법인 수원문화도시 포럼이 주최한 ‘오빠 생각의 최순애 작가심포지엄’이 팔달문화센터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서 주제발표를 한 이미정 건국대 교수로부터 권 시인의 ‘구슬비 노래비’가 충주댐 우안공원에 있다는 사실을 들었다.
그곳에 살았던 시인을 잊지 않고 노래비까지 세워준 충주사람들이 고마웠다.
수원도 ‘오빠생각’이란 동시를 쓴 최순애 선생을 배출했다. 그런데 수원사람들은 지금도 ‘오빠생각’ 노래비 건립문제를 놓고 갑론을박을 거듭하고 있다.
전병호 시인은 2021년 지역신문에 이런 글을 썼다. 그는 권오순 시인의 이야기를 담은 동화책 ‘구슬비 소녀’를 펴낸 사람이다.
“결혼도 하지 않았으며 집도 갖고 있지 않았다. 평생을 재속 수녀로 이슬 같은 삶을 살았다. 시인이 가고 난 뒤에 남은 것은 ‘구슬비’와 동시집 몇 권 뿐. 시인은 ‘구슬비’를 쓰고 지키기 위해 이 세상에 와서 평생을 바쳤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권오순 시인의 저서로는 동요·동시집 ‘구슬비’(1983), 동시 선집 ‘새벽숲 멧새소리’(1984), 동요·동시집 ‘무지개 꿈밭’(1987), 동시집 ‘가을 호숫길’(1990), 동요·동시집 ‘꽃숲 속 오두막집’(1987), 글 모음집 ‘조각달처럼’(1990) 등이 있다.
1976년 새싹 문학상, 1988년 제1회 충북 숲속 아동 문학상, 1991년 이주홍 아동 문학상 등을 받았다.
평생 가진 것 없이 홀로 살았던 권오순 시인. 그의 시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가난했지만 순정한 문학세계를 유지했던 아름다운 삶이었다.
연로했음에도 수정처럼 맑고 고운 내면이 외면에까지 드러났던 정결한 그이의 모습은 3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기억에 또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