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곤 교육논단] 숙제를 없애겠다고 약속해버린 대통령

김만곤 (주)비상교육 자문위원

 

특별한 사유가 없는 어린이날에는 대통령이 어린이들을 초청하는 행사를 벌여왔다. 초청 받는 어린이가 몇 명 되지 않아서 실망스러울 수도 있지만, 뉴스 시간의 행사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훈훈했다.

언젠가 어린이들과 대통령 간의 대담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어린이들이 질문하고 대통령이 대답해주는 형식이었다. 좋아했던 공부, 존경하는 인물, 평소 하는 일, 즐겨 읽는 책 같은 것들을 물어서 질문이나 대답이 특별히 기억에 남을 만한 것은 아니었는데 돌연 한 어린이가 매일 숙제를 내주기 때문에 마음 놓고 놀 수가 없다면서 숙제 좀 내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순간, 어떻게 저 질문이 나오게 되었을까 의아했다. 당연히 사전에 어떤 걸 물을지 생각해보라고 했을 것이고 누군가 예상 질문을 받아보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저런 질문이 나오다니 싶었고, 저 질문에 대통령이 어떻게 대답해야 교육적이고 합리적일지 조바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숙제는 어린이들로서는 공통적 관심거리이니 그걸 묻고 답하는 장면을 넣는 것은 어린이날 행사에 썩 걸맞은 일이라고 생각했을까?

서울에서 학생들의 등교시간을 교육감이 나서서 정하게 되었을 때, 마침 한국에 출장 온 핀란드 교사를 만난 적이 있다. 그 교사는 그걸 왜 교육감이 정하는지 모르겠고 기이하게 느껴진다고 해서 그럼 누가 정해야 하는지 물었는데 당연히 교사와 학교가 아니냐고 반문하는 것이었다. 이런 차이는 나라마다 사정이 달라서일까? 그 사정이란 건 무엇이고, 어떤 것이어야 바람직할까?

숙제를 없애 달라고?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뭐가 어떻게 되든 일단 “그래, 그렇게 할게!” 할 수도 있지만 “그건 내 소관이 아니어서 선생님께 부탁해봐야 하겠구나.”라고 할 수도 있고 “그건 참 어려운 문제야. 난 도저히 뭐라고 말할 수가 없는걸.”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또 이런 식의 답변이 생각나긴 하지만 정답(正答)은 교육학자와 행정가, 교사들 간의 검토와 숙고가 있어야 마련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어쨌든 숙제를 없애 달라는 그 어린이의 요청쯤은 아주 간단한 문제라는 듯 그 대통령은 당장 대답해주었다.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대통령은 그 문제를 오래 생각하지 않았다. 주변에 대기하고 있을 교육 관련 고위직이나 참모에게 견해를 구하지도 않았고 즉석에서 간단히 대답해버렸다. 숙제를 없애겠다고.

숙제도 사교육을 조장한다고 생각한 것일까? 혹은 초등학교 어린이들은 기본적으로 학교에서만 공부해도 충분하고 그렇게 해야 마땅하다는 생각이었을까? 아니면 숙제는 백해무익해서 폐지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해 왔던 것일까?

이건 간단한 문제 같아도 논란거리가 될 것으로 예상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이튿날부터 이 문제에 대한 논의가 어떻게 전개되는지, 각 교육청에서는 어떤 시책을 마련하는지, 관련 행정조치가 어떻게 내려오는지, 교사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고 정말로 숙제를 없애게 되는 건지, 관심을 갖고 주시하게 되었다.

그러나 다시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아니, 일이 벌어진 게 아니라 사실은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럴 수가! 후속조치도 없었고 왜 대통령의 약속을 실천하지 않느냐는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어린이들은 그 뉴스나 대통령의 약속을 잊었는지, 잊진 않았지만 또 학교생활에 빠져서 대통령의 약속 같은 걸 따지고 어쩌고 할 겨를이 없게 되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럼 그 뉴스를 본 사람들은? 어린이들이 모처럼 대통령을 만나서 말이라도 즐겁고 시원하게 해보았으니 다 되었다고 생각한 것일까?

이래서 대한민국 교육은 변하지 않는 것일까? 변할 수가 없는 것일까? 아예 변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일까? 교육에 관한 한 대부분의 논의가 말잔치에 지나지 않고 그저 지난해처럼, 학생들이야 지치거나 말거나, 우리도 다 그렇게 공부했으니까 지금까지 하던 대로 하면 되는 것일까?

대입을 향한 지나친 사교육 때문에 어린이들이 받는 스트레스가 심각하다고 한다. 어린이날이어서 한번 기사화해본 것일까? 우리의 미래가 되어줄 저 어린이들, 그들을 걱정하는 좋은 대통령이 나오면 좋겠다.