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의 '수원 詩, 수원 詩人'(56)] 정 겸 '쟁기'
쟁 기
정 겸
사랑채 후미진 곳에서
유기 날짜를 알 수 없는
사체 한 구를 발견했다
은폐된 공간 속에서
검버섯은 여기저기 피어있고
움푹 팬 허벅지는
상처로 얼룩져
벌겋게 피멍이 들어 있었다
활처럼 굽은 허리에서
고단하게 살아왔던
망자의 삶을 알 수 있다
사체를 뒤척거려 보았다
땀 배인 뼈마디마다
소금꽃이 하얗게 피어있었다
마른 풀잎들이 우수수 쏟아져 내리고
황토 먼지가 뽀얗게 일어났다
망자의 허리춤에 덮여있던
오래된 농민신문의 광고란 속에서
경운기와 트랙터가
굉음을 내며 푸른 들판을 달리고 있었다
조선 가사 문학의 양대 산맥을 꼽으라면 당연히 송강가사와 노계가사이다. 그런데 두 사람의 생애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당연히 시풍도 같을 수가 없다. 마치 이백과 두보처럼
송강 정철이 타고난 천재성에 권력의 핵심에 있었다면 노계 박인로의 시가는 가난 속에서 갈고 닦은 절창들이다. 노계의 생애가 얼마나 빈한하고 고달팠는가가 그의 「누항사」 속에 깊은 한숨으로 번져 있다. 명색이 양반이다. 하지만 손수 농사를 지어야 했다. 모내기 철이 다가왔다. 쟁기는 있지만 끌 소가 없어 이웃집에 빌리러 갔다가 망신만 당하고 돌아와 뻐꾸기 우는 밤을 꼬박 새운다. 조선 후기에는 농우가 있으면 제법 살 만한 중농 이상이었던 것 같다.
상전벽해라는 말도 무색하다. 세상이 변해도 너무 변했다.
사랑채가 따로 있는 농가라면 농촌에서는 그리 빈한한 집이 아니었다. 한때는 제법 벼 마지기나 짓는다는 소리를 들었을 게다. 그 집 ‘사랑채 후미진 곳에서’ 뒹구는 쟁기를 발견하고 시인은 시대의 변화와 그 의미를 살핀다. ‘유기 날짜를 알 수 없는/사체 한 구’라 함은 바로 그 버려진 쟁기를 이름이다. 유심히 살펴 본다.
‘검버섯은 여기저기 피어있고/움푹 팬 허벅지는/상처로 얼룩져/벌겋게 피멍이 들어 있었다’ 농부의 손때로 반짝이던 쟁기의 양지머리나 손잡이에는 곰팡이가 검버섯처럼 피고 묵정밭도 갈아 제치던, 빛나던 쟁기날에도 피멍처럼 녹이 슬었다. ‘활처럼 굽은 허리에서/고단하게 살아왔던/망자의 삶’이란 곧 그 쟁기가 담당해야 했던 노동의 크기이다. 즉 한 가족을 책임져야 했던 가장의 노동이 쟁기의 ‘땀 배인 뼈마디마다’에 ‘소금꽃’으로 ‘하얗게 피어있었다’
쟁기는 도대체 얼마나 오래 버려져 있었던 것일까. ‘마른 풀잎들이 우수수 쏟아져 내리고/황토 먼지가 뽀얗게 일어’난다. 그런데 ‘망자의 허리춤’, 다시 말해 버려진 쟁기를 덮고 있던 ‘오래된 농민신문의 광고’를 발견한다. 도시에서는 도무지 볼 수 없는 신문이다. 하지만 농사일에 대한 요긴한 정보를 담은, 농촌에서는 꼭 보아야 하는 신문의 광고란에 ‘경운기와 트랙터가/굉음을 내며 푸른 들판을 달리고 있었다’고 했다. 이제는 농촌에 가도 경운기조차도 보기가 쉽지 않다. 농기계가 점점 진화를 거듭한 탓이다.
곧 모내기 철이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 보면 비극이라는 진부한 말을 어쩔 수 없이 써야겠다. 농부의 쟁기질은 농부의 뼈를 깎는 노동임을 잘 안다. 그러나 멀찍이 들려오는 그 워낭 소리와 농부의 으뎌 소리를 어찌 잊으랴. 직접 모를 낸다거나 하다못해 못줄이라도 잡고 싶어도 인제는 몸이 허락해주지도 않음도 잘 안다. 그래도 내온 새참 자리에 껴 보리밥 한 술에 열무김치 안주 삼아 탁배기라도 한 잔 얻어 마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버려진 쟁기처럼 버려진 추억이고 아쉬움일까. 그러나 그 아쉬움에 대한 기록도 시인의 사명이다. 정겸 시인의 시로 그 아쉬움을 달래 보는 늦은 봄날의 밤이다.
정 겸 시인
본명 정승렬
2003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로 등단
시집 『푸른 경전』, 『공무원』, 『궁평항』 등
공무원문예대전 행정안전부장관상, 경기시인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