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의 '수원 詩, 수원 詩人'(55)] 구향순 '모르지'

김준기 수원시인협회 회장

 

모르지

                                               구 향 순

 

이립의 파도타기에 합류한 아들이

혼자 흥얼거리는 노래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찔레꽃 향기가 왜 슬픈지 모르면서

전쟁을 주관하는 바람은

지나치는 흔적마다 폐허를 낳고

사람들은 또 아이를 낳고

도장 부스럼 아이들 십 리 하굣길

야윈 손으로 따먹는 찔레꽃은

단 솥에 떨어지는 한 방울 물처럼

지독한 허기를 부르지

달착지근해서 더 서러운 허기

삯 베를 짜던 엄마만 알지

내가 불쑥 내민 시든 찔레꽃 냄새

무심한 척 베 짜는 손만 더 바빠지는

그래서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프지

 

가는 봄을 붙잡고 철쭉이 핀다. 그 철쭉이 다 이울어 이젠 봄날도 다했을 무렵이 찔레꽃이 필 때이다. 딱 이맘때이다. 찔레꽃 다보록한 할머니 무덤가에서 산 아래로 내려다보면 쟁기질을 끝낸 논에 물을 대고 써레질을 한다. 그때 성질 급하게 날아온 뻐꾸기 울음도 산등성이를 타고 넘어오곤 했다.

보릿고개로 오르는 그 험난함에 옥양목 저고리의 빛깔로 피던 꽃, 그래서 서럽던 꽃이다. 보릿고개를 모르는 아들이 ‘이립의 파도타기에 합류’하였다. 성현은 서른의 나이를 ‘마음이 확고하게 도덕 위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했다지만 갑남을녀에게는 혼자 세상의 파도를 넘기 시작해야 하는 나이이다. 그 아들이 장사익이 부른 ‘찔레꽃’이라는 노래를 ‘혼자 흥얼거’린다.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라고. 정작 ‘찔레꽃 향기가 왜 슬픈지 모르면서’ 부르는 아들의 노랫소리가 시인의 기억을 까마득한 그 옛날로 돌린다. 

사실 구향순 시인의 나이를 정확히는 모른다. 숙녀의 나이를 묻는 것은 실례이다. 그래도 대충 같은 또래라는 것은 안다. 미증유의 동족상잔이 끝나고 초토 위에서 다시 허리춤에 힘을 주고 일어서던 시절에 수많은 생명이 태어났다. 일명 ‘베이비 붐’ 세대이다. ‘전쟁을 주관하는 바람은/지나치는 흔적마다 폐허를 낳고/사람들은 또 아이를 낳고’ 

고샅길이 끝나는 동네 마당에 고만고만 아이들이 올망졸망 많이도 모였다. 초등학교도 아니고 일제강점기의 그늘이 그대로 남은 ‘국민학교’였다. 돌아가봤자 식은 보리밥 한 덩이도 없는 하굣길이다. 약도 부족했던 어이없는 시절이다. 마치 붉은 도장을 찍어 놓은 것처럼 반점이 번지던 ‘도장 부스럼 아이들’의 ‘십 리 하굣길’이다. 고픈 배에 배를 채운다거나 하다못해 요기라도 하기 위해서 따먹은 것은 아니었다. 먹을 수 있는 것이라면 그야말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입으로 넣곤 했다. ‘야윈 손으로 따먹는 찔레꽃은/단 솥에 떨어지는 한 방울 물처럼’ 오히려 ‘지독한 허기를 부르지/달착지근해서 더 서러운 허기’ 그래도 따 먹었다. 

집으로 돌아오니 웬일로 엄마가 들에 나가지 않고 베틀 앞에 앉아 있다. 바디집 아래로 북을 치기에 초여름에도 구슬땀을 흘린다. 가용에 보태기 위해서 삯을 받고 짜는 베이다. ‘삯 베를 짜던 엄마만 알지/내가 불쑥 내민 시든 찔레꽃 냄새/무심한 척 베 짜는 손만 더 바빠지는/그래서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프지’

마치 흑백필름으로 찍은 독립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단단한 서사의 실타래가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그 시절로 읽는 이를 끌어당긴다. 생각해보면 서럽고 눈물 많던 시절이었지만 그 눈물에 다른 욕심은 없었던

아무리 도시화로 옛 모습을 찾을 수 없다지만 그래도 귀 기울이면 들린다. 팔달산에 여기산에 혹은 숙지산 칠보산에. 뻐꾸기가 울고, 밤이면 소쩍새 울음도 들릴 때이다. 가난했던 시절의 서럽던 찔레꽃이 피던 산등성이에서

 

 

구향순 시인

2007년 '창작과 의식' 신인상 당선

시집 '귀향 연습', '바람의 견인'

공저 '햇살 드리워진 창가에 서서' 外 다수

경기시인상 수상

한국경기시인협회 회원

수원시인협회 사무국장

소로문학골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