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종의 문학잡설(125)] ‘세상의 틈이 다 그렇다’

김승종 / 시인 · 전 연성대 교수

 

책장과 책장 틈으로 동전 하나 또르르 굴러 들어간다.

또르르 아니 데굴데굴 아니 온몸으로.

 

틈은 빨아들이기 위해 존재한다.

 

동전 하나를 냉큼 받아먹는 틈.

냉큼 아니 꿀꺽 아니 후르륵.

 

책장과 책장은 작당한 듯 동전을 꽁꽁 숨긴다.

단단하고 아득하게 못 본 척

언제 우리가 그랬느냐고 시치미 떼고 둘러대며.

 

틈은 밀고 들어오는 잣대를 한사코 거부한다.

기어이 포기하게 한다.

 

틈은 존재하기 위해 손 쓸 틈도 내주지 않는다.

 

세상의 틈이 다 그렇다.

 

틈을 기웃거리지도 말고 틈을 메꾸려고도 하지 말고 

틈난다고 틈에게 별자리라도 빌려주지 말고.

 

책장과 책장 사이 팽팽한 긴장의 틈에는

보이지 않는 감시자의 눈빛이 먼지로 덮인다.

 

부재를 믿지 않는다고 믿는

인간이란 틈은 부재를 인정하라 한다. 

     - 「틈」/허형만

 

 화자는 자신의 주제에 직결된 화두 ‘틈’을 끊임없이 부각하며, 우리 독자들을 내내 주목하게 한다. 우리는 6연 ‘틈은 존재하기 위해 손 쓸 틈도 내주지 않는다’ 등에서 ‘틈’의 두 뜻[‘벌어져 사이가 난 자리’, ‘어떤 일을 하다가 생각 따위를 다른 데로 돌릴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을 잘 구별하며 재미있게 읽기도 한다. 그런데 이 시의 끝 행 ‘인간이란 틈은 부재를 인정하라 한다’에서, 의외에도 화자가 부여한 ‘인간’이란 그 새 뜻에 직면하고 놀란다. 나아가 이 뜻이야말로 화자가 가장 부각시키려는 ‘틈’의 뜻이라고 판단하며, 우리는 그 뜻이 포함된 ‘부재를 믿지 않는다고 믿는/인간이란 틈은 부재를 인정하라 한다’란 8연 맥락의 주장을 음미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즉 인간은 ‘틈’과 그 ‘먼지 덮인’ ‘감시’ 눈빛이 존재한다고 믿으면서도, 타인에게는 부재한다고 강조하고 인정하기를 강요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메시지에 따라 이 시를 다시 읽으며 인식을 조정해야 할 것이다. 1연 1행 ‘책장과 책장 틈으로 동전 하나 또르르 굴러 들어간다’, 2연 ‘틈은 빨아들이기 위해 존재한다’, 4연 1행 ‘책장과 책장은 작당한 듯 동전을 꽁꽁 숨긴다’ 등에서 다음과 같이 추정할 여지가 있다. ‘책장과 책장’은 ‘인간과 인간’의 은유이고, 인간 개체 자체가 ‘틈’[허기진 욕망이 도사린 공동(空洞)]이면서 ‘인간과 인간’ 사이에도 ‘틈’[상호 이기(利己)의 배타 공동]이 있는데,  ‘틈’은 그저 ‘빨아들이기 위해 존재’한다. 그리하여 ‘인간과 인간’은 두 ‘틈’에 ‘굴러 들어’온 ‘동전을 꽁꽁 숨’기고, 그러고는 한패가 되어 타인들에게 ‘언제 우리가 그랬느냐고 시치미 떼고 둘러대며’ ‘틈’으로 하여금 외부의 ‘밀고 들어오는 잣대를 한사코 거부’하게 하고, ‘기어이 포기하게 한다’는 것이다.   

 ‘틈’을 조성 조장하는 ‘인간’이 인간 전부를 가리키는지 일부를 가리키는지 알 수 없지만 상기 메시지는 우리를 우울하게 하는데, 오래 이어지지는 않을 듯하다. 전자라고 하더라도 평소에 잘 자각하지 못하는 심연의 동향으로 하여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않겠나. 4연을 읽으며 특히 ‘언제 우리가 그랬느냐고 시치미 떼고 둘러’댄다는 화자의 묘사에서, 그 ‘우리’에 우리는 자신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애초의 자의식을 고소하며 스스로 허물 것 같다. 5연 ‘틈은 밀고 들어오는 잣대를 한사코 거부한다/기어이 포기하게 한다’도 우리의 주목을 강화한다. ‘한사코 거부’되는 ‘잣대’, 이 ‘잣대’를, ‘꿀꺽 아니 후르륵’ 했던 ‘틈’을 쑤셔 그 적치물을 꺼내려는 규구[規矩 : 법도를 재는 곱자]로 읽으며 우리는 긴 한숨을 내쉴 것 같다. 

 8연 ‘틈을 기웃거리지도 말고 틈을 메꾸려고도 하지 말고/틈난다고 틈에게 별자리라도 빌려주지 말고’를, 화자가 아무래도 한번은 발언해야 하는, 우리에게 주는 조언으로 읽었는데, 다시 읽으며 어쩐지 위로도 받는 느낌이 들 것이다. 자신을 포함해 독자들에게 그래도 ‘틈’을 자각하고 일탈을 포기하지 말라는 화자의 이 진정에서, 우리는 그래도, ‘틈난다고 틈에게 별자리’를 ‘빌려주지’만은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별자리’, 일찍이 우리가 삶을 생각하며 저마다 자신의 이상을 기탁한 성좌(星座), 광막하고 아득한 밤하늘에서 자신을 바라보며 빛나는 그 성좌(星座)를 우리는 그따위 ‘틈’에게 방편 운운하며 잠시라도 맡겨두지 않는다.    

 두 진영의 표심이 도처에서 충돌하고, 다른 진영의 목소리를 보도하는 언론 기사에도 사악하다, 고통스럽다, 고문 받는다고 서로 토로하는 21대 6‧3대선 정국. 그렇다면 사실과 다른 선동  정략은 이 시에서 지척되는 ‘틈’이라고 하겠다. 화자는 경고한다. 그 ‘틈은’ ‘꿀꺽 아니 후르륵’ ‘빨아들이기 위해 존재한다’고. 그러고는 ‘시치미를 떼고 둘러’댄다고. 그러고 보니 우리가 본심(本心)을 회복하면 누구나 헤아릴 수 있는 경고이다. ‘틈’. ‘틈’에는 ‘모여 있는 사람의 속’이란 뜻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