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꽃
윤 민 희
학교에서 돌아와 엄마를 부르면
감자밭에 앉아서 손을 흔들던 엄마
뻐꾸기가 울어도
땡볕에서 목이 말라도
비가 억수로 쏟아져도 피는 감자꽃
흙 범벅인 머릿수건을 쓴 엄마가
기다란 밭고랑에 앉아서 허리를 두드릴 때
집으로 돌아와 장독대에 앉은 엄마가
별을 보고
달을 보고
까만 하늘을 볼 때도 피는 감자꽃
산 중턱에 앉은 엄마 무덤이
멀리 보이는 우리 집을 내려다보고 있을 때도
어김없이 감자꽃은 피어나고 있다
고구마 혹은 옥수수와 더불어 감자는 우리네 기근을 덜어주던 대표적인 구황작물이었다. 부잣집들이야 어땠는지 모르지만, 살림살이가 고만고만했던 영희네 철수네는 으레 집 근처 손바닥만 한 밭에 심는 작물이 고구마 아니면 감자였다. 요즘처럼 무슨 감자전이니 옹심이니 하여 어쩌다 별미로 먹자는 게 아니었다. 그것들이 모자라는 곡식의 염려를 덜어주었다.
시인이 그려내는 풍경은 딱 요맘때이다. ‘뻐꾸기가 울어도/땡볕에서 목이 말라도/비가 억수로 쏟아져도 피는 감자꽃’이라 했다. 하긴 하지(夏至) 전후에 캐내는 봄감자의 꽃이 피기에는 아직 조금 이른 듯도 싶다. 하지만 그저 하루 아니면 이틀. 날이 바뀌면 감자꽃은 핀다. 감자꽃이 피면 ‘기다란 밭고랑에 앉아서 허리를 두드’리던 ‘흙 범벅인 머릿수건을 쓴 엄마가’ 보이리라.
하지가 가까워지는 긴 하루해에 엄마는 해가 지고 나서야 밭일을 마치고 겨우 집으로 돌아오신다. ‘집으로 돌아와 장독대에 앉은 엄마가/별을 보고/달을 보고/까만 하늘을’ 보는 늦봄의 밤이다. 그때 감자꽃은 저쯤에 하얗게 피어있었다.
그 어머니는 이제 이 세상에 아니 계시다. 그러나 ‘산 중턱에 앉은 엄마 무덤이/멀리 보이는 우리 집을 내려다보고 있을 때도/어김없이 감자꽃은 피어나고 있다’
또 어버이날이다. 풍수지탄이라 했던가. 소용없는 일인지 너무 잘 알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분들이 떠나신 날이 쌓일수록 차마 그립다. 시인이 그랬던 것처럼, 엄마한테 무슨 특별한 용무가 있는 것도, 그렇다고 긴히 할 이야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툇마루에 책가방을 벗어 던지기도 전에 으레 ‘엄마’하고 불렀다. 그 부름 속에는 여러 의미가 있었다. ‘저 돌아왔어요’하는 귀가를 알리는 부름만이 아니었다. ‘저 배고파요. 밥 주세요’하는 뜻도 있었고, ‘어디 계세요?’하는 확인도 있었다. 너무 오랫동안 부재중이시던 엄마. 윤민희 시인의 시 한 편으로 ‘학교에서 돌아와 엄마를 부르면/감자밭에 앉아서 손을 흔들던 엄마’를 다시 만나보는 어버이날의 아침이다.
윤민희 시인
시집 『엇박자』,
『그리움을 위하여 가슴 한 켠을 비워두기로 했습니다』
『책들이 나를 보고 있다』
동서문학상 외 다수 수상
경기도 문화예술진흥유공표창
오산문인협회 회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