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종의 문학잡설(122)] ‘벽이 거울이 되고 나서’

김승종 / 시인 · 전 연성대 교수

 

 사람은 자신의 눈으로 평소 남을 잘 살피지만 자신을 살피기는 어려워 자신을 반영하는 거울이 필요하며, 거울을 소재나 매개로 한 시의 출현이 시사에서도 드물지 않다. 대상화된 화자, 게다가 보는 화자가 관련되어 있어 그 반추의 자의식 시들은 우리에게 다양한 성찰을 하게 하거나 메시지에 연관된 비전을 추찰하게 한다. 역대 한시는 물론 우리 현대시에서 이상의 「거울」(1933)」과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1947)에서도 우리는 거울이긴 하지만 그 이상의, 조용히 어느덧 우리의 마음에서도 빛나는 ‘거울’을 조우하였다. 

 그런데 또한 주지되어 있듯 거울은 치장과 정제(整齊)의 도구이며, 나르시즘과 자기혐오 야기와도 무관하지 않다. 간혹 분명하지 않지만 거울의 자신을 응시하기가 민망해지기도 한다. 자신의 시선과 표정에서 보이거나 그 너머에 숨어 있는 나약한 자아를 감지하거나 위선이나 욕망을 읽고 부끄러워지거나 두려워지기도 하기 때문인가. 그러니까 거울은 자신의 모종 심리를 타인에게 돌리는 투사(投射)를 어렵게 하여 불편한 정서를 일으키기도 하여 우리를 어색하게(?) 하지만, 진실을 직면하고 싶은 의지에 기여한다. 그런데 다음 시에서 우리는 이상 점검에서 일탈한,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듯한 거울을 직면하게 된다.  

       

우연히 벽에서 거울을 떼고 나니 그 자리에 생긴 테두리가 거울이 되었다.

거울보다 작고 거울보다 네모난 테두리만 있는 거울 앞에서 나를 바라보게 되었다.

나의 모양은 보이지 않았으나 거울이 된 벽을 보고 이야기하게 되었다.

눈 감고 벽을 바라보고 이야기하다가 아무 생각 없이 잠이 들고 눈을 뜨면 날마다 거울은 나에게 새로운 이야기의 실타래가 담긴 우물이 되었다.

잊고 있던 이야기 지우고 싶은 가슴 아픈 이야기들을 거울은 나에게 들려주고 말없이 조용히 사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오랜 후 돌이켜보니 얼굴을 비추어주던 거울은 거울이 아니고 벽이 거울이 되고 나서 나의 조급함은 조금 침착해지고 조금 더 겸손해지고 조금 스스로 진실하게 생각하는 힘을 나에게 길러 주었다.

얼굴이 보이는 거울은 나를 숨기는 거짓말을 하게 만들었는데 거울 없는 방에서는 모든 벽이 거울이니 나를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벽은 진실을 숨기지 않고 스스로 말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었다.

     - 「거울이 된 벽을 보고 말하는 법」/최동호

 

 화자는 어느 날 ‘우연히 벽에서 거울을 떼고 나니 그 자리에 생긴 테두리가 거울이 되었다.’고 하는데, ‘우연히’의 범주는 직후 ‘벽에서 거울을 떼고 나니’에만 국한시켜야 할 것이다. 거울이 있던 빈 벽을 ‘거울’로 여기는, ‘그 자리에 생긴 테두리가 거울이 되었다’는 후술은 포함되지 않을 것이다. 벽면을 거울로 여기는 의식은 일시에 발생하기 어렵다. 언제부턴가 거울은 이미 화자에게 단순한 거울이 아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즉 화자는 벽에 걸린 거울을 치장과 정제의 용도로만 여기지 않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추정은 7연의 ‘얼굴이 보이는 거울은 나를 숨기는 거짓말을 하게 만들었’다는 토로에서 더욱 가능하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화자는 거울 아닌 거울, ‘거울이 된 벽’을 보며 자기성찰을 더욱 확대하게 된다. 3연에서 ‘나의 모양은 보이지 않았으나 거울이 된 벽을 보고 이야기하게 되었다’고 한다. 즉 그 이전에는 거울을 보며 자신과 대화가 없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고, 또 게다가 그 이야기는 후술되는 대로 ‘잊고 있던 이야기 지우고 싶은 가슴 아픈 이야기들’이다. 이전 거울 앞에서 잊었거나 외면하였던 그 이야기를 화자는 이제 있는 그대로 상기하고 수용한다. 이런 자기응시는 진실과 대면하기 위해 자신을 관용하거나 기만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태도에서 비롯되며 ‘나의 모양이 보이지 않는’ ‘거울이 된 벽’에서 오히려 앙양되는 자의식이다. 

 나아가 이 관계는 다시 변화한다. 화자는 4연, 확대 심화되는 사연의 앞머리에서 그 전제로 ‘눈 감고 벽을 바라보고 이야기’한다고 하였다. ‘잊고 있던 이야기 지우고 싶은 가슴 아픈 이야기들’을 하기에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화자는 왜 ‘눈’을 감는가. 5연의 ‘거울은 나에게 들려주고 말없이 조용히 사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는 토로와 관련될 것이다. 화자는 자신 내면의 그 상처를 제대로 대면하고 또 대면하며 대화하다가 ‘말없이 조용히 사는 법’을 터득하였다고 한다. 억울하기도 한 상처도 있어 자신을 위로하는 변명의 말도 한 것 같은데, 그러다가 화자는 문득 그 변명이 과장이나 축소를 야기하였고 그러다가 위선이나 거짓으로 변질될 수 있다고 각성하였다고 하겠다. 화자는 ‘거울이 된 벽’에서 ‘눈 감고’, 특히 묵언하며, 자신을 더욱 ‘침착’하고 ‘겸손’하게 수양할 수 있었고, 그리고, ‘진실하게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이 ‘힘’은 위에서 일별한 기존의 거울과의 관계와 그 관계에서 오는 자성과는 다르다. 그 의의가 이 시 중심 메시지일 것인데, 이 메시지는 7연의 부연에서야 그 실체가 제대로 부각되며 우리를 다시 괄목하게 한다. ‘얼굴이 보이는 거울은 나를 숨기는 거짓말을 하게 만들었는데 거울 없는 방에서는 모든 벽이 거울이니 나를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토로. 

 우리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긍정하게 된다. 그렇구나. ‘거울이 된 벽’은 모든 벽면으로 확대될 수 있고, 그 확대는 자연스럽다. ‘스스로 진실하게 생각하는 힘’의 무난한 추이. 게다가 변명의 말을 삼가고 무엇이든 감수하는 화자는 드디어 초월을 운운할 수 있을 텐데도, ‘모든 벽이 거울’이라서 자신을 ‘숨길 수 없’어 거짓말을 못 한다고 고백한다. 이런 겸손하고 침착한 고백을 촉진하는 이 시의 거울 아닌 ‘거울’은, 우리의 자아와 세계와의 관계, 그리고 진실 추구에서의 태도를 그 본연의 상태에서 거듭 사색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